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편이라는 말이 필요해
글 : 김지영
자다가도 일어나 시간 맞춰 피딩을 하고, 항경련제 먹일 시간을 놓칠까 늘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30분에 5만원 가까이 하는 재활치료에 늦지 않으려 분주히 움직이고, 아이가 기관절개와 위루관을 하고 있다 보니 감염 위험 때문에 손도 자주 씻게 됩니다.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중증질환 산정특례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질병코드로 받을 수 없을지 미리 정보를 찾아봅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종종 “예민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나를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거잖아!” 아이도 아픈데 남편과의 관계까지 틀어지면 버틸 자신이 없어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남편의 말 때문에 정말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의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문득 떠올려봅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바쁜 것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나는 원래 시간 약속을 잘 못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회사다닐 때는 지각도 자주 했죠. 그런 내가 지금은 아이들 스케쥴에 쫓기며 분 단위로 살아가는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전의 나는 출근길에 마주치는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걸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쁜 도시 사람들 틈에서 나름의 여유와 풍류를 즐기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의 삶은 내가 원했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휴식과 여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이상한 실험을 했어요. (중략) 바쁜 사람은 쓰러진 사람을 본 척 만척하고 지나갔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도와줬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우리 모두 다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악하잖아요. 그렇다면 언제 사람이 좀 강퍅해지고 약해질까? 저는 그게 바쁠 때 같거든요. 그래서 바쁜 것은 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나는 첫째가 무언가를 하는 걸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못했습니다. 등원길에 길가에 핀 꽃을 만져보고 싶어 해도 “빨리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유치원에 데려다주자마자 둘째와 치료실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밥을 먹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는지, 입 안 가득 밥을 문 채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는 밥 먹으면서 말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속으로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말할 맛 떨어졌겠다’ 싶으면서도요. 그렇게 나는 점점 ‘불친절한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획노동에 잠식되는 엄마들
늘 정보가 고팠던 나는 머릿속까지 늘 바빴습니다. 장애인 복지, 의료비 지원사업, 가족 프로그램.. 즐겨찾기 해둔 사이트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뉴스레터나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받아보며 매일 정보로 나를 살찌웠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은 결국 전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죠. 한동안은 내가 낸 세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돌려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 공장식 농장의 좁은 우리 안에서 살만 찌는 돼지처럼 머릿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하려고 했더라?’, ‘뭐부터 해야하지?’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처음에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할 일을 빼곡히 적어두었지만 자꾸 기한을 놓쳐서 알림 앱으로 옮겼습니다. 오늘 할 일, 매주/매월 할 일, 언젠가 시간 나면(하지만 영원히 못할 것 같은) 할 일 등으로 목록을 나누고 날짜와 시간을 배분해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렇게 더 생산적인 엄마가 되는 대신, 나는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할만큼 정보에 압도되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기사에서 나를 짓누르던 것이 ‘기획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노동은 가족생활 전반을 계획하고, 정보를 찾고, 미리 대비하는 노동입니다. 청소나 빨래처럼 눈에 보이는 실행노동과 달리 잘 드러나지 않죠. 그런데 이 일을 대부분 아내가 맡게 된다고 합니다. 2024년 한국갤럽은 기획노동을 추가해 ‘가사노동 실태’를 새롭게 조사했습니다. 월간 가사노동 시간에서 남녀 격차는 실행노동은 2.9배, 기획노동은 3.4배에 달했습니다. 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그 격차가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OO제출’, ‘△△만들기’, ‘XX예약’ 내가 깨어 있는 동안 휴대전화에는 이런저런 알람이 울립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냉장고에 붙여둔 다이어트 자극 사진처럼 제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가사와 육아처럼 당장 처리해야하는 일때문에 자꾸 미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뤄도 되는 일도 있지만 시간 맞춰 약 먹이기, 의료소모품 재고 관리처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나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머리는 하루 종일 풀가동 상태인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별로 없으니, 하는 일 없이 바쁜 것 같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조차 헷갈립니다. 이 무슨 사춘기 같은 고민인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마흔이 넘어 찾아온 두 번째 사춘기 같은 시간을 지나며,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남편은 부탁하면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기획노동을 전적으로 맡은 나와, 주어지는 일을 수행하는 남편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힘듦을 남편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흔히 남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데, 나 역시 힘든 걸 시시콜콜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주말부부 생활도 그 거리감을 더 키웠습니다. 이건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남편의 이해와 지지를 받는 사람과 핀잔을 받는 사람,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중간 쯤에 속해서, 남편의 응원과 핀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흔들리고 있었죠. 쓸데 없는 걱정한다, 예민하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억울함이 차오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당신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속 편한 소리 할 수 있는 건 하루 종일 내가 살아내는 세계一숟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주사기가 있고, 아이들 속옷이 있어야 할 자리엔 여전히 기저귀가 쌓여있는一에서 일정 수준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나도 대충 살고싶어요. 그런데 서로 완전히 다른 도움이 필요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다고요. 아내가 예민한 것 같나요? 엄마가 되고 나서 삶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늘 긴장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핀잔을 던지기 전에 아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길,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길 바래요. 남편이 나와 같은 편이라는 감각만으로도 아내는 훨씬 덜 외로워집니다.
남편: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닥치면 다 되는데 미리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아내: (닥치기 전에 내가 미리 다 해결하고 있다는 걸 왜 몰라줄까…)
>> 걱정되는구나 / 불안하구나 / 미리 대비하고 있었네 /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남편: 예민하네, 과민반응이야, 완벽주의 같다, 너무 까다로운 거 아냐?
아내: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 병원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단 말이야…)
>> 우리 아이 아프지 않게 돌보려면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는구나. 난 잠깐이지만 넌 하루 종일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