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같은 편이라는 말이 필요해

글 : 김지영

자다가도 일어나 시간 맞춰 피딩을 하고, 항경련제 먹일 시간을 놓칠까 늘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30분에 5만원 가까이 하는 재활치료에 늦지 않으려 분주히 움직이고, 아이가 기관절개와 위루관을 하고 있다 보니 감염 위험 때문에 손도 자주 씻게 됩니다.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중증질환 산정특례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질병코드로 받을 수 없을지 미리 정보를 찾아봅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종종 “예민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나를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거잖아!” 아이도 아픈데 남편과의 관계까지 틀어지면 버틸 자신이 없어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남편의 말 때문에 정말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의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문득 떠올려봅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바쁜 것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나는 원래 시간 약속을 잘 못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회사다닐 때는 지각도 자주 했죠. 그런 내가 지금은 아이들 스케쥴에 쫓기며 분 단위로 살아가는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전의 나는 출근길에 마주치는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걸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쁜 도시 사람들 틈에서 나름의 여유와 풍류를 즐기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의 삶은 내가 원했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휴식과 여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이상한 실험을 했어요. (중략) 바쁜 사람은 쓰러진 사람을 본 척 만척하고 지나갔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도와줬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우리 모두 다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악하잖아요. 그렇다면 언제 사람이 좀 강퍅해지고 약해질까? 저는 그게 바쁠 때 같거든요. 그래서 바쁜 것은 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나는 첫째가 무언가를 하는 걸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못했습니다. 등원길에 길가에 핀 꽃을 만져보고 싶어 해도 “빨리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유치원에 데려다주자마자 둘째와 치료실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밥을 먹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는지, 입 안 가득 밥을 문 채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는 밥 먹으면서 말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속으로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말할 맛 떨어졌겠다’ 싶으면서도요. 그렇게 나는 점점 ‘불친절한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획노동에 잠식되는 엄마들

늘 정보가 고팠던 나는 머릿속까지 늘 바빴습니다. 장애인 복지, 의료비 지원사업, 가족 프로그램.. 즐겨찾기 해둔 사이트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뉴스레터나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받아보며 매일 정보로 나를 살찌웠습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은 결국 전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죠. 한동안은 내가 낸 세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돌려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 공장식 농장의 좁은 우리 안에서 살만 찌는 돼지처럼 머릿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하려고 했더라?’, ‘뭐부터 해야하지?’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처음에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할 일을 빼곡히 적어두었지만 자꾸 기한을 놓쳐서 알림 앱으로 옮겼습니다. 오늘 할 일, 매주/매월 할 일, 언젠가 시간 나면(하지만 영원히 못할 것 같은) 할 일 등으로 목록을 나누고 날짜와 시간을 배분해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렇게 더 생산적인 엄마가 되는 대신, 나는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할만큼 정보에 압도되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기사에서 나를 짓누르던 것이 ‘기획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획노동은 가족생활 전반을 계획하고, 정보를 찾고, 미리 대비하는 노동입니다. 청소나 빨래처럼 눈에 보이는 실행노동과 달리 잘 드러나지 않죠. 그런데 이 일을 대부분 아내가 맡게 된다고 합니다. 2024년 한국갤럽은 기획노동을 추가해 ‘가사노동 실태’를 새롭게 조사했습니다. 월간 가사노동 시간에서 남녀 격차는 실행노동은 2.9배, 기획노동은 3.4배에 달했습니다. 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그 격차가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OO제출’, ‘△△만들기’, ‘XX예약’ 내가 깨어 있는 동안 휴대전화에는 이런저런 알람이 울립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냉장고에 붙여둔 다이어트 자극 사진처럼 제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가사와 육아처럼 당장  처리해야하는 일때문에 자꾸 미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뤄도 되는 일도 있지만 시간 맞춰 약 먹이기, 의료소모품 재고 관리처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나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머리는 하루 종일 풀가동 상태인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별로 없으니, 하는 일 없이 바쁜 것 같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조차 헷갈립니다. 이 무슨 사춘기 같은 고민인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마흔이 넘어 찾아온 두 번째 사춘기 같은 시간을 지나며,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남편은 부탁하면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기획노동을 전적으로 맡은 나와, 주어지는 일을 수행하는 남편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힘듦을 남편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흔히 남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데, 나 역시 힘든 걸 시시콜콜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주말부부 생활도 그 거리감을 더 키웠습니다. 이건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남편의 이해와 지지를 받는 사람과 핀잔을 받는 사람,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중간 쯤에 속해서, 남편의 응원과 핀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흔들리고 있었죠. 쓸데 없는 걱정한다, 예민하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억울함이 차오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당신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속 편한 소리 할 수 있는 건 하루 종일 내가 살아내는 세계一숟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주사기가 있고, 아이들 속옷이 있어야 할 자리엔 여전히 기저귀가 쌓여있는一에서 일정 수준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나도 대충 살고싶어요. 그런데 서로 완전히 다른 도움이 필요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다고요. 아내가 예민한 것 같나요? 엄마가 되고 나서 삶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늘 긴장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핀잔을 던지기 전에 아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길,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길 바래요. 남편이 나와 같은 편이라는 감각만으로도 아내는 훨씬 덜 외로워집니다.
남편: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닥치면 다 되는데 미리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아내: (닥치기 전에 내가 미리 다 해결하고 있다는 걸 왜 몰라줄까…)
>> 걱정되는구나 / 불안하구나 / 미리 대비하고 있었네 /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남편: 예민하네, 과민반응이야, 완벽주의 같다, 너무 까다로운 거 아냐?
아내: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 병원에서 이렇게 하라고 했단 말이야…)
>> 우리 아이 아프지 않게 돌보려면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는구나. 난 잠깐이지만 넌 하루 종일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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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관련 서비스는 정말 특수교육과 관련되어 있을까?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특수교육 관련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법률 제2조 제2호에 따르면, 이 서비스에는 상담지원·가족지원·치료지원·지원인력배치·보조공학기기지원·학습보조기기지원·통학지원 및 정보접근지원 등이 포함된다(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2007). 이 가운데 실제 현장에서 가장 많은 수요가 집중되고, 보호자와 정책 입안자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단연 치료지원이다. 특수교육대상자의 중증·중복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교육과정과 더불어 특수교육 관련서비스의 비중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김기룡, 김삼섭, 2018), 치료지원은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치료지원은 주로 바우처(전자카드)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리치료·작업치료·언어치료·청능치료·음악치료·미술치료·인지치료·놀이치료·특수체육·감각통합·심리치료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매월 1인당 16만 원 범위 내에서 지원이 이루어지며, 해당 금액은 익월로 이월되지 않는다 (인천광역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2024). 사설 치료실의 회당 단가와 주 1~2회의 이용 빈도를 감안하면, 이 금액은 한 가지 치료를 일주일에 한 번 받는 수준을 간신히 감당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더 많은 치료를 원할 경우 그 비용은 온전히 보호자의 몫이 된다. 그 배경을 서울시교육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2년 1월, 치료지원 바우처 금액을 기존 월 12만 원에서 월 16만 원으로 올렸다. 4만 원, 인상률로는 약 33%의 상향이었다. 그런데 이 조정이 뉴스가 된 이유가 있다. 공식 보도자료는 이 금액이 "지난 11년간 동결"되어 왔다고 밝히고 있다(서울특별시 교육청, 2022). 2011년 무렵부터 2021년까지, 10년이 넘도록 물가와 치료비가 오르는 동안 바우처 금액은 제자리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우처 금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치료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보호자들은 가계의 경제적 부담 경감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며, 현행 지원 정책이 부담을 다소 완화해 주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종덕, 박경옥, 2014).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실적 호소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묘한 표현이 눈에 걸린다. 서울시교육청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번 증액이 "학부모에게 사교육비 경감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서울특별시교육청, 2022). 특수교육 관련서비스로서 제공되는 치료지원이 '사교육비'와 같은 범주로 언급된다는 것. 이 표현은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 현재 치료지원이 어떻게 인식되고 운용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 표현이야말로 우리가 이 글에서 묻고자 하는 질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연 지금 제공되고 있는 치료지원은, 그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특수교육 관련서비스'인가?

장애는 고쳐야 할 병이 아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은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보며, 전문가에 의한 치료와 재활을 기본 방향으로 삼는다(조한진, 2011). 반면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은 장애인이 성취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개인의 손상이 아닌 구조적 장벽, 사회적 배제 등을 지목한다. 사회가 장애인의 처지를 고려하고 필요한 사항을 제공한다면, 그들도 충분히 기능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Oliver, 1990).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장애 정책의 흐름은 대체로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의 전환을 지향하고 있다(이지수, 2014; 충청신문, 2021)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제정 목적은 ‘장애인 및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있는 사람에게 통합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이들이 자아를 실현하며 사회통합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이러한 방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 법의 지향점은 아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치료지원이 '치료'라는 명칭을 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물음을 내포한다.

'관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률의 정의에 따르면 특수교육 관련서비스는 특수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지원이다. 관련서비스는 특수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특수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법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장애학생이 가정·어린이집·유치원·학교·지역사회라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또래와 함께,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관련서비스도 이 목표에 부합해야 마땅하다. 미국의 장애인교육법(IDEA)은 장애학생이 최소제한환경(LRE: Least Restrictive Environment)에서 비장애학생과 함께 교육받아야 함을 의무화하고 있다(IDEA, 2004). LRE 원칙에 따라, 관련서비스 역시 아동이 실제로 생활하는 환경 안에서 제공될 때 비로소 그 취지에 부합한다. 그런데 현재의 치료지원 운영 방식은 어떠한가? 보호자가 바우처를 들고 아이를 학교 밖 사설 기관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유치원이나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영아학급을 이용하지 않고 치료실만을 전전하기도 한다. 이 경우 치료는 아이의 일상적인 교육 환경과 분리된 채, 독립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2007년 법 제정 이후 치료지원은 기존의 교육환경 기반 치료교육에서 외부 주도형 바우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치료지원서비스에 대한 실태 조사, 만족도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치료지원의 궁극적인 목적 즉 '그것이 특수교육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연구는 매우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박신영, 2018).

진정한 관련서비스를 위한 방향

물론 치료적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언어·작업·감각통합 등의 전문적 지원은 아동의 발달과 생활 기능에 분명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지원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이다. 현행 특수교육 정책의 핵심 방향은 장애학생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인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는 것이며, 통합교육 역량 강화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국가기록원, 2024). 그러나 일반학교에 배치된 특수교육대상자의 상당수가 여전히 통합학급과 분리된 형태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치료지원 역시 아동의 일상과 분리된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방향과의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치료지원도 아동이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유치원의 교실, 학교의 특수학급, 통합학급, 지역사회의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제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어치료사가 치료실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는 학교와 유치원 현장에 찾아와 교사와 협력하고, 아이의 실제 활동과 연계된 지원을 하는 방식이 보다 '특수교육과 관련된' 서비스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바우처 금액을 늘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원금을 올리면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지원 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치료는 여전히 아동의 일상과 분리된 채로 남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재원의 규모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의 지원이 아동의 교육적 성장과 사회참여에 더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에 있을지 모른다. 통합교육의 이념은 장애학생이 언젠가 학교와 시설에서 나와야 할 때,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해 나가며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정주영, 2015). 특수교육 관련서비스—특히 치료지원도 이 철학 위에서 재설계될 때, 비로소 그 이름에 걸맞은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지원의 방향과 철학에 대한 보다 솔직하고 깊은 사회적 대화이다. 특수교육 관련서비스가 특수교육과 진정으로 '관련'되기 위해서는, 아동이 장애가 없었다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동이 그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표현이 공식 문서에 버젓이 등장하는 한, 치료지원은 교육이 아니라 시장의 언어로 설명되고 있는 셈이다. 서비스의 장소와 맥락,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가 곧 그 서비스의 철학을 말해준다.
*국가기록원. (2024). 특수교육 정책: 제6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2023-2027).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3253
*김기룡, 김삼섭. (2018). 특수교사의 공통 교직수행능력에 대한 중요도-실행도 분석.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19(4), 177-199.
*박신영. (2018). 특수교육 대상자의 치료지원 효과에 대한 관련 주체의 인식 차이 분석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SNU Repository.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140886
*서울특별시교육청. (2022, 1월 17일).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대상자의 치료지원 금액 상향 조정 및 특수교육실무사 증원 [보도자료]. 서울교육소식. https://enews.sen.go.kr/news/view.do?bbsSn=174885
*조한진. (2011). 장애학에 대한 재고찰.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12(4), 1-25.
*이종덕, 박경옥. (2014). 특수교육대상자 치료지원 서비스에 대한 부모인식 조사. 미래교육현장연구(교과교육연구), 36(2). 조선대학교 교과교육연구소.
*이지수. (2014).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가진 의미와 한계: 장애 개념정의와 정체성의 정치를 중심으로. 한국장애인복지학, 25, 33-54.
*인천광역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2024). 치료지원 안내: 참좋은카드 이용 기준. https://www.ice.go.kr/iss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법률 제8483호. (2007).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
*정주영. (2015). 통합교육을 위한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발의 해결과제. 통합교육연구, 10(2), 151-175.
*충청신문. (2021, 12월 1일).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 http://www.dailycc.net/news/articleView.html?idxno=666874
*김기룡, 김삼섭 (2018). 특수교사의 공통 교직수행능력에 대한 중요도-실행도 분석,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19(4). 한국특수교육학회. Oliver, M. (1990). The politics of disablement. Macmillan. ※ 치료지원 바우처 금액은 시·도 교육청별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월 16만 원 기준은 인천광역시교육청 및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공식 자료에 근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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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자폐가 의심될 때, 불안 대신 ‘지금’을 선택하는 방법

글 : 최진희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장 유아특수교육 박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않는 것 같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짧은 것 같고, 혼자서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그럴 때 부모는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자폐가 아닐까?” 이 질문은 두려운 질문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린 것 자체가 이미 아이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어린 아이에게서 다음과 같은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거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적거나, 가리키기 또는 보여주기 같은 행동이 거의 없거나, 혼자 노는 시간이 많거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소리나 촉감에 예민하거나 반응이 적거나. . . 하지만 이 몇 가지로 아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진료를 봐야 할까요? 의심이 지속된다면 전문의 진료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병원 예약을 하고 몇 주, 몇 달, 몇 년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간 동안 부모는 인터넷을 계속 찾아보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지금 뭘 해야 하지?” “이대로 괜찮을까?”

기다리는 시간은 ‘멈춘 시간’이 아닙니다.

아이 발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최근 연구들도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일상 속 상호작용이 아이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WHO, 2022; Reichow et al., 2024; Gulsrud et al., 2024).

부모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특별한 치료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집에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1. 아이를 따라 해 주세요 아이가 “우~” 소리를 내면, 똑같이 따라 해 주세요. 아이가 장난감을 흔들면, 같이 흔들어 주세요. 이 간단한 행동이 아이에게 이렇게 느껴집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있어”, “내 행동이 의미가 있구나” 이 경험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뇌의 거울뇌신경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2. 눈을 맞추고 크게 반응해 주세요 아이를 보며 크게 웃어주고, “우와!”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세요. 재미있는 목소리로 아이를 웃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면 아이는 사람을 더 흥미있는 대상으로 느끼게 됩니다. “재미있는 순간=엄마/아빠”의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공동주의(joint attention: 함께 관심을 나누는 능력)와 사회적 이해력을 키웁니다. 3. “아이를 따라가세요” — 놀이의 정답은 아이입니다. 놀이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블록을 제대로 쌓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동차를 굴리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를 줄 세우면 옆에서 자동차를 하나씩 주세요. 중요한 건 “잘 노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에게는 이것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4. 일상에 노래를 넣어보세요 노래와 리듬은 언어 발달을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옷 입을 때, “머리 쑥, 팔 쑥, 발 쑥~”, 밥 먹을 때 “맛있게도 냠냠~” 특히 일상 활동(기저귀 갈기, 식사, 목욕, 외출하기 등) 속에서 노래와 말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반복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가 아니라 ‘자주’입니다. 길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여러 번, 짧게, 즐겁게, 반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와 소통 관계가 조금씩 자라납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아이를 바꿉니다”

부모는 이미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고,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치료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에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 Gulsrud, A. C., Shih, W., Paparella, T., & Kasari, C. (2024). The efficacy of caregiver-mediated early social communication intervention for infants at risk for autism (Baby JASPER). Infant Behavior and Development, 76, 101952. * Mundy, P., & Newell, L. (2007).Attention, joint attention, and social cognition.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6(5), 269–274. * Reichow, B., Barton, E. E., Boyd, B. A., & Hume, K. (2024).Early intensive behavioral intervention (EIBI) for young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s (ASD): Updated systematic review. Journal of Autism and Developmental Disorders.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2).Caregiver skills training for families of children with developmental delays or disabilities. Geneva: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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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치료실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라기를 바라며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조기개입 분야에서 '일과중심개입(Routine-Based Intervention)'이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왔습니다. 아이의 발달을 지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가 실제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개입을 하는 것임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고요.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어 하고, 그 의미 있는 삶의 귀결점은 결국 나와 가족, 이웃으로 이어져요. 내 삶이 나아지려면 나 혼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함과 만족감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삶의 모든 선택과 노력, 관계와 목표는 결국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수렴됩니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와 그 가족도 다르지 않아요. 아이가 가족과 함께 웃고, 먹고, 놀고, 쉬는 그 일상이 곧 삶의 중심이고, 발달의 토대입니다.

전문가 먼저 일과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일수록, 일상은 오히려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치료 일정이 하루를 채우고, 병원과 센터가 생활의 기준이 돼요. 먹기, 놀기, 이동하기, 쉬기 같은 기본적인 활동들은 '개입의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효율을 위해 그냥 생략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현실 앞에서 부모님을 탓하기는 어려워요. 일상보다 치료를 우선하게 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치료는 목표가 분명해 보이고, 전문가가 있고, 회기마다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반면 일상은 너무 당연해서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고, 변화도 느리게 나타나니 효과가 없는 것처럼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그것을 양육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전문가예요. 전문가가 먼저 일과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양육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은 계속해서 치료실에서 답을 찾으려 할 수밖에 없어요.

전문가로서 스스로에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문가로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아이에게 왜 이 치료를, 이 수업을, 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 아이와 가족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가? 그 물음의 답은 발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발달은 특별한 시간에만 일어나지 않아요. 아이는 하루 대부분을 일상 속에서 보냅니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반복되는 경험들, 익숙한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뇌는 조직되고, 몸은 조절을 배우며, 의미 있는 행동이 하나씩 쌓여요. 일상이란 발달이 일어나는 장소이면서 시간이기도 해요. 그렇기에 일상이 빠진 발달 지원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가정에서 반복되지 않는 기술은 유지되지 않고, 아이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목표는 결국 의미를 잃어요. 반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작더라도 오래갑니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런 변화들이 쌓여 아이의 삶 전체를 바꿉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이를 치료실 밖으로 내보낼 때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상이 즐겁고 평안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의 발달을 진정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치료했느냐가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의 하루 전체가 발달의 기회가 되도록 하는 겁니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덜 하자'는 말이 아니에요.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바로 그곳에서 충분한 발달의 기회를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아이다운 일상을 되돌려 주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개입의 시작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특별한 치료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조기개입은
치료실 밖, 가정과 지역사회 속 일상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치료실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라기를 바라며 더 읽기"

특수학교에 다닌다면? 개별화교육회의 빠지지 마세요

글 : 김지영

장애의 종류가 같다고 해서 발달 수준과 특성까지 같지는 않죠. 그런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 두고 모두에게 같은 것을 같은 방법으로 가르친다면 어떨까요?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서 아이의 1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자리인 ‘개별화교육회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특수교육의 꽃을 ‘개별화교육계획(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진행하는 과정이 바로 ‘개별화교육회의’입니다.

개별화교육회의란?

개별화교육회의(IEP 회의라고도 합니다)는 서로 다른 장애 학생 개개인의 발달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 목표와 지원 방안을 세워 1년간의 교육을 계획하는 자리입니다. 입학 후 14일 이내 진행되어야 하는 법적 필수 회의이지만, 부모가 회의의 중요성을 잘 모르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서류에 서명하는 것으로 부모의 참여 없이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이 회의에 직접 참석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학교생활은 꽤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제하가 특수학교 유치부에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올해 첫 개별화교육회의에 참여했습니다. 회의 참석자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보호자가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담임교사를 비롯해 교과교사, 보건교사, 영양사, 심지어 학교장까지도요. 지난해 처음 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제하가 만나게 될 선생님들을 모두 모시도록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과 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선생님들께는 문서로 내용을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보호자는 자녀의 특성과 필요 사항(강점, 약점, 필요한 지원)을 미리 정리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제하의 의료 정보, 발달 수준, 건강 상태, 일상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문서(이 것에 대한 글은 기록의 쓸모라는 제목으로 지난 칼럼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를 회의 전에 미리 선생님께 메일로 보내 두고, 회의 때 강조해서 이야기할 내용은 따로 메모해서 가져갔습니다.

제하의 개별화교육회의 모습 함께 살펴볼까요?

회의는 개학 후 한 주 동안 제하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담임교사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하는 전반적으로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고, 특히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좋아하며 호명에도 잘 대답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제하가 자기 이름을 확실히 아는 것 같냐고요. 지난해 회의에서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호명에 대한 반응 향상’이었는데, 1학기까지만 해도 제하는 다른 친구 이름을 불러도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일부러 형 이름을 불러 보면 제하가 대답하곤 했습니다.
보세요. 회의 첫 이야기부터 저는 제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새로 만난 사람이라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결국 선생님들(교사, 치료사, 활동지원사 등)이 부모보다 아이를 더 잘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부모가 바빠 전화 상담으로 회의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비대면으로 주고받는 이야기와 직접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깊이와 넓이가 꽤 다르다고 느낍니다. 선생님과 대면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담임 교사는 제하가 3~4교시쯤 다리가 떨리고 피곤해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발목 보조기 때문일 수 있어, 3교시 이후 특히 힘들어 보일 때는 보조기를 풀어 보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제 차례였습니다. 저는 1학기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유치부 때와 완전히 다른 목표라기보다, 지난해 목표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먼저 구글문서로 만든 ‘의사소통사전’을 공유했습니다. 제하가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정리한 자료로, 집·학교·치료실에서 일관되게 반응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은 선택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앉을까, 누울까?”, “이 책 읽을까, 저 책 읽을까?”처럼 활동을 직접 고르게 하면 일상이 즐거워지고 의사소통도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CVI 특성을 고려해 빛을 활용한 놀이를 하고, 학습 자료는 시각적으로 단순화하되 촉각도 함께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간식 시간에는 씹는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발관을 위해 턱뼈 발달이 필요하지만 평일에는 집에서 시간이 부족해, 우유 급식 시간에 간식으로 연습하고 활동지원사가 우선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근골격계 문제였습니다. 수업 중 자세를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고, 고관절 탈구 예방을 위해 기립기에 하루 2회 서는 과제를 주 2회 신체활동실 이용 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수업 중 기립기 사용은 집중이 어려울 수 있어 한 달 정도 지켜본 뒤 다시 판단하기로 했고, 녹음형 버튼(AAC) 문구는 4월 이후 선생님 의견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렇듯 회의에서는 부모인 저보다 비슷한 학생들을 많이 지도해 온 선생님의 경험과 의견에 기대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부모는 집에서의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선생님은 학교에서의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봅니다. 두 이야기가 한 자리에서 만나야 비로소 아이에게 맞는 교육 계획이 만들어집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데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만, 그 시간은 아이에게는 1년의 방향이 됩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라면, 개별화교육회의만큼은 번거롭더라도 꼭 참여해 이야기를 나눠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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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발달 평가와 IFSP가 그리는 조기개입의 로드맵

글 : 조성연 (청각장애인생애지원센터 대표, 언어재활사)

조기개입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서초구립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서
가족중심 조기개입의 기본을 다졌던 2017년으로부터 9년이 흘렀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난청 영유아 가정을 만나며 쌓아온 고민을 안고
다시 마주한 사단법인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의
영아발달 평가 및 IFSP 작성 심화 과정은
전문가의 관점을 치료에서 삶의 설계로 확장시키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오늘을 데이터로 읽다

심화 과정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아동의 현행 수준을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역량이었습니다. 단순히 발달이 늦다는 추상적인 판단을 넘어 대근육, 소근육, 의사소통(수용·표현), 인지, 사회성, 자조기술을 영역별로 평가하는 과정입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가 가장 편안한 일상 환경에서 수행되는 이 평가는 아이의 생활연령, 교정연령, 듣기연령과 대비되는 영역별 발달연령을 명확히 도출해냅니다. 특히 의사소통 영역에서 수용언어와 표현언어를 세분화하여 분석하는 것은 난청 영아가 현재 어느 정도의 언어 자극을 소화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핵심 지표가 됩니다. 이는 전문가의 주관적 견해가 아닌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가족과 함께 다음 단계의 목표를 설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재활 팀의 리더인 부모를 위한 전략적 로드맵

이번 과정의 핵심인 개별화가족서비스계획(IFSP)은 단순한 계획이 아닌 한 가족의 자원과 욕구를 결합한 성장 지도입니다. 저는 리더십을 조기 개입에 접목하여 주양육자를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닌 재활팀의 리더로 정의합니다. IFSP 작성의 고도화는 전문가가 세운 목표를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인 부모가 아이의 현행 수준을 정확히 확인하고 팀원(가족 및 전문가)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리더로서 팀을 진두지휘하며 일상의 모든 순간, 수유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짧은 시간을 전략적인 언어 자극의 기회로 전환할 때 진정한 의미의 가족 중심 조기 개입이 완성됩니다.

고위험군 사례를 위한 정교한 서비스 코디네이션

심화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해진 IFSP 수립 역량은 저체중아 및 이른둥이의 경우 홈벤트와 콧줄을 사용하는 의학적 취약 아동들에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러한 고위험군 사례일수록 유전자 진단 데이터와 ‘1-2-3 골든타임’(1개월 내 진단-2개월 내 보청기 착용-3개월 내 조기개입) 원칙이 IFSP 내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어야 합니다. 유전적 정보를 지도로 삼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진행성 난청이나 인공와우 수술 적기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초개인화된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은 재활의 불확실성을 확신으로 바꿉니다.

주체적인 선택이 만드는 미래

영아발달 평가와 IFSP 작성은 결국 난청 영유아 가정이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입니다.
영아발달 평가와 IFSP 작성은 단순히 난청 영유아 가정이 전문가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아이의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이번 심화 과정을 통해 익힌 평가 도구 활용과 전략적인 IFSP 수립 역량을 현장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자 합니다. 책임감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며, 모든 난청 영유아가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펼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든든하고 전문적인 조력자가 되겠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삶을 설계하는 리더로 설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도 그 가정의 문을 두드립니다.

2026년 2월에 이루진 전문가 교육 심화과정의 참여 후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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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장난감 창고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아기가 성장해가면서 엄마아빠 마음이 참 바빠지죠? “옆집 아기는 전집을 들였다더라”, “이 교구가 발달에 좋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얼른 나도 구매해야 할 것 같고, 결제 버튼에 손이 가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아기들 눈에는 비싼 장난감보다 엄마 아빠가 매일 쓰는 물건들이 훨씬 흥미로운 ‘신상’이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옛날에도 ‘장난감’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요? 예전에는 아기들은 뭘 하고 놀았을까요? 그냥 주변에 널린 나뭇잎, 돌멩이를 만지고, 나무 막대기로 흙을 파기도 하고, 집에 있는 바구니나 그릇을 가지고 놀지 않았을까요? 아주 아기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집에 있는 더 이상 안쓰는 사기그릇이나 스테인리스 그릇, 공사장에서 주워온 벽돌을 부수고 풀잎을 뜯어서 소꼽놀이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기들은 모두 ‘탐험가’예요

사실 아기들에겐 놀이의 본능이 있어서, 굳이 의도적으로 만든 놀잇감이 없어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내곤 하죠. 엄마랑 마주 보고 눈 맞추며 장난치거나, 옷자락의 보들보들한 감촉을 만지작거리는 것조차 아기들에겐 훌륭한 놀이랍니다. 그런데, 예전의 저처럼 아이가 집안을 뒤져서 이것저것 다 꺼내서 가지고 논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어쩌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며 한숨부터 나올 수도 있고요. 멀쩡한 티슈를 줄줄이 뽑아놓거나, 화장품 뚜껑을 열어서 비싼 크림을 이불에 다 발라놓고, 엄마 지갑 속 카드를 다 꺼내서 놀다가 어디다 끼워 놓았는지 찾을 수가 없게 만들고,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탁자에 탕탕 두드리는 것과 같은 행동들 말이에요. 그런데 이 골치 아픈 행동들이 사실은 발달 검사지에 나오는 ‘중요 문항’들이랑 딱 연결돼요.

“엄마, 나 지금 공부 중이에요!”

티슈 곽이라는 좁은 입구에 손을 넣어 물건을 끄집어내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소근육 조절 능력이 필요해요. 발달 검사에서는 상자 안에 든 물건을 스스로 꺼내거나, 의도적으로 목표 지점에 물건을 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한답니다. 화장품 뚜껑을 돌려서 여는 동작은 손가락 근육이 섬세하게 발달했다는 증거예요. 또 끈적한 크림을 이불이나 몸에 바르는 건 촉각을 통해 사물의 성질을 배우는 ‘감각 탐색’ 과정이죠. 검사지에서는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는지, 다양한 질감에 반응하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얇은 카드를 손끝으로 집어내는 건 엄지와 검지 손 끝으로 미세하게 잡기 능력이 완성되어야 가능해요. 게다가 카드를 틈새에 끼워 넣는 행동은 “이 얇은 게 여기에 들어갈까?”라는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인지 발달 단계 중 하나인 ‘문제 해결 능력’과 연결될 수 있어요. 밥 먹다 말고 숟가락으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는 건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라 숟가락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것은, “내가 두드리면(원인) 소리가 난다(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아기가 ‘사고’를 치고 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얼른 말려야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아, 우리 아기가 지금 발달 검사 항목 하나를 스스로 통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아기를 위한 ‘우리 집’을 장난감 창고로 활용하기 팁

비싼 장난감 대신, 지금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물건으로 이렇게 한번 놀아보세요.
1. 스카프 박스 ● 방법: 다 쓴 티슈 곽에 가제 수건이나 알록달록한 손수건이나 스카프들을 줄줄이 묶어 넣어주세요. ● 효과: 아기가 이걸 끝없이 뽑아내면서 손과 팔의 협응력을 기를 수 있어요. 진짜 티슈를 뽑는 쾌감은 그대로 주면서 정리는 훨씬 편해질 거예요.
2. 주방의 오케스트라, 냄비와 숟가락 ● 방법: 아기 앞에 크기가 다른 냄비나 플라스틱 밀폐 용기를 뒤집어 놓아주세요. 그리고 나무 숟가락 하나를 쥐여줘 보세요. ● 효과: 탕탕 두드리며 재질마다 다른 소리를 탐색하는 건 아기의 청각 발달과 인지 발달에 정말 좋아요.
3. 기저귀 까꿍 놀이 ● 방법: 기저귀를 갈 때, 새 기저귀로 엄마 얼굴을 슬쩍 가렸다가 “까꿍!” 하며 나타나 보세요. 아기 얼굴에 기저귀를 살짝 올렸다가 아기가 스스로 치우게 기다려주는 것도 좋고요. ● 효과: ‘대상 영속성(눈앞에 안 보여도 물건이 사라진 게 아님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이만한 놀이가 없답니다.
4. 식사 시간의 ‘바사삭’ 탐색 ● 방법: 간식으로 주는 뻥튀기나 아기 과자를 그냥 주지 말고, 아기 앞에서 톡! 부러뜨려 소리를 들려줘 보세요. 아기가 직접 부러뜨려 보게 유도해도 좋고요. ● 효과: 손가락 끝 근육을 발달시키고, 바삭거리는 질감을 느끼며 다양한 사물의 특성을 파악해 가는 시간이 돼요.
엄마를 당황하게 했던 그 '사건'들이 사실은 우리 아기가 스스로 발달 목표를 하나씩 통과하고 있는 대견한 순간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거실에 흩어진 티슈나 카드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실 거예요. 사실 놀이는 특별한 장소에 가거나 비싼 장난감이 있어야 하는 거창한 게 아니거든요. 아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몰입하고, 또 하고 싶어서 자꾸만 손을 뻗는다면 그게 바로 세상에서 좋은 ‘최고의 놀이’이자 ‘최고의 공부’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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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 — 존재하기와 살아가기

그동안 협회에서 주로 다뤄온 조기개입 전문서적과는 조금 다르게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어떤 날은 ‘힘내라’는 말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문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의 시간에는요. 이 그림책은 거창한 위로 대신,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짧고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 이야기 한가운데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우주 한가운데 별 사이를 걸어다니던 아이는 지구에 왔습니다.태양의 뜨거움도 아무 상관없었던 아이에게,지구의 사자도 모기도, 마을의 활기와 소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그랬던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한 첫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엄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태어나게 한 힘은,어쩌면 바로 부드럽고 포근한 엄마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아이를 꼭 안아주고, 입 맞추는 엄마의 품…

🫶 이 책을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은 이유

저는 이 책을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느낌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 책이 건네는 ‘존재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이 이야기를, “힘든 하루를 견디는 부모님께 조용히 손을 내미는 책”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 조기개입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기

조기개입은 결국, 아이의 발달만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가족의 삶을 함께 지지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도 아이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힘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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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그리고 우리』 —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사회성 기르기

이 책은 영아심리학 전문가 안나 터르도시와 독일의 영유아 전문 물리치료사 아냐 베르너가 함께 쓴 『엠미 피클러 보육학』시리즈 세 번째 책이에요. 영아를 돌보는 어른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관계의 방향’을 정돈해주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엠미 피클러(Emmi Pikler, 1902-1984)는 헝가리의 소아과 의사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주목할 만한 학자 랍니다! 그녀는 부다페스트에 국립보육원 '로치'를 설립했고, 이곳은 나중에 피클러 연구소가 되었습니다. 이미 1930년대에 아이들의 능동적인 활동과 자율적인 움직임 발달이 개별성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이 자유놀이를 통해 자기 신뢰와 재능, 능력, 인내력을 키워간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몇 살부터? 어느 기간 동안? 영아전담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면 아기가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점차 가정 보육보다는 좀 더 어린 시절 기관 보육이 늘고 있습니다. 몇 살부터? 어느 기간 동안? 영아전담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면 아기가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을까요? 영유아 교육 전문가는 물론이고 부모님들도 많이 궁금해하실텐데요. 이 책에서 그 답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답니다. 영아의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긍정적인 자기 체험입니다. 이건 아기가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따뜻한 마음과 친근함, 관심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집니다. 저자들은 그런 순간이 바로 일상의 협력적 돌봄 순간이라고 강조 합니다. 밥 먹이고 재울 때, 기저귀 갈 때… 아기를 안아주고 눕히고 옷 입히거나 벗길 때의 돌봄 손길, 따스한 눈빛, 아기에게 전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을 말합니다.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갈아입힐 때 부모가 아기에게 "자, 이제 기저귀 갈아줄게~" 하고 미리 알려주고 아기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면, 아기는 긍정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일상의 중요함을 간과하고 이러한 시간은 그저 빨리빨리 해치우는 일로 보내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아기에게 끊임이 전력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통해 아기가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 또한 자녀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힘겨운 길을 걸어가는 동안 부모도 깊은 경험을 통해 여러 차례 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이 조기 개입에 주는 시사점은 우리의 일상이 선물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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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배워가는 시기, 적절한 관계의 선을 가르쳐 주세요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두 돌쯤 되는 아이를 양육하시는 부모님들께 아이의 행동 중 염려되는 부분이 있는지 여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이 아이가 아직 말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다 보니, 원하는 것이나 감정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밖에 나가 또래를 만나면 다가가 껴안으며 “예쁘다”라고 말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간식이나 먹을 것을 건네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 아이가 이러한 행동에 당황하거나, 함께 놀기를 원하지 않고 외면하면 아이가 갑자기 크게 화를 내거나, 때리거나, 손에 잡힌 물건을 잡아 뜯는 행동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이 한 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상담하며 나눈 적이 있고, 두 명 이상이 함께 있는 집단 상황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연령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두 돌 전후의 시기였습니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말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또래 관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 나타나면 부모님들께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두 돌 무렵, 아이가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직 관계의 중심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합니다. 내가 반갑고 좋으면 상대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기입니다. 아이에 따라서는 상대의 상태나 기분을 살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이제 막 발달해 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말로 표현할 만큼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절을 경험하거나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말 대신 행동으로 감정이 크게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반응 자체는 발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되, 허용해도 되는 행동인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다만, 발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그대로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처음 만난 아이나 낯선 사람에게 신체 접촉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반가움의 표현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매우 친숙한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접촉과,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접촉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계는 아이가 어리더라도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부모님의 대응

이미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즉각적이고 분명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때의 훈육은 아이를 크게 혼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설명하면 알아듣겠지’라고 기대하기에는 이 시기의 아이에게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안 되는 행동은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멈추게 하고, 짧고 단순한 말로 기준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이때 아이가 위축될까봐 염려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이제 세상을 알아가는 중에 있는 아이가 사회적 규칙을 배우면서 적절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평소에 미리 알려주셔야 하는 부분

이러한 기준은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만 알려주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래 관계 안에서 갈등 상황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이미 발생한 갈등에 대처하는 것은 아이에게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평소 일상 속에서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하는지,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상대가 싫다고 표현했을 때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긴 설명을 하거나, 매사에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아이는 부모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 바로 책을 보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을 간접으로 체험할 수 있고 학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예측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한 단서를 줘보세요. 부모님의 표정도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지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연령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짧고 명료한 언어로 이야기해 주세요.

부모님의 역할은 적당한 기준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또래 관계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른이 더 고민하고 책임 있게 판단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점차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해 가는 방법을 배우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할 적절한 선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 적절한 관계의 선을 가르쳐 주세요 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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