칼럼

안녕? 나는 다람쥐 도도야!

글 : 컬러풀브레인친구

도도와 컬러풀브레인친구

머리를 어느 각도에서 봐도 동글동글한 밤톨이 도도는 메아리 요정이다. 엄마가 "이 거 줄까?"라고 말하면 "이거 줄까?"라고 메아리로 답하고, "사랑해"라고 하면 "사랑해"라고 똑같이 메아리치는 작고 귀여운 요정이다. 오랜 시간 엄마, 아빠를 애태우며 완행버스를 탄 듯 천천히 찾아와 준 도도는 자라면서 뚜렷한 개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파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숫자로 만들곤 했다. 도도의 발달 속도를 평균과 비교하며 자책하기도 속상해 하기도 했었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이해해 보려고 사이버대학교 언어재활학과에 편입하여 치료실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자투리 시간에 공부를 하고,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장애 인식 개선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였다. 프로그램의 수료 요건 중 하나인 최종 발표 시연에서 신경다양성을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컬러풀브레인친구'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성이란 뇌신경의 다양한 연결로 인해 발생하는 자폐, 지적장애, 학습장애, 틱, 뚜렛증후군, 뇌전증, 뇌성마비 등의 양상을 다양성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의료적인 개입 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질병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사람이 가진 다 양성으로도 존중하자는 미국, 유럽 등에서 이미 시작된 사회적인 움직임이다. 사실 발달장애는 "낫는 병이 아니라 일생 동안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중재하며 당사자, 가족 그리고 사회가 함께 지내는 것이다. 신경다양성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접하고 이 해하는 폭이 넓어진다면 포용적인 사회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신경다양성은 개인의 특성일 뿐

지난 3월 셋째주가 전 세계에서 신경다양성의 특징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신경다양성 기념주간' 이었다. 올해는 한국도 139개의 참여국 중 하나의 국가로 신경다양성을 선보이는 시간을 가졌다. 컬러풀브레인친구는 '신경다양성기념주간 초대 캠페인을 기획하여 서초 한우리정보문화센터, 반포복지관과 함께 287명의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오시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의 주인공인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실행장애를, 엠마왓슨은 ADHD를, 월트 디즈니는 난독증을, 포켓몬을 만든 타지리 사토시는 오티즘이며 팝가수 빌리아일리쉬는 뚜렛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포스터에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밤양갱 노래로 음악차트를 석권 한 가수 비비도 ADHD를 가지고 있어 약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이렇게 신경다양성 특징도 MBTI같은 개개인별로 나타나는 개성으로 인정받고 존중되는 다채로운 공 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특성을 지닌 다람쥐 같은 도도

도도는 머리만 밤톨 같은 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땐 양쪽 볼 가득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다람쥐이다. 다람취의 귀여운 모습에 담겨져 있는 278종 중 10종의 다양한 다람쥐 종(체)에서 각각의 특징들을 발견했고, 신경다양성적인 특징을 결부시켜 직접 창작한 '신경다양성 다람쥐 학교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있다. 발달장애, 지적장애, 학습장애, ADHD, 뇌전증, 뇌성마비, 틱, 뚜렛층후군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다람쥐 이야기를 접하며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신경다양성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또 한 신경다양성 아이들의 주위에 계신 양육자, 친구의 양육자들, 관련 전문가, 의사, 사회복지사들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컬러풀브레인친구의 다람쥐학교로 모두를 초대합니다! 도도는 어떤 다람쥐일까? 그리고 다람쥐들이 질문한다. “너는 어떤 다람쥐야?”

컬러풀브래인친구 다람쥐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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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놀아주기? 가르쳐주기?

글 : 윤승아

놀 시간이 부족해요

요즘 아이들은 하는 게 너무 많아서 놀 시간이 정말 부족하죠?
중도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해야 할 것을 정리하다 보면 그걸 다 정리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해야 할 것이 많고, 그러다보니 놀 시간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아기때부터 오랜 시간 치료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치료를 해주는 전문가로 부터 많은 재활 정보와 아이에 대해 알게됩니다.
느린 제 아이를 바라볼때 저는 항상 주로 부족한 점이 보였고 재활 치료와 아픈 아이를 캐어하는라 아이와 온전히 노는 시간을 갖기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놀이가 아닌 놀이

아이가 어릴 때 잠시 시간이 생겨서 놀아주게 되어도 조바심 난 저는 부족한 점이 보이고 어설픈 지식으로 아이를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준다는 명분으로 지적하게 되고 격려한다는 명분으로 강요했어요. 대부분 즐겁게 시작한 놀이가 놀이가 아니게 되었어요.
아기 때는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아기에 들어서며 '자기 주장'이 생기고 나서는 점점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제가 사소한 제안을 하더라도 거부하고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혼자 하고 싶어하고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작은 실패에도 지나치게 좌절하고 분노했어요.
어떤 때는 바지를 갈아 입히려고 바지를 내려주려 해도 폭발하고, 뭔가 새로운 시도는 한 번 하고 “한 번 더 해볼까"라는 말에 폭발했어요.
치료나 수업에도 영향을 주어 작은 실패나 지적에도 폭발해서 진정하는 데 시간을 많이 걸렸어요. 그때는 아이의 시각적 어려움을 몰랐고, 부모와 치료사의 생각에는 적절한 과제가 아이에게는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을 것 같아요.

진짜 놀이가 필요해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시각적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상황을 설명해주고 어떤 도움을 줄 지를 알려준 후, 아이가 상황을 인식한 후에 신체적 지원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신체적 촉진을 하다보니 놀라고 불안함이 반복되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계속 말이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아이가 계속 받고 자랐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그땐 제가 몰랐습니다.
어떤 특수교사가 얘기해 주셨는데 아이들은 놀면서 스스로 아는 것을 활용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간다고 해요. 그래서 반드시 목적 없이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또 항상 정상발달을 의식해서 그 부족을 채우고 따라가기 바쁜 저에게 “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제 아이만의 발달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어느 특수교육 박사님의 말씀도 지금에야 조금씩 알것 같습니다.

못하는 것보다 이미 할 수 있는 잘 하는 것을 바라보기

유치원 무렵 치료전 상담을 하면서 아이가 잘 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충격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의 부족한 점은 10개고 20개고 말할 수 있는데 잘하는 건 그 순간 한 개도 바로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어려움이 많은 아이라고 해서 어떻게 잘 하는게 없겠습니까? 제가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런 취급을 받은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했습니다.
지금도 안그래야지 하면서 팔꿈치를 붙이고 숟가락질을 하는 아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팔꿈치를 손으로 살짝 들어줍니다. 자꾸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야 할 것에 대한 잔소리를 하게 되구요.
아이는 똑같은 지시나 지적도 다른사람이 하면 수용하면서 제가 하면 더 짜증내고 화를 냅니다.
아마 어릴 때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충분히 놀아주고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 제가 손으로 도와주는 행동에 대해 거부감이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잘 하고계신 부모님들도 계시지만 저처럼 성격급하고 맘이 급한 어머님들은 잠시 숨 한번 고르고 아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봐 보세요. 너무도 잘 하고 빛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뭔가 하나 더 가르치기보다 아이와 놀면서 즐거움으로 쌓은 신뢰감에 대한 정서가 이후 성장 하면서 힘든 과제나 더 어려운 것들도 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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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아동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

글 : 윤승아

시각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시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잘 모르는 새로운 환경이나 소음이 많고 사람들의 움직임과 이동이 많은 시끄러운 장소에 아무 상황설명 없이 있게 되면 두렵고 불안도가 심해집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익숙한 집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편안하게 있다가 제 눈을 가리고 갑자기 낮선 장소에서 낮선사람들에게 둘러쌓이게 된다면, 심지어 그사람들이 나를 막 만지고 어떨땐 아프게도 하고 뭔가를 하라고 시킵니다. 또 아무도 이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아이를 매번 이런 상황에 던져 놓았습니다.
대기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짜서 도착하면 바로 아이를 치료실로 보내고 끝나면 바로 다른 치료를 갑니다. 전문가에게 많이 받아야 좋아진다고 생각했고 그럴수록 더 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가 준비되도록 기다릴 시간따위는 없었어요.
병원 진료나 검사할때도 간단한 진찰에도 저항하면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 의료진의 시선이 내아이보다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 도 없기때문에 아이가 두려워서 저항하기 전에 빨리 끝내는게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되어 아이를 제압하여 빨리 끝내는 쪽을 택했어요.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내 아이가 장애인으로 사는 이 상황에서 저는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두려움이 공포로 강화되고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것 같습니다.
머리가 자라도 핀도 꽂을 수 없어 바가지 머리로 살아야했고 헤어커트용 가운이나 요리실습용 앞치마, 치료를 위한 수트의 착용도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옷(가디건이나 외투)은 입힐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 차이에 대한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시도한다던지 자신에게 뭔가를 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던지 하면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던것 같습니다. 그럴때는 정말 누군가 자기를 끌고가 죽이려는 상황처럼 저항을 합니다.
지민이가 유아기가 되자 심해졌고 오히려 부메랑처럼 치료에 방해가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더 사소하고 작은 터치에도 과한 저항을 했습니다. 물리치료시 자세를 잡아주려 하거나 치료를 보조해주는 바디슈트의 착용이나 보행훈련시 벨트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보조기 신기는 것도 배로 시간이 들었고 걷는 순간에도 그걸 벗겨달라고 저항하는라 치료시간을 허비해게 되었습니다. 승마치료는 시도조차 못해봤습니다.
일상에서는 병원에가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가운을 입는다던가 머리를 묶는다던지 머리를 자른다던지 놀이기구를 타가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것이 어려웠습니다. 회전목마를 한번 태우려다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결국 세운적도 있지요.TT
그때는 아이가 유난스럽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막연하게 발달장애의 문제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조급함으로 아이에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배려와 시간을 주지 않아서였다는걸 10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시각에 어려움이 있다면 더더욱 많은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것을 작년에 시각특수학교에 와서 시각장애부모님들로 부터 알게 되었어요.
사전에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할 시간을 주고 이 활동이 너를 해치는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거고 대수롭지 않은 거라는걸 알려주는 노력을 한 후로는 조금씩 못하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충분하지 않고(이건 제 급한 성격의 문제. . ) 어떤 상황에선(병원검사) 다시 강압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설명하는 것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안되던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어린 부모일 수록 챙길것이 많아 시간적으로도 촉박하고 아이를 호전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더욱 심리적으로 조급해지며 아이와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많이 불편한 상황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이라도 조용한 장소에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 하지 말고 아이에게 설명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사인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가 시각장애(안구, CVI)가 있다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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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경련을 했다

글 : 김지영

제하가 경련을 했다. 21년 3월 이후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꼭 3년 만이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뇌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경련은 피할 수 없는 건가 보다. 단순히 ‘아이가 경련을 했다, 그리고 괜찮아졌다'로 끝나지 않았던, 싱숭생숭했던 그날의 기록.

두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가쁘게 내쉬는 제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아이를 만져보니 팔을 흔들고 있었다. 재빨리 불을 켰다. 힘들어하는 표정. 눈은 왼쪽을 흘기듯 보고 있고 거품 섞인 침을 흘리며 딸꾹질하듯 일정한 속도로 상체를 흔들었다. 3년 전 그날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새벽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제하 형을 깨웠다. 내가 호들갑을 떨면 아이도 덩달아 놀랄까 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더군다나 동생이 경련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내가 제하 옷을 입히는 동안 첫째는 비몽사몽이면서도 군말 없이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기특하기도 해라.
짐을 싸면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은 몇 번 가봤지만 첫 경련 때는 택시를 탔기에 구급차는 처음 불러봤다. 구급대원은 언제부터 그랬는지, 열은 나는지 등 아이의 상태와 주소를 확인하고 여러 가지 안내를 해주면서 구급차가 소방서에서 출발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도록 했다. 기저귀, 약 등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현관을 나서기 직전, 첫째에게 손바닥만 한 장난감을 가져오도록 했다. 응급처치 후 이어지는 각종 검사, 응급실 담당 의사를 비롯한 관련 진료과목 의료진의 방문,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 계속되는 기다림… 응급실에서의 시간은 어른인 나에게도 지루한데 아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1층으로 내려갔더니 구급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모차를 가지고 탈 수는 없나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정신이 없던 나는 구급대원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다. 당연히 구급차 안에 유모차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또 했다. “그럼 집에 올라가서 놔두고 와도 되나요?” 구급대원이 시키는 대로 아파트 1층 구석에 유모차를 세워두고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차 처음 타보지? 엄마도 처음이야. 우와, 멋지다! 오늘 유치원 가면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 있겠다!” 첫째를 안심시키려고 아무말 대잔치를 열었다. 사이렌 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들이 놀랄까 봐 걱정했는데 구급차 안에서는 왜 사이렌을 안 켜고 가나 싶을 정도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요란하게 달리는 구급차에 길을 내어주느라 좌우로 갈라졌던 차들이 다시 정렬하는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첫째는 구급차 안에 있는 것들이 신기한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나에게 질문을 해댔다. 아이가 잠시 말을 쉬면 구급대원이 제하의 평소 상태나 질병 이력 같은 걸 물어봤다. 두 사람의 질문에 번갈아 대답하다 보니 얼떨떨했던 내 정신도 또렷해졌고 그제야 영상을 찍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의료진이나 학교, 재활치료실, 돌봄 선생님도 경련 양상을 미리 알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제하의 모습을 촬영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처치실로 제하를 들여보내고 첫째와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소아응급실이라 텔레비전에는 만화가 나오고 있고 동화책과 장난감도 있었다. 만화도 보고 책도 읽어달라고 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경련이 뭐야? 왜 하는 거야?”, ”제하 경련 안 했으면 좋겠어.” 이제 안 할거란 말은 거짓말이 될 수도 있어서 경련은 딸꾹질 같은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익숙해질 거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의식이 돌아온 제하가 처치실에서 나와서 진료 구역으로 함께 이동했다. 경련은 멈췄지만 약기운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우리 아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처치실에서 석션을 무리하게 했는지 케뉼라와 코로 피가 자꾸 새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첫째가 보지 못하게 재빨리 닦았다. 새벽에 일어난 탓에 잠이 모자란 첫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집에 언제 가냐고 칭얼거렸다. 간호사에게 남편이 곧 올 거라고 말하면서 보호자 의자를 하나 더 부탁했다. 의자 두 개를 붙여서 누울 수 있게 만들어 주었지만 막상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엄마 같이 놀자!” 그제야 생각났는지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였다. 온몸에 이런저런 줄을 달고 누워있는 제하 옆에서 우리는 알까기 비슷한 놀이를 했다. 놀다 보니 자꾸만 흥분해서 소리치는 아이에게 목소리를 낮추자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한편으로는 지루함을 잊은 아이를 보니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놀이를 계속하고 있는데 남편이 도착했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픈 나를 원망하며 병원 카페테리아로 향하는데 첫째도 아빠를 두고 온 나를 원망했다. 제하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서 엄마나 아빠 둘 중 한 명은 병원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수술하는 거 아니라서 금방 퇴원할 거라고 설명했지만 화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밥 대신 먹고 싶은 빵과 음료를 직접 고르도록 했다. 이거 다 먹고 소시지도 사 먹자는 말에 활짝 웃는다. 역시, 화났을 땐 맛있는 걸 먹이면 된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늦었지만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입원 짐을 싸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남편이 가져온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차 앞 유리에 붙어있는 장애인 주차 스티커가 보였다. ‘뇌병변 심한장애’라는 글씨가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현타(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현실자각타임’의 줄임말)가 왔다. 아, 내 아이가 장애인이구나. 내 인생 왜 이렇게 됐지? 그러다 언젠가 봤던 글귀가 생각났다. ‘인생은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그것을 의심하면 괜찮지 않게 된다.’
정말이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을 일도 깊게 생각하면 큰일처럼 여겨진다.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섞여 일어나고 그에 따라 기쁨과 슬픔, 스트레스 같은 감정이 생길 뿐. 삶을 행복과 불행으로 예민하게 저울질하다 칼로 자르듯 정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건 내 마음을 좀먹기만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두 아이와 나의 하루를 준비하고, 밀려있는 일의 순서를 생각하고, 그 와중에 하고 싶은 일도 떠올리고... 바빴던 날은 ‘오늘 하루는 좀 힘들었다’ 정도로 생각해도 될 일이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굳이 생각하지 말기! 운전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 생각을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또 현타가 오면 꺼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구급차에 미처 타지 못한 제하의 유모차가 아파트 1층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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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보를 얻는 방법

글 : 김지영

장애 자녀의 부모에게 정보를 찾고 활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 가족을 위한 정보는 많은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지만 여유가 없는 우리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도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정보에 밝아진 것 같다.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다.

1. 장애인복지 사업 안내 인쇄물

주민센터에서 아이의 장애인등록증이 나올 때 함께 받을 수 있다. 복지 정책이 매년 크고 작게 바뀌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인쇄물이 나온다. 작고 얇은 리플릿이었음에도 아이가 5살이 된 지금까지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는데, 핑계를 대자면 공무원 참고서처럼 생겨서 정말 읽기 싫었다. 이 글을 쓰면서 뒤늦게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자동차세 면세를 빠뜨린 것을 깨닫고 이제서야 신청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4년간 약 200만 원의 면세 혜택을 놓친 것이다. (눈물이 난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www.mohw.go.kr)에 접속해 [정보 > 연구/조사/발간자료]에서 '장애인'으로 검색하면 매년 새롭게 발간되는 장애인복지 사업 안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2. 유관기관 찾기

내게 필요한 정보를 키워드 삼아 관련된 모든 기관을 찾아 리스트를 만든다. 뇌성마비복지관, 시각장애인복지관 등 아이에게 해당하는 특정 장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관. 시청, 구청, 사회복지관, 아동복지관, 장애인복지관, 가족센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등 거주 지역의 아동 및 복지 관할 기관과 서비스 제공 기관.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문화원, 문화재단, 평생문화센터, 문화복지센터 등 거주 지역의 문화여가시설.
각각의 공식 홈페이지에 방문해 보면 관련 기관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거주지 주변 시설의 경우 포털 사이트에서 [지역명+복지관]과 같은 방식으로 찾아보거나, 지도 앱에서 내 위치를 중심으로 ‘복지관'을 입력하는 식으로 검색하면 쉽다.

3. 온라인 툴 활용하기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기관 홈페이지 메인 및 공지 사항을 수시로 체크한다. 사실 모든 사이트를 꾸준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나는 스마트폰의 ‘미리 알림’ 앱을 활용해 격주, 또는 매월 등 원하는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하고 주요 사이트 일부만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나머지는 기관에서 뉴스레터를 제공하는 경우 이메일로 소식을 받아보고 SNS 채널(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팔로우하거나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해서 정보를 얻는다.

카카오톡에서 ‘시각장애’를 검색하면 채널 탭에서 관련 기관이 나온다. 검색 결과가 너무 많을 경우 검색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자

RSS 피드를 구독하는 방법도 있다. ‘RSS'는 'Rich Site Summary’의 줄임말로, 여러 사이트에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왔을 때 각각의 사이트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 RSS 리더나 이메일을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포털 사이트에서 ‘RSS 피드 구독 방법’을 검색해 보면 된다.
도움되는 사이트 1) 온맘 https://www.nise.go.kr/onmam/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운영 중인 ‘온맘'은 장애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종합시스템이다. 영유아기부터 학령기, 성인기까지 생애주기별 양육과 교육 정보를 한 눈에 제공하고 있다. 2) 한국장애인신문 www.koreadisablednews.com 한국장애인신문은 복지, 정치, 경제, 사회, 지역 소식 등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칼럼을 제공한다.

4. 부모 모임 참여하기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끼리의 네트워크는 매우 유용하다. 정보 교환뿐 아니라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어쩌면 가족보다 더 긍정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부모 모임은 온라인 카페일 것이다.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이 가능하고 병원에서의 의료 행위와는 또 다른,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법과 분야를 초월하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제하는 이른둥이, 느린아이, 중증중복장애, 뇌성시각장애 등 5개 이상의 카페에 가입되어 있다.

자조 모임을 통해 서로에게 던진 화두

거주지가 서로 가까운 부모는 카페를 벗어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또 복지관 등에서 진행하는 장애 부모 휴식 프로그램, 자조 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부모들과 인연을 지속할 수도 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자조 모임을 직접 모집, 운영할 수도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보통 연초, 2월쯤에 1년 동안 활동할 사람을 모집한다. 프로그램에 몇 번 참여해 봤더니 어린아이보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중장년층 부모가 많았다. 사실 부모 모임이 가장 필요한 건 초보 엄마들일 텐데, 정보가 부족하거나 돌봄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엄두가 안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5. 장애인 단체 가입하기

장애인부모회, 장애인부모연대, 중증중복장애인부모회 등 장애인 단체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면 시각장애인협회 등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가입 시 보통 회비를 매월 납부하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으로 초대를 받는데 이를 통해 단체 내에서 진행되는 행사나 복지 정보 등을 공유받을 수 있다. 또한 정부에 장애 당사자와 가족을 위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이의 건강과 발달, 교육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 가족 지원 등 생활에 직결되는 정보를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정보를 찾아가기 보다 정보가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최대한 자동화하고 이메일과 카카오톡 등 자주 쓰는 툴을 활용하자. 정보를 구조화하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번거롭고 귀찮거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일 수 있지만 마음먹고 한 번 만들어 두면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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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보조기기 입문

글 : 김지영

아이가 태어나면 걷고, 잡고, 말하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누워서 지내는 중증 뇌병변 장애 아이에게는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고개도 못 가누는 아이의 자세와 움직임을 내 팔다리로 보조해 주다 보니 나까지 허리며 어깨며 여기저기 삐그덕거렸다. 그나마 기댈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애인 보조기기였다. 장애 당사자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보호자를 위한 것까지. 장애 유형과 운동 능력 등에 따라 다양한 용도의 보조기기가 있다. 한편 종류가 무궁무진한 만큼 우리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어떤 것인지 몰라서 헤맬 수도 있다. 오늘은 뇌병변 심한장애인 다섯 살짜리 우리 아이가 사용해온 보조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유아동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기기

내가 처음으로 보조기기를 접했던 것은 '장애인 보조기기 렌탈 서비스'('렌탈 바우처'라고도 한다)를 신청할 때였다.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도 잠시,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1. 피더시트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내가 아이를 돌볼 때 가장 힘든 게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밥을 먹일 때였다. 고개를 못 가누는 아이를 왼팔에 안고 오른손으로 이유식을 먹였는데 한 끼 먹는데 30분에서 1시간은 걸렸고, 강직이 있는 아이라 먹는 내내 뒤로 뻗쳐서 왼쪽 팔, 어깨와 등 전체에 통증이 있었다. 당시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내 등을 본 선생님은 왼쪽 등 근육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굳어있다고 했다. 한편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지하는 팔에 힘이 빠지니 아이의 자세 또한 거의 눕다시피 하거나 고개가 자꾸 젖혀져서 기도 흡인의 위험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우리 아이의 첫 보조기기는 앉기 자세 유지를 위한 피더시트(feeder seat)였다. 재활치료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란색 의자인데 이름처럼 식사나 놀이, 학습 시간에 휠체어를 대신해 앉아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부드러운 재질이라 앉았을 때 편하면서도 자세를 잘 잡아주어 근 긴장도가 높은 아이에게 좋은 의자다. 이물질이 묻으면 물티슈로 닦거나 물로 간편하게 씻을 수도 있어 자주 토하고 기저귀 밖으로 변이 새는 우리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2. 장애인 카시트, 유모차 - 아동용 보조기기

외출할 때 일반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면 고개가 떨어졌다 젖히기를 반복하고 허리가 휘는 등 차의 움직임에 따라 자세가 무너졌다. 반면 장애인용 카시트는 등과 허리에 패드가 있고 벨트도 복부 전체를 감싸는 모양이라 아이를 안정감 있게 잡아주었다. 다만 초반에 고개가 떨어지는 것이 잘 잡히지 않아서 시중에 판매하는 머리 고정 벨트나 목베개를 함께 사용했다.
이동용 보조기기로 유모차형 휠체어(장애인 유모차)도 빼놓을 수 없다. 장애 아동의 자세를 잘 잡아주도록 설계되어 있어 단순히 이동뿐 아니라 신체 변형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유모차형 휠체어는 대표 제품을 한두 개로 좁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종류가 많은데 아이의 상태나 생활 환경에 따라 최소 요구사항을 정하고 하나씩 따져보면서 고르면 된다. 180도로 펴져서(리클라이닝 기능) 유모차에서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지, 체간을 잘 잡아주는지, 접어서 차에 실을 수 있는지, 쉽고 빠르게 각도를 조절하고 접을 수 있는지, 여자 혼자 들 수 있는 무게인지, 디럭스 유모차 수준으로 몸체와 바퀴가 안정적인지, 핸들링이 좋은지, 특히 산소발생기와 석션기 등 짐이 많은 아이의 경우 짐을 실을 공간이 충분한지 등을 조건으로 꼽을 수 있다. 나는 리클라이닝 기능과 우리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지를 최소 조건으로 유모차를 선택했다.

3. 발목 보조기, 기립기 - 보행 및 서기 보조기기

서서 걷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아이만 발목 보조기(단하지 보조기)를 착용하는 건 아니다. 발과 발목의 변형과 구축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거나 서기 훈련을 할 때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발목 보조기를 착용한다. 우리 아이는 평소에는 쓰지 않고 기립기에서 서기 훈련할 때만 착용한다. 기립기(기립 보조기기, 스탠더 라고도 한다)는 스스로 서거나 걷지 못하는 아이의 근력과 뼈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실에 기립기가 없는 경우도 있고, 있더라도 치료 전이나 후에 30분씩 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집에 들이게 되었다. 아이가 고개를 가눌 수 있다면 받침이 앞에 있는 전방기립기, 가눌 수 없다면 받침이 뒤에 있는 후방기립기를 선택한다.

4. 휴대용 의자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우리의 첫 보조기기인 피더시트를 슬슬 바꿀 때가 되었다. 제하 몸집이 커졌을 뿐 아니라 이동하려면 아이를 들어서 바닥에 눕혀놓고, 피더시트를 옮긴 후 다시 아이를 안고 가서 피더시트에 앉혀야 했다. 피더시트도 아이도 둘 다 무거운데 이걸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한다. 또 부피가 큰 피더시트는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명절에 친척 집에 가거나 여행 가서 실내에 머물게 되면 삼시세끼 아이를 안고 밥을 먹여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실내용 유모차를 따로 살 수도 없고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휴대용 자세 보조 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퀴가 달려있어 앉은 상태로 이동할 수 있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손잡이만 없을 뿐 형태와 기능이 유모차와 비슷하다.

5. 기타 자세 유지 보조기기

아이가 커가면서 추가로 들인 것들은 대부분 신체 변형을 예방하면서 다양한 자세를 도와주는 자세유지 보조기기이다. 엎드린 자세유지를 보조해 주는 '웻지(wedge)'는 경사가 있는 지지대로 평평한 맨바닥에서 이른바 '터미 타임(Tummy time)'을 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환경적으로 난이도를 낮춰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서서 기립기 훈련을 할 때나 피더시트에 앉아있을 때마다 한쪽으로 고개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머리 지지대인 '헤드 마스터칼라(Head mastercollar)'를 써보기도 했다. 푹신한 매트와 다양한 형태의 쿠션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세지지시스템'은 찍찍이로 탈부착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조합으로 아이가 다양한 자세를 잡는 것을 도와준다. 척추측만과 고관절탈구 예방을 위해 누워있을 때도 쿠션형 제품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추후 사용을 고려하는 것으로는 목욕 의자, 전동 침대가 있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아기 욕조에 고개를 걸쳐놓고 씻기는데 이젠 한계가 와서 목욕의자가 필요할 것 같다. 이름은 목욕 '의자'지만 아이를 눕힐 수도 있고,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거나 받침대를 함께 구매하면 어른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씻길 수 있다. 또 바닥보다 침대가 아이를 간호하거나 들고 내릴 때 편한데, 침대 자체의 높이 조절뿐 아니라 상체를 세울 수 있는 전동침대는 누워서 비위관이나 위루관으로 식사하는 아이에게는 역류를 방지해주기도 한다.

보조기기 지원받기

보조기기는 거품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다. 다행히 국가 지원을 비롯해 각종 복지 기관과 재단,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보조기기를 직접 지원받거나 구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집에 있는 보조기기도 내돈내산은 단 하나도 없이 모두 지원받아 구매 또는 대여했다.(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1. 국가 지원 서비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보조기기센터에서는 제품 대여, 소독 세척, 맞춤 제작, 전시체험장 견학, 의류 리폼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역별로 운영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서울시 센터에서는 1인당 최대 3개까지 동시에 대여할 수 있고 직접 수령은 물론 배송도 된다. 대여료로 반납 시 환급되는 보증금만 내면 되는데 보증금 자체도 저렴해서 거의 무료에 가깝다. 보조기기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지원 사업은 물론 보조기기 활용 교육을 시행하기도 하니 홈페이지를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
시중에 나와 있는 보조기기는 중앙보조기기센터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비롯해 보조기기 판매 사이트(설명이 더 자세하고 가격도 확인할 수 있어 보기가 편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보조기기가 필요할지, 어떤 회사 제품이 좋을지. 내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구매 전 전문가의 진료나 상담을 받아본 후에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재활의학과 의사 및 치료사, 보조기기센터의 보조공학사, 보조기기 판매업체 담당자(주로 보조기기 렌탈서비스 이용 업체) 등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조언을 구해보자. 보조기기는 한 번 들이면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한다. 적절한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을, 가족 모두에게는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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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하기

글 : 김지영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마치 작은 천을 이어 붙인 조각보 같다. 짧은 시간에 할만한 게 별로 없다 보니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흘려보내기 일쑤고, 쉬면서도 이래도 되나 알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육퇴 후 뭐라도 해야지 다짐하지만 아이들 재우고 나면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기가 어렵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었고,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었다. 시간과 돈 어느 쪽도 여유가 없는 지금, 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산책하기

얼마 전 아이 치료가 끝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앉아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처음으로 치료실 주변을 산책했는데 평소 몰랐던 풍경이 보였다. '여기가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동네였구나.', '이렇게 예쁜 카페가 있었는데 왜 몰랐지?' 택시가 오기 까지 단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일 10분 만이라도 이런 시간이 있으면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안과 집밖에 있는 시간을 모두 좋아했지만 강제 집순이가 되니 더 기를 쓰고 나가고 싶어져서 짧게라도 외출을 해야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다. 짧은 외출로는 목적 없는 걷기, 산책이 최고다. 산책할 시간조차 없다면 아이 치료실 가는 택시 안에서 폰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로도 꽤 기분 전환이 된다.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는 대학생 때 시작한 나의 오랜 취미이다. 매일 보는 흔하고 사소한 장면일지라도 카메라를 통해 시선을 주면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똑같은 일상에서 보석 같은 순간을 찾아내는 눈이 생긴다. 특히 필름 카메라는 디카나 폰카와 달리 결과물을 미리 확인할 수 없어서 필름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어떤 장면이 담길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또, 필름이 무한대가 아니기에 한컷 한컷 신중을 기하게 되는데 숨죽이고 집중하다가 셔터가 '찰칵'하는 그 순간이 짜릿하다. 출산 후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필름 카메라를 최근 들고 다녀보았다. 아이만 보고, 앞만 보고 스치듯 지나온 길에서 다시금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보는 수단이 될 듯하다. 필름 카메라 구매가 부담스러우면 일회용 카메라를 써보는 것도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사진관에 필름 스캔을 요청하면 디지털 파일로 받을 수 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만 인화를 요청할 수 있다.

그림 그리기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예술교육센터를 '시민이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탐색하는 공간'으로 소개한다. 공간 자체도 좋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이곳에서 낙서를 주제로 처음으로 오일파스텔을 접했다. 순수 미술은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걱정과 잡생각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된다. 또 좋은 점은 결과물을 보며 소소한 성취감도 얻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1회로 한 달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끝나고 나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서 색연필을 샀다. 집에서 틈틈이 그리기도 하고 가끔 밖에도 들고 나간다.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인터넷에서 '컬러링', 'DIY 명화' 등으로 검색하면 손쉽게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순수 미술보다 실용적인 것이 좋다면 뜨개질, 자수, 미싱으로 옷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특히 뜨개질 재료는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사람을 꽤 봤다.

수집하기

결혼 전부터 성냥을 수집했다. 원래는 여행 기념품으로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 왔는데 무겁기도 하고 어떤 돌멩이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바꾼 것이 성냥이다. 저렴한 가격에 가볍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특색이 있어서 수집하기 좋았다. 모로코, 스페인, 필리핀, 태국, 일본... 여행지에서 사거나 식당에서 받아오기도 하고 내 취미를 아는 친구들에게서 선물 받은 것도 있다. 아이 낳고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품 가게에서 우연히 예쁜 성냥을 발견했다. 2천 원짜리 성냥을 계산하는 데 어찌나 설레던지.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얼굴이 따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소녀 감성이 솟아올랐다. 아이 외에 집착할 것이 생긴다는 것, 수집은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작은 사치하기

내 소비 습관은 푼돈은 아끼고 큰돈은 잘 쓰는 것이다. 결혼 전에도 몇백 원 아끼려고 집 앞에 마트를 두고 길 건너 시장에 가면서 1년에 한두 번은 비행기를 꼭 탔다. 육아로 퇴사한 뒤에는 집에 커피를 잔뜩 놔두고 혼자 카페에 가는 게 어색하고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사치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작은 사치의 기준은 '이 정도 돈 쓴다고 안 망한다, 이거 아낀다고 큰 부자 되는 거 아니다'이다. 출산 후 처음 혼자 카페에 갔을 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떴다.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카페로 나오면 집중도 더 잘 됐다. 또 다른 작은 사치로는 꽃을 사는 것이다. 종류나 관리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사두면 짧게는 일주일 길면 2주는 두고 볼 수 있다. 단 한 송이 꽃이라도 볼 때마다 기분이 싱그러워진다.

점심밥 대충 먹지 않기

아이 치료실 다니느라, 혼자 차려 먹자니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점심을 거르거나 대충 먹은 적이 많다. 점심으로 일주일에 3번 이상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다 체력도 자존감도 떨어지는 것 같아 혼자 먹어도 든든하게, 예쁘게 차려 먹기로 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SNS를 활용하고 있는데 점심 사진만 올리는 용도로 새로 만든 이 계정은 댓글이나 팔로워 수 등 다른 신경은 쓰지 않으려고 굳이 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업로드를 건너뛰는 날도 있지만 덕분에 아직 흐지부지되지 않고 잘 차려 먹고 있다. 한 가지 더, 점심에 밖에서 혼자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맥주나 하이볼을 꼭 주문한다. 밤에 육퇴하고 남편과 마시는 것과 다르게 일탈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명상하기

명상은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가 공통으로 추천한 방법이다.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명상은 아니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잠자리 명상... 종류가 많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바쁘게 돌아가던 생각이 잠시 멈추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순간에 집중해 맛과 향을 온전하게 느끼면서 먹는 것도 명상이다. 주의를 집중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어 마음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길러주는 것. 명상을 많이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통찰력이 더욱 예리해진다.

우리에겐 낭만이 필요해

이런 거 할 시간에 아이 스트레칭이나 한 번 더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책이라도 읽어주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마음 한편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만 하는 것은 기계나 다름없는 삶일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낭만이 필요한 것 같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사전에서는 '낭만'을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일탈, 새로운 경험, 몰입... 낭만적인 시간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을 건강하게 하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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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회로 나아가기 : 가족에서 사회로

글 : 윤승아

나 그리고 가족

영아기일때는 사실 이 상황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고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내아이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가슴찢어지는 고통, 뭘해야할 지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 당황, 좌절감, 뭐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쏟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능력과 지식도 생기고 가족들도 받아들여 이해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재활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목표로 달리며 이제 좀 살아갈 힘이 생기면, 아이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지낼 수 있는 활동지원, 교육기관의 이용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아이는 같이 사회로 나가는 첫 연습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불안함이 커서 선듯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

나의 불안함은 언제 할 지 모르는 경련. . .

아이는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할 수 없어 외부에서 옷을 입히거나 벗기면서 냉난방 기구로 외부온도를 조절해 주어야 했고 감염에 취약해서 아프지 않게 해야 했으며 어설픈 움직임으로 다치지 않게 해야하고 무엇보다 언제 할지 모르는 경련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간질중첩증(스스로 잘 못멈추는 증상)으로 응급약을 항문으로 투약해야 했기에 다른사람이 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쩔수 없이 아이를 안전하게 케어한다는 명분으로 아이 스스스로 조절해보고 시도해볼 기회를 너문 않주고 의존적으로 키우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기회가 왔을때 내가 챙겨왔던 이 모든것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기엔,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났고 쉽게 믿음이 안생겼습니다.

아이를 4시간이상 맡길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 있나요?

아이가 어릴 때 들었던 부모교육이 있었습니다. 6개의 항목을 주제로 부모교육이 구성되었고 그중 사회성에 관한 강의가 있었는데, 경력이 많은 특수교사였던 강사분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몇 명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모님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못 적었습니다. 강사는 앞으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4시간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을 60명을 확보하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없는데 60명이라니요. . . . 그렇게 많이? 사실 이유는 지금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질문만 기억 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나 이외에는 돌볼 수 없게 계속 사는 건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지요. 나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집안에 일이 생길 수 도 있고 나는 늙습니다. 영원히 내가 다 살펴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금방 제게 닥쳤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돌봄이 필요했던 상황이 생기다

저는 일단 구하는 것도 미루었습니다. 가족의 지원이 있어 당장 시급하지 않기도 했지만 낮선 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루었던 일이 갑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도와주시던 친정아버지가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셔야 했했습니다.전적으로 도와주시던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어려워 지자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구하고 나서도 많은 부분을 한동안은 제가 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먹이던 것을 마저 먹여주시고 그렇게 조금씩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조금씩 믿음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저도 암진단을 받아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강제로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제가 걱정하던 위험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어요.

기관을 이용하기 시작하다

이런 연습의 과정을 거쳐 아이를 기관에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발달하기 위해선 다양한 자극이 필요한데 다양한 사람으로부터도 받을 수 있고 사회성이 발달 할 수 있을것 같아서죠. 사실 아이가 좌절하지 않고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그럼 성장 할 수 가 없잖아요. 넘어져봐야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상처받아야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 엄청난 고민끝에 여러형태의 기관중 바로 집앞에 병설초 유치원 특수반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한번 맡겨보니 제가 걱정한거보다는 별일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용기가 조금 났죠.
처음 아이를 입학시키고는, 경련을 하는 아이라 불안함이 컸던 이유도 있지만,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 5분 거리에서 1달 이상을 배회했습니다. 잠깐씩 살짝 보러 가기도 했어요. 다행히 선생님 이 이해해 주셨어요. 아마도 많은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저와 같았나봐요. 선생님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해주시고 다양한 시도하고 있는 방법들을 공유해주시고 하루 이틀 그렇게 별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자 조금씩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반나절 지내고 점심을 먹고 하원하던 아이가 어느 날 오후 4시까지 체험학습을 간다고 해서 또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걱정 말고 보내라 잘 할 수 있을 거다"하셔서 보내기로 하고는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또 괜찮다고 설득하셔서 아이만 보내기로 했습니다. 체험학습 당일 아침에 큰 배낭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갔다가 “어머니 무슨 1박2일로 여행가요? 다 빼셔도 돼요. 걱정 마세요. 잘 챙길게요"하시며 싸가지고 갔던 비상약이며 추울 때를 대비한 여벌 옷, 로션, 수건, 먹을 것 등등 다 빼시고 거즈 손수건만 하나만 본인 가방에 챙기시며 가방 채로 돌려주셨지요. 조금은 무안하고 창피했는데, 온 마음으로 잘 챙길테니 믿고 보내 달라셨던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관계와 삶의 폭을 넓혀가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나와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전보다 쉽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게 되었고 또 아이가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요. 작은 이사짐 수준으로 들고다니던 짐들로 하나씩 줄이게 되었어요.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보면 아직도 60명은 안됩니다. 아무리 짜내어 꼽아봐도 30명이나 될까요? 하지만 전보다 훨씬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 그 누구든 4시간 정도는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60명이 되면, 이 목표는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가 독립적인 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과 맞닿아 이 사회에서 내가 없이 아이가 살아나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하고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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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편견에 대해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편견의 시선을 많이 느낀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 빼고는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남들보다 작은 일에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가족인데. 처음엔 그런 시선에 위축되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자치구의 도서관에서 편견을 주제로 시민 작가를 공모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전시에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편견)'을 주제로 사진과 글을 출품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K-장녀라 그런가, 나는 어릴 때부터 누가 내 걱정을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웬만한 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고 가족들에게는 아예 얘길 하지 않거나 상황이 종료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 알렸다. 성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이유로 지인에게 아이의 장애를 밝히기가 ㅋ꺼려졌다. 걱정의 눈빛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주 만나거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숨길 수가 없어서 일찌감치 얘기를 했지만 가끔 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절반 이상이 '대단하다'이다. "어떻게 그렇게 밝아?", "긍정적이네!",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고?" 장애인 가족은 으레 어둡고, 부정적이고, 간병과 육아와 살림과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삶이 찾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사는 것뿐. 내가 대단해서, 타고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악의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내 삶이 어둠인 것 같다고 굳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믿고 살고 있던 나로서는 순간 힘이 빠진다. 내 삶은 내가 대단해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남들은 출산하면 축복 속에서 육아를 하는데 우리는 축하는 커녕 측은함과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꾸역꾸역 아이를 키웠다. 양가 식구들도 우리 가족을 안쓰럽게만 바라보았다. 물론 출산 후 약 2년 동안은 좋은 일이 있어도 오롯이 행복감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러나 출산한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힘든 순간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며,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출산 전보다 새로운 것에 더 많이 도전하고 공부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집 나가면 쯧쯧

아들 둘과 집에만 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릴 땐 쌍둥이 유모차에, 요즘은 장애인 유모차와 킥보드에 하나씩 태워서. 가까이는 동네 산책부터 멀리는 놀이공원까지 가기도 한다. 아이들 핑계로 나왔지만 나도 콧바람을 쐴 수 있어 외출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불편한가 보다. 흘끔흘끔 혹은 대놓고 빤히 보는 사람들. "쯧쯧"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아이고 엄마 혼자 애 둘 데리고 고생하네, 쯧쯧...",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됐니.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우린 신나는 나들이 중인데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면 흥이 깨진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이고~ 너 왜 그렇게 사니, 쯧쯧' 하면 기분이 어떨까?
명품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의 유래가 된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11세기 영국에서 한 영주의 아내였던 고디바는 과도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백성을 구하고자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문과 창을 닫고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장애인을 길에서 스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궁금하거나 안쓰러워도 불편한 눈빛과 말은 거둬줬으면 좋겠다. 걱정되면 도와주기만 해도 된다. 길을 비켜주거나 문을 열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 가족, 좋~을 때다!

장애인 가족을 바라보는 불편하거나 측은한 시선을 주제로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은 산책길 한가운데서 포즈를 취하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한 어르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상되는 말이 흘러나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제일 좋~을 때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편견 없이 행복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힘이 난다.
말에는 힘이 실려있다. 누가 안쓰럽다고 하면 정말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 행복감은 배가 된다. 퇴사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아이의 장애를 얼굴에 점 하나 있다는 것 정도로 반응해 준 회사 후배(절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하와 형을 번갈아 보며 쌍둥이냐며, 둘 다 너무 잘생겼다고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호들갑 떨며 말해준 식당 종업원.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큰일 난 게 아니다. 그런 시선들이 장애인 가족 스스로에게 예기치 못하고 맞닥드리게 된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위 글과 사진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주관으로 지난 10월 25일 경춘선숲길갤러리에서 개막한 '뜻밖의 OOO 전시회'에 참여한 작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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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 해방일지 – 심리상담부터 정신과 약 복용까지

글 : 김지영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우리 가족은, 나는 어떻게 살지? 질문에 답을 내리거나 뭔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전쟁 같은 일상이 펼쳐졌다. 몸으로는 지금 할 일을 하면서 머리로는 그다음에 해야 할 일만을 생각했기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이런 날이 어쩌다 하루 이틀 있는 게 아니라 매일 계속되는데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심리상담과 정신과 약물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내 정신적 여정을 풀어보려 한다.

정신 줄이 끊어지니 화살이 가족에게 날아갔다

'쌍둥이', ‘이른둥이’, ‘초저체중아’라는 타이틀로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제하가 갑작스러운 괴사성장염으로 첫 수술을 받을 때 남편과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어떻게든 잘 키워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다음날, 주치의는 아이가 수술받을 때 혈압이 떨어져 뇌 손상을 입은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의사가 보여준 화면 속 제하의 뇌는 녹아내린 듯 대부분 검게 보였다. 말을 못할 수도,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잘 키워보자는 다짐은커녕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겼다.
제하가 퇴원해 집으로 온 뒤부터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두 아이가 동시에 울 때였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둘을 달랠 수 있었지만,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는 매 순간 갈등이 일었다. 누구를 먼저 안아줘야 하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질문들처럼,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아픈 문제였다. 그리고 제하에게는 미안하지만 늘 첫째를 먼저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하의 울음소리는 애써 안 들리는 척해봤지만 온몸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첫째를 재빨리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제하는 울다 지쳐 훌쩍이고 있거나 혼자 잠들어 있었다. 제하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탓에 숨소리를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늘 숨이 찼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거의 5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봤고 남편이 퇴근하면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말 그대로 손발을 총동원해서 두 아이를 달래던 시절
웬만하면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씩씩하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는데, 양육 스트레스 검사나 각종 심리검사 결과는 ‘고위험군’이었다. 너무 바빠서 내 감정을 제대로 느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힘들어도 견딜만하다고 착각하는 동안 내 스트레스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남편을 비난하고,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부터는 아이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심리상담으로 시작해 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복지관에서 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무료에다 제하가 치료받는 동안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장점이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서약서를 내밀었다. 상담 기간에는 자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는 아닌데, 여기서 상담받는 나는 그렇게 심각한 상태구나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의 기질, 성격유형 검사를 먼저 받았다. 일단 나와 배우자가 어떤 기질이고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 공통점도 있지만 애초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구나. 다정한 우리 남편이 왜 아이의 치료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이 체중 늘리는 것을 나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지, 이런 나를 부정적이라 여기는 남편을 보며 나만 큰일 났고 나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아 외로울 정도였는데 그동안의 갈등이 헛웃음이 날 정도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기질, 성격 유형 검사지
상담사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상담이 도움은커녕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데 나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반대로 상담을 받는 사람도 마음을 충분히 열어야 한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는 식으로 상담사를 대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면 상담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장애인 부모 상담이니까 아이 때문에 느끼는 감정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 배우자 등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마음속 응어리가 상당히 풀렸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진득이 듣고 공감하는 한편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해 주었다. 귀가하면 남편과 상담 내용을 가지고 대화도 하고, 선생님의 조언대로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밖에 나가 외식을 하기도 했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30회기로 진행되었고 부족하면 추가로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마음에 안정을 찾은 상태로 딱 30회 되던 날 상담을 종료했다.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은 약의 도움을 받아보자

그렇게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상담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욱’하고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마침 미운 네 살에 접어든, 말은 하지만 말을 듣지는 않는 첫째에게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이건 고작 네 살짜리에게 가혹한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말을 하는 와중에도 후회가 일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상담을 받는다고 달라질까?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화는 상담만으로 다스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생각보다 주변에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닌지, 잠에 취하거나 축축 처지는 건 아닌지, 살이 찌는 건 아닌지 등 부작용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약을 먹어본 경력자(?)들은 요즘은 약이 좋아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의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우울증과 불안의 정도를 체크하는 자가 보고식 설문지를 작성하고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다. 손목과 발목에 센서를 붙이고 5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이걸로 정말 스트레스 검사가 되는 건지 처음에는 의심이 되었다. 이 검사의 원래 명칭은 '자율신경계 검사(HRV, Heart rate variability)’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파악해 스트레스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현재 몸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진단의 보조 자료가 된다고 한다.
설문 결과도, HRV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충분히 약을 먹을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 복용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그릇이라고 치면, 그릇에 가득 찬 물은 스트레스다. 햇볕을 쫴서 물을 증발시키거나 그릇을 기울여서 물을 좀 흘려보내야 하는데 나의 문제는 물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제하의 장애) 물을 쏟아내기도 어려워서(스트레스 해소)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약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의존도가 적은 약을 처방해 달라고 부탁해 최소 용량으로 복용을 시작했다. 이후 2주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하면서 약효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경과를 살폈다.
비상용으로 남겨둔 약
약을 먹으면서 확실히 화가 덜 났다. 거의 안 났다. 아이가 미운 행동을 해도 ‘아이니까’ 하고, 화내기 전에 객관적으로 상황 판단을 먼저 할 수 있었다.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생각도, 모든 게 나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할 만큼 하고 있다는 만족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약을 먹고 의사와 상의 후 2주 치 비상약만 남긴 채 복용을 중단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좀 더 일찍 먹었다면 아이와 남편에게 험한 꼴 덜 보였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네가 상담을 왜 받아?’, ‘정신과는 정신병 걸린 사람이나 가는 곳 아니야?’ 옛날 같으면 이런 시선이 있었겠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요즘은 흔한 일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사춘기에 비뚤어지는 것처럼, 어른이 갱년기 때 감정이 널뛰는 것처럼 감정에는 호르몬도 관여하기 때문에 내가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몸이 아플 때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상담을 받고 필요하다면 약을 먹는 것도 고려해 보자. 조금만 용기 내면 내 그릇이 스트레스로 넘치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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