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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편견에 대해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편견의 시선을 많이 느낀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 빼고는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남들보다 작은 일에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가족인데. 처음엔 그런 시선에 위축되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자치구의 도서관에서 편견을 주제로 시민 작가를 공모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전시에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편견)'을 주제로 사진과 글을 출품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K-장녀라 그런가, 나는 어릴 때부터 누가 내 걱정을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웬만한 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고 가족들에게는 아예 얘길 하지 않거나 상황이 종료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 알렸다. 성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이유로 지인에게 아이의 장애를 밝히기가 ㅋ꺼려졌다. 걱정의 눈빛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주 만나거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숨길 수가 없어서 일찌감치 얘기를 했지만 가끔 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절반 이상이 '대단하다'이다. "어떻게 그렇게 밝아?", "긍정적이네!",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고?" 장애인 가족은 으레 어둡고, 부정적이고, 간병과 육아와 살림과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삶이 찾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사는 것뿐. 내가 대단해서, 타고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악의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내 삶이 어둠인 것 같다고 굳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믿고 살고 있던 나로서는 순간 힘이 빠진다. 내 삶은 내가 대단해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남들은 출산하면 축복 속에서 육아를 하는데 우리는 축하는 커녕 측은함과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꾸역꾸역 아이를 키웠다. 양가 식구들도 우리 가족을 안쓰럽게만 바라보았다. 물론 출산 후 약 2년 동안은 좋은 일이 있어도 오롯이 행복감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러나 출산한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힘든 순간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며,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출산 전보다 새로운 것에 더 많이 도전하고 공부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집 나가면 쯧쯧
아들 둘과 집에만 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릴 땐 쌍둥이 유모차에, 요즘은 장애인 유모차와 킥보드에 하나씩 태워서. 가까이는 동네 산책부터 멀리는 놀이공원까지 가기도 한다. 아이들 핑계로 나왔지만 나도 콧바람을 쐴 수 있어 외출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불편한가 보다. 흘끔흘끔 혹은 대놓고 빤히 보는 사람들. "쯧쯧"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아이고 엄마 혼자 애 둘 데리고 고생하네, 쯧쯧...",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됐니.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우린 신나는 나들이 중인데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면 흥이 깨진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이고~ 너 왜 그렇게 사니, 쯧쯧' 하면 기분이 어떨까?

명품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의 유래가 된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11세기 영국에서 한 영주의 아내였던 고디바는 과도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백성을 구하고자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문과 창을 닫고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장애인을 길에서 스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궁금하거나 안쓰러워도 불편한 눈빛과 말은 거둬줬으면 좋겠다. 걱정되면 도와주기만 해도 된다. 길을 비켜주거나 문을 열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 가족, 좋~을 때다!
장애인 가족을 바라보는 불편하거나 측은한 시선을 주제로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은 산책길 한가운데서 포즈를 취하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한 어르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상되는 말이 흘러나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제일 좋~을 때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편견 없이 행복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힘이 난다.

말에는 힘이 실려있다. 누가 안쓰럽다고 하면 정말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 행복감은 배가 된다. 퇴사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아이의 장애를 얼굴에 점 하나 있다는 것 정도로 반응해 준 회사 후배(절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하와 형을 번갈아 보며 쌍둥이냐며, 둘 다 너무 잘생겼다고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호들갑 떨며 말해준 식당 종업원.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큰일 난 게 아니다. 그런 시선들이 장애인 가족 스스로에게 예기치 못하고 맞닥드리게 된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위 글과 사진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주관으로 지난 10월 25일 경춘선숲길갤러리에서 개막한 '뜻밖의 OOO 전시회'에 참여한 작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뇌성/피질시각장애 (CVI) 이해와 일상지원 – 강의영상
보는 것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원인에 따라 개입 방법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피질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 때문에 잘 못보는 것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으시죠? 이번 강의를 통해 이러한 피질시각장애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알아보고 가정과 어린이집 등의 일상의 환경에서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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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 면역과 감염 – 강의영상
면역과 감염 분야의 국내 권위자인 세 분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신생아와 영유아의 감염과 면역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신경 써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달리Go! 성장하Go!! <우리 아기 GoGo> 평가회
11워 26일 일요일 오후 우리 아기 전동차 타기 프로젝트 <우리 아기 GoGo>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아이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전동차를 타기 위한 준비를 하고 그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어린이들이 전동차 타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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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 해방일지 – 심리상담부터 정신과 약 복용까지
글 : 김지영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우리 가족은, 나는 어떻게 살지? 질문에 답을 내리거나 뭔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전쟁 같은 일상이 펼쳐졌다. 몸으로는 지금 할 일을 하면서 머리로는 그다음에 해야 할 일만을 생각했기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이런 날이 어쩌다 하루 이틀 있는 게 아니라 매일 계속되는데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심리상담과 정신과 약물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내 정신적 여정을 풀어보려 한다.
정신 줄이 끊어지니 화살이 가족에게 날아갔다
'쌍둥이', ‘이른둥이’, ‘초저체중아’라는 타이틀로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제하가 갑작스러운 괴사성장염으로 첫 수술을 받을 때 남편과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어떻게든 잘 키워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다음날, 주치의는 아이가 수술받을 때 혈압이 떨어져 뇌 손상을 입은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의사가 보여준 화면 속 제하의 뇌는 녹아내린 듯 대부분 검게 보였다. 말을 못할 수도,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잘 키워보자는 다짐은커녕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겼다.
제하가 퇴원해 집으로 온 뒤부터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두 아이가 동시에 울 때였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둘을 달랠 수 있었지만,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는 매 순간 갈등이 일었다. 누구를 먼저 안아줘야 하나? 마이클 샌델의 에 나오는 질문들처럼,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아픈 문제였다. 그리고 제하에게는 미안하지만 늘 첫째를 먼저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하의 울음소리는 애써 안 들리는 척해봤지만 온몸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첫째를 재빨리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제하는 울다 지쳐 훌쩍이고 있거나 혼자 잠들어 있었다. 제하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탓에 숨소리를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늘 숨이 찼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거의 5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봤고 남편이 퇴근하면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말 그대로 손발을 총동원해서 두 아이를 달래던 시절
웬만하면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씩씩하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는데, 양육 스트레스 검사나 각종 심리검사 결과는 ‘고위험군’이었다. 너무 바빠서 내 감정을 제대로 느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힘들어도 견딜만하다고 착각하는 동안 내 스트레스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남편을 비난하고,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부터는 아이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심리상담으로 시작해 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복지관에서 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무료에다 제하가 치료받는 동안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장점이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서약서를 내밀었다. 상담 기간에는 자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는 아닌데, 여기서 상담받는 나는 그렇게 심각한 상태구나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의 기질, 성격유형 검사를 먼저 받았다. 일단 나와 배우자가 어떤 기질이고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 공통점도 있지만 애초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구나. 다정한 우리 남편이 왜 아이의 치료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이 체중 늘리는 것을 나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지, 이런 나를 부정적이라 여기는 남편을 보며 나만 큰일 났고 나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아 외로울 정도였는데 그동안의 갈등이 헛웃음이 날 정도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기질, 성격 유형 검사지
상담사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상담이 도움은커녕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데 나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반대로 상담을 받는 사람도 마음을 충분히 열어야 한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는 식으로 상담사를 대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면 상담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장애인 부모 상담이니까 아이 때문에 느끼는 감정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 배우자 등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마음속 응어리가 상당히 풀렸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진득이 듣고 공감하는 한편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해 주었다. 귀가하면 남편과 상담 내용을 가지고 대화도 하고, 선생님의 조언대로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밖에 나가 외식을 하기도 했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30회기로 진행되었고 부족하면 추가로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마음에 안정을 찾은 상태로 딱 30회 되던 날 상담을 종료했다.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은 약의 도움을 받아보자
그렇게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상담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욱’하고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마침 미운 네 살에 접어든, 말은 하지만 말을 듣지는 않는 첫째에게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이건 고작 네 살짜리에게 가혹한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말을 하는 와중에도 후회가 일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상담을 받는다고 달라질까?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화는 상담만으로 다스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생각보다 주변에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닌지, 잠에 취하거나 축축 처지는 건 아닌지, 살이 찌는 건 아닌지 등 부작용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약을 먹어본 경력자(?)들은 요즘은 약이 좋아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의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우울증과 불안의 정도를 체크하는 자가 보고식 설문지를 작성하고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다. 손목과 발목에 센서를 붙이고 5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이걸로 정말 스트레스 검사가 되는 건지 처음에는 의심이 되었다. 이 검사의 원래 명칭은 '자율신경계 검사(HRV, Heart rate variability)’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파악해 스트레스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현재 몸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진단의 보조 자료가 된다고 한다.
설문 결과도, HRV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충분히 약을 먹을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 복용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그릇이라고 치면, 그릇에 가득 찬 물은 스트레스다. 햇볕을 쫴서 물을 증발시키거나 그릇을 기울여서 물을 좀 흘려보내야 하는데 나의 문제는 물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제하의 장애) 물을 쏟아내기도 어려워서(스트레스 해소)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약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의존도가 적은 약을 처방해 달라고 부탁해 최소 용량으로 복용을 시작했다. 이후 2주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하면서 약효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경과를 살폈다.

비상용으로 남겨둔 약
약을 먹으면서 확실히 화가 덜 났다. 거의 안 났다. 아이가 미운 행동을 해도 ‘아이니까’ 하고, 화내기 전에 객관적으로 상황 판단을 먼저 할 수 있었다.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생각도, 모든 게 나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할 만큼 하고 있다는 만족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약을 먹고 의사와 상의 후 2주 치 비상약만 남긴 채 복용을 중단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좀 더 일찍 먹었다면 아이와 남편에게 험한 꼴 덜 보였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네가 상담을 왜 받아?’, ‘정신과는 정신병 걸린 사람이나 가는 곳 아니야?’ 옛날 같으면 이런 시선이 있었겠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요즘은 흔한 일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사춘기에 비뚤어지는 것처럼, 어른이 갱년기 때 감정이 널뛰는 것처럼 감정에는 호르몬도 관여하기 때문에 내가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몸이 아플 때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상담을 받고 필요하다면 약을 먹는 것도 고려해 보자. 조금만 용기 내면 내 그릇이 스트레스로 넘치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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