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식

아기는 놀이에서 배운다

갓난아기와 어린 아이의 놀이를 돌보는 현장의 교사들을 위하여 쓰여진 이 책은 선생님들과 양육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유아교사이면서 동작치료사인 안케 친저, 베를린에서 아동 물리치료실을 운영하고있는 안야 베르너, 아동 물리치료사인 모니카 알뤼가 공동 저술한 책입니다.

호기심과 무한한 관심을 가진 아기는 놀면서 세상을 발견하고 놀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배우며 발달합니다.
이 책은 영아반의 이상적인 공간 구성, 자유놀이 발달에 적합한 월령별 놀잇감, 교사의 동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조언합니다. 또한 그룹활동을 하면서 저마다의 월령과 성숙 정도에 맞게 스스로 선택한 개별적인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늘 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는 그룹 상황에서 아이들의 안정감과 기본 욕구의 충족과 편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평화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하게 놀이할 수 있습니다. 영아가 그룹에서 어떻게 자유놀이를 방해받지 않고 놀이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실질직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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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세를 도와주는 힙 헬퍼 (Hip helpers)를 소개합니다

글 : 귀요미 엄마

힙헬퍼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29개월 다운증후군 남아의 엄마에요. ‘힙 헬퍼(Hip helpers)’를 소개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아이가 36주 미숙아로 태어나, 거주 지역(서초구)의 ‘이른둥이 서비스’로 물리치료사 선생님께서 매주 방문해 주셨어요. 선생님께서 아이가 10개월쯤 되어 네발기기를 시도하려 할 때, 힙 헬퍼를 소개하시며 선물로 주고 가셨어요. 쫄바지처럼 생겨 어린 아기에게 불편할 것 같았는데, 착용 시간을 점점 늘려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입혀보자 하셨어요. 이게 뭔지 궁금해서 구글링해보았고, 근 긴장도가 떨어져 다리를 과도하게 벌리고 있거나, 엉덩이 주위의 근육이 약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 제품이었어요.

좋은 자세를 잡도록 도와주는 보조도구

저긴장 근육의 아이들에게 입혀서 체간 등의 힘을 써서 올바른 자세를 유도하여 기어다니게 도와주고, 나아가 보행 시에도 팔자걸음 등이 아닌 예쁜 걸음걸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도구였어요. 그리고 미국 본사 홈페이지인 www.hiphelpers.com 에 보면 다양한 후기 및 착용 전, 후의 아이들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보면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 1~2시간 정도로 시작하여 매주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고 다행히 아이가 거부반응 없이 마치 일상복을 입듯 잘 적응해 주었어요. 아이가 워낙 어렸을 때라 싫고 좋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시점에 소개받은 것에 감사해요.
늘 도움을 받기만 하는, 같은 해에 태어난 다운증후군 친구들 60명의 엄마들이 있는 커뮤니티가 있어 바로 소개하였고 그 중 힙 헬퍼를 아는 분이 한 분도 없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물리치료사나 의사선생님들께 구입 여부를 의논드려도 모르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해외에서는 이미 많이 보급되어있는 것 같아요.) 다들 영상을 보시더니 많은 인원이 원해, 미국 본사에 단체로 직구를 하게 되었어요.

골반(힙)부터 모아줘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종종 보여주는, 두 다리를 양쪽으로 180도 쫙 벌려서 넘기는 동작을 저희 아이도 간간히 했는데 힙 헬퍼를 착용하면, 그 동작을 할 수 없으니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고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행동은 전혀 보여주지 않아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에요. 언제나 개구리 다리처럼 다리 벌리고 자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다리 붙이고 자는 것 보면 이것도 힙 헬퍼 덕분인 것 같아요.

꾸준한 착용이 중요해요

아이 24개월 즈음부터는 비교적 예쁘고 안정적인 보행이 가능하여, 힙 헬퍼를 소개해 주신 선생님께서 더 이상 착용 안 해도 되겠다고 하시며 힙 헬퍼 관련 글을 부탁하셨어요. 그래서 함께 직구했던 엄마들에게도 착용 후기를 물어보았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가 힘들어하여 적응을 못한 경우, 치료사들의 다양한 의견, 네발기기 시작 후 착용하였더니 네발기기를 멈추거나 더디어져서 부모가 마음이 불안해 포기하게 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저희처럼 지속적으로 착용한 아이가 거의 없었는데, 저와 치료실에서 가끔 만나던 한 명의 엄마만 열심히 입히고 있었고, 그 결과는 저희와 거의 비슷했어요. 그 친구도 보여주던 다리 찢어 벌리기 동작은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고, 자세도 예쁘게 자리잡혀 앞으로도 쭉 착용할 계획이라고 하셨어요.
이즈음 제가 느낀 바는 힙 헬퍼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착용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 케어로 워낙 바쁘다 보니 지속이 힘든 것 같았어요. 다행히도 저희는 힙 헬퍼를 소개하신 선생님께서 매주 오셔서 점검해 주셨고, 성장에 따라 제품 업그레이드도 해주시니, 귀찮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선생님이 안 계시고 저 혼자 제품만 받았더라면 저도 중도 하차하였을 것 같아요.
소개해 주시고 계속적으로 점검해 주신, 서초아이발달센터 최진희 센터장님과 김아람 선생님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맺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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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뻗기와 가리키기의 차이 – 손뻗기를 잘 하면 포인팅도 잘 하게 될까요?

글 : 김장곤 (유원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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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기기를 하지 않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 : 김장곤 (유원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많은 육아정보 서적에서 연령대별로 해야하는 동작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발달과정을 기준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즉 반드시 나타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최근의 여러 연구 결과는 이것이 반드시 순서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9개월에 네발기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12개월이 지나고 혼자 걷기가 가능해져도 네발기기를 못하지는 않겠죠? 즉 발달 이정표는 기준이 아니라 범위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순서는 바뀔 수 있고, 나타나는 시기는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발달지표의 적신호를 많이 확인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특정 동작이 나타나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 동작이 나타나지 않으면 발달지연을 의심해 봐야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가지 동작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두 개 이상의 동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는 발달지연과 관련된 병리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Hadders-Algra 20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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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피질시각장애(CVI: Cerebral/Cortical Visual Impairment) 진단 질병코드 및 참고 자료

작성자: 최진희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 회장)

피질(대뇌의 외부층)의 문제로 시각장애가 발생한다고 피질시각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피질을 포함한 뇌 손상에 의한 시각장애로 보고 뇌성시각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재 추세이며, 두 용어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CVI란 무엇인가? 뇌성시각장애(CVI)는 시각을 처리하는 뇌 부분에 손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주로 아기와 어린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지만, 성인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CVI를 가진 아이는 눈 문제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각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보통 눈은 전기적 신호를 뇌에 보내고, 뇌는 그 신호를 우리가 보는 이미지로 바꿉니다. 만약 CVI가 있다면, 뇌가 이런 신호를 처리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CVI는 미국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시력 손실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CVI를 가진 어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력이 좀 개선되지만, 모든 사람이 다릅니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CVI를 가지고 있다면, 초기 개입과 치료, 교육 지원, 그리고 다른 특별한 서비스를 통해 그들이 발달하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뇌성 시각 장애(CVI)는 뇌의 시각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학적 문제로 인해 시각 반응이 감소하는 상태입니다. CVI를 가진 아이는 정상적인 눈 검사 결과를 보이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시각 행동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CVI를 가진 아이들은 특징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이는 선진국의 아이들 사이에서 시력 장애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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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기반 조기개입(Routine-Based Early Intervention)이 낯선 용어인가요?

글 : 최진희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 회장)

일과 기반 개입은 아이의 일상 과제(루틴)와 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별도의 치료 세션을 제공하는 대신, 아이와 가족의 자연스러운 환경과 일상 활동을 중심으로 발달을 촉진하는 대 초점을 둡니다.
일과 기반 개입은 발달지연∙장애가 있는 영유아뿐만 아니라 모든 영유아에게도 가장 적절한 발달지원 방법입니다. 물론 가족의 양육 역량도 높여 주는 최적의 방법입니다.
우선, 일과 중 활동(예, 기상하기, 식사, 가족과 놀기, 잠자기, 외출하기, 어린이집 일상 활동, 가게 가기, 옷 갈아 입기, 목욕하기, 이 닦기, 등)을 수행하는 아이의 능력(의사소통, 인지, 사회/정서, 소근육, 대근육, 등의 기술)을 평가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아이의 일과 활동을 할 때 필요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어 점차적으로 아이의 능력을 발달시킵니다.
일과 기반의 개입은 영유아 발달지원의 가장 핵심적 접근방법입니다. 반복되는 일과 경험을 통해 아이 두뇌는 뇌신경 연결통로를 많이 만들게 되어, 효율적인 두뇌 발달을 하게 됩니다.
일과 기반 개입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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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가족이 이사하기 전 알아두면 좋을 것들

글 : 김지영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이사할 일이 생긴다. 우리에게는 제하가 특수학교에 입학할 때 그 시기가 찾아왔다. 특수학교 입학 심사에는 아이의 장애 유형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만, 지원자 대부분이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에 거주지가 학교와 가까운 사람을 우선으로 배치하게 된다. 당시 살던 곳 부근에는 특수학교가 없었기에 이사가 불가피해서 원서를 내기 전에 이사할 곳을 먼저 알아봤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이사는 단순히 집과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 이상이었다. 매일 다니는 치료실, 연계된 기관과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어디로 이사해야 할까?

일반적인 가정에서 고려하는 집값, 주변 환경 외에 우리가 살펴본 기준은 아래와 같다.
- 아이가 다닐 특수학교와 가까운가?
- 주변에 재활치료, 장애인 복지 시설이 있는가?
- 아이가 주로 이용하는 의료 기관과 너무 멀지 않은가? (주로 이용하는 병원)
-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살기에도 적합한가? (형제자매의 학교, 부모 직장과의 거리)
지원한 특수학교와의 거리가 1순위이긴 했지만, 제하는 요금이 저렴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으니 쌍둥이 형제가 유치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그렇게 특수학교까지 차로 10분, 유치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으로 정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이사를 계획한 곳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장애인 인구가 2순위로 많은 곳이었다. 자연스레 복지관 등 장애인 복지 시설뿐 아니라 재활치료 받을 곳도 많았다. 제하의 출생병원이자 주 이용 병원인 대학병원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남편은 어차피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근무지가 바뀌기 때문에 직장과의 거리는 크게 상관없었다.
이 외에 부수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짐을 충분히 넣을 공간이 있는지, 빛이 잘 들어오는지 등이었다. 원래 살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의 2층이었는데 제하를 안거나 유모차를 들고 오르내리기에는 힘들고 위험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한 번에 하나씩 옮기는 시간이 아까워서 한 손에 제하, 다른 한 손에는 유모차를 들고 다녔는데 집주인은 그런 나를 마주할 때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는 동안 나의 손목은 탈탈 털렸고 승모근은 점점 발달했다. 제하의 키가 클수록 자세도 틀어지고 일반 유모차로는 커버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지만 크고 무거운 장애인 유모차 구입을 이사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머무르는 곳의 환경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아픈 아이와 사는 경우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기에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제하의 짐은 형의 두 배 이상이었는데 특수 분유, 피딩 용품 등 온갖 의료용품 박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정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창밖에는 맞은편 집이 가까이 붙어있으니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고 어두운 집에 있으면 기분도 우중충했다. 이사 후 수납공간이 넉넉해지니 용품과 기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이제 집에만 있는 날에도 울적하지 않았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이사 후 장애인 유모차에 탑승한 제하

이사 전후로 준비해야 할 것은?

- 재활치료 대기

제하의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재활 치료. 며칠만 빠져도 몸이 뻣뻣해지는데 집에서 착실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 남편이 집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의원, 복지관 등 이사할 곳과 가까운 치료기관을 먼저 알아봤다. 대기 기간을 감안해서 가능한 일찍 진료받는 것이 좋은데, 우리는 지원할 학교와 이사 날만 먼저 정한 상태라 집을 정하고 나서 진료를 보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대략 어느 동네로 가겠거니, 생각하고 그곳에서 차로 20분 이내의 시설을 추려 명단을 만들고 거리가 가까운 순서로 전화를 돌려 진료와 상담 예약을 잡았다. 그때가 이사 3개월 전이었다.
대학병원은 진료 예약 시 구비서류를 안내해 주는데 보통 기존 병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서 가야 한다. 소견서나 발달평가지 등을 같이 가져가면 더 좋긴 하지만 대기를 위한 진료라 기존에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정도만 말해줘도 충분하다. 복지관은 사회복지사와 초기 상담을 먼저 한 후 어떤 치료가 필요할지 치료사의 평가를 받고 대기하기 때문에 최소 2번 이상의 방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간혹 전화로 상담하고 이메일로 자료를 전송하는 등 비대면으로 치료 대기를 할 수 있는 복지관도 있었다. 그렇게 대기를 걸어두면 기관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막막했는데, 이사하자마자 일주일 재활 스케줄이 꽉 찼다. 제하가 다른 대기자에 비해 어리고 중증인 편이라 순번이 당겨졌다는 곳도 있었고, 오전이 오후에 비해 대기가 짧은 덕분이기도 했다.

- 지원 기관 연결해 두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애인종합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 가족센터, 아동복지관, 육아종합지원센터, 발달지원센터, 문화복지센터... 지역마다 있는 장애인 가족 지원 기관 및 복지 시설이다. 이들 대부분이 SNS나 카카오톡 등으로 행사 등을 공지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면 친구 추가를 해두는 것이 좋다. 복지관에 사례관리 신청을 해서 사회복지사와 관계를 맺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장애인 가족과 같이 경제, 심리 문제 등 복합적인 어려움으로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가족을 면밀히 살피고 직접적으로 지원해 주거나 외부 자원을 연계해 준다. 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이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두 곳 모두 신청해 두었다.
재활치료나 복지 시설을 찾을 때 참고한 것이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든 ‘WheelRing(휠링)' 앱인데 재활치료, 장애인복지관, 교육, 보조기기 관련 시설 등이 권역별로 정리되어 있어 편리했다.

- 돌봄 대기

나는 장애, 비장애 쌍둥이 형제를 양육하고 있어 장애아동돌봄(장애아가족양육지원사업)과 아이돌봄서비스를 모두 이용했다. 두 서비스 모두 원한다고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순번이 되어야 하기때문에 이 또한 미리 대기를 해둬야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이사 후 전입신고를 해야 해당 지역 서비스 제공 기관(자치구 가족센터 등)에 신청할 수 있는 반면, 장애아동돌봄은 이사 전이라도 주소가 결정되었다면 미리 대기를 할 수 있다.

- 이사 당일 아이 맡기기

내가 결혼하고 우리 가족의 첫 이사이자 아이와, 장애 자녀와 처음으로 함께했던 이사. 유비무환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빠뜨리는 것이 생기고 어려운 것이 이사인 것 같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긴 지 이제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무슨 정신으로 저걸 다 했나 싶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이렇게 기록해 두니 다음에는 좀 덜 겁내고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를 준비하는, 언젠가 이사를 해야 할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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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자녀를 돌보면서 내 삶을 사는 방법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삶 다음으로 나를 두렵게 한 것은 내 삶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돌봄 외에도 매일 다니는 재활치료에 대학병원 외래가 많을 때는 한 달에 10개가 넘었다. 아이가 수술이나 컨디션 난조로 몇 달을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될 때면 닭장 같은 병실에 갇혀 막연한 불안함에 휩싸였다. 이대로 병원과 치료실에서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내 시간이 없는 이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숨이 턱 막혔다. 답답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꿈은 소박해졌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할 여유라도 있었으면, 혼자 밖에 한 번 나가봤으면. 한편 걱정 속에서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원 횟수도 줄어들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고, 요령도 생겼다.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맡기기

친정과 시댁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콧줄에 배변 봉투까지 달고 있는 제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쌍둥이를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는 비장애 아동만 이용할 수 있어 우선 큰아이를 맡기고 나는 제하를 전담했다. 그러다 18개월 무렵 제하에게 장애인등록증(복지 카드)이 나왔다. 남들은 등록증을 받는 날 눈물이 난다는데 나는 기뻤다. 장애 등급이 있으면 보건복지부의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장애아동돌봄은 보통 돌봄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몇 년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고 어렵게 구한 돌보미가 성에 안 차거나 반대로 선생님이 힘들다며 금방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나도 신청 후 몇 달의 대기 끝에 제하가 만 2살이 지나서야 돌보미가 왔다. 우리 집에 온 선생님은 돌봄이 처음인 데다 연세도 많았는데 제하를 친손자처럼 사랑으로 돌봐줬고 다 클 때까지 보고 싶다며 활동보조사 자격증까지 땄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눈물로 이별했지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어린아이를, 그것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남에게 어떻게 맡기냐며 끝까지 직접 돌보는 대단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1년 만에 지쳤다. 물론 아이에게는 엄마가 24시간 붙어있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장거리 달리기이기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엄마의 시간이 많을수록 양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온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하를 맡기고 잠깐 장 보러 나왔을 뿐인데 평일 낮에, 혼자 걷는 그 길에서 감옥에서 출소한 듯 해방감을 느꼈다.
나도 제하를 맡기며 걱정을 전혀 하지않은 건 아니다. 내가 없을 때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선생님이 서툴러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그렇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돌봄서비스 이용 후 지금까지 이사도 하고 돌보미가 활동 가능한 요일, 시간에 맞추느라 4명의 선생님을 겪었는데 모두 좋은 분이어서 한 번도 교체한 적 없다. 돈보다는 봉사 정신으로 이 일을 하는 분이 대부분이었고 아이도 잘 봐주셨다. 피딩이나 석션 등 선생님 스스로도 잘할 수 있을지 염려했던 일들도 자꾸 경험하며 익숙해졌다.

배우자와 휴식 시간 나누기

남편은 6개월 정도 휴직했다가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 복직했다. 이후 남편의 귀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고 식은땀을 흘렸다.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왜 이렇게 안 나오나 싶어 화가 났다. 어쩌다 친구 만나러 잠깐 나가도 되냐고 물으면 그러라고 하면서도 눈치를 줬다. 임신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매년 상, 하반기에 친구들과 2박3일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도 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편은 예전과 변함없이 자기 인생을 사는 것 같고 나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맘이 이렇다 보니 남편 입장은 생각지도 않은 채 못난 말만 쏟아냈고 우리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돌보미가 오고 아이가 어린이집도 다니고, 나도 내 나름의 시간을 틈틈이 가지면서 남편과 타협을 했다. 쉴 수 있는 사람이 쉴 수 있을 때 쉬자는 것이다. 주말처럼 남편이 쉬는 날에는 동네 산책을 하든,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든 온 가족이 다 같이 움직였고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엄마나 아빠가 번갈아 가며 혼자 쉬는 것도 좋다. 애들도 크고 우리도 요령이 생기면서 돌보미 없이도 어느 정도는 애 둘을 혼자 볼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을 놔줘야 나도 눈치 안보고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선심 쓰듯 보내준다.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친구들과의 여행에 큰아이를 데리고 간다. 나도 기회가 있을 때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도 하고 여행도 다녀온다. 아예 매주 일요일 점심은 나 혼자 외식하는 날로 정한 적도 있다.

우선순위 설정하고 일정 조정하기

돌보미가 아이를 돌봐주는 비교적 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아이가 낮잠 잘 때나 치료실에 들어갔을 때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시간 관리는 개인 시간을 확보하는 핵심이다. 스케줄을 잘 조정해 유연하게 활용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고민 없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체력과 멘탈을 유지하고 나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장애인가족지원센터와 장애인복지관, 장애인부모회 등 많은 기관에서 자조 모임을 운영해 부모가 서로 지지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다면, 장애 자녀의 부모로서 삶이 막막하다면 자조 모임을 통해 선배와 동지를 만나보는 것도 좋다.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면서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시간을 내어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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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아이를 모른다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신가요? 아이가 행복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하기를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아이로 하여금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12가지의 양육 습관을 알아보세요.

우리는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을 아이의 몸과 행동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읽기가 어렵고, 눈에 보이는 행동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아이를 대하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의 자질을 일깨워줄 것인지.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의 두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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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을 겪었지만 풀리지 않는 뇌전증

글 : 윤승아

아이의 뇌전증에 대한 애기를 써보려 하니 벌써 먹먹합니다. 뇌전증아이를 13년을 키우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지민이가 열심히 버티고 견디며 지내온 이야기가 어떤 아이와 부모에게 있는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하나의 예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 글은 참고만 하시고, 반드시 주치의와 의논하세요.

저는 제가 납득이 되고 잘 알아야만 실행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민이의 소화계 문제와 뇌전증만큼은 명확한 것이 없어 어려웠습니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위해 뭔가 결정을 해야 하니 그 과정이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저희 아이보다 훨씬 더 조절 어려운 경련과 그로 인해 어려운 치료를 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민이의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 지민이 보다 어려운 상황이나 전혀 다른 상황을 굒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다 다르므로 쉽게 결론 내고 쉽게 적용해 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반드시 주치의와 의논해서 아이에게 맞게 결정해야 합니다.

지민이의 뇌전증은…

NICU를 퇴원한 직후에 아이는 뇌파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보이는 경련을 하지 않아서 먹는 약 없이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다 생후 8~9개월(교정 6개월)무렵 이상행동이 있어 검사를 받았고 바로 영아연축으로 진단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브릴로 비교적 빨리 조절되고 뇌파도 호전되어 8개월 정도 약물을 유지하다가 18개월 무렵 약을 완전 중단하고 1년 반정도 Seizure Free상태를 유지 했었습니다.
뇌전증이 완치되었다는 생각에 그동안 조심하느라 못했던 재활에 매진하며 피로해지고 만3세 무렵 각종 감염에 노출되며 고열이 동반된 열경련을 시작했습니다. 열경련이 두어번 반복되더니 열없는 경련으로 이어져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먹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응급실에서 아티반으로 쉽게 멈추기도 했지만 몇 번 반복 후엔 쉽게 멈추지 못하는 간질중첩증이 되어 약을 쏟아 부어도 쉽게 멈추질 못했습니다. 1시간 이상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중환자실을 한달이 멀다하고 들락거리고 치료를 받다가, 혹은 할아버지댁에서, 혹은 외갓댁에서의 경련으로 본의 아니게 여러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투어를 하게 되었어요. 보라매서울대병원에 계셨던 담당의를 얼마 안되어 분당서울대에서 만나는 웃픈일도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을 가게된 가장 큰 이유는 산소포화도는 유지되는데 내밷는 호흡이 잘 안되어 몸에 이산화탄소 축적이 높아 삽관하게 된 경우였습니다. 일단 삽관을 하면 중환자실에서 경과 관찰 해야 한답니다. 아이는 전조증상이 있었고 부분발작 그리고 대발작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초기엔 제가 전조증상이 경련인줄 몰랐던거에요. 그렇게 시간을 많이 끌었고 더 쉽게 멈추지 못했던거라고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서웠던 순간

첫번째는 열없는 경련 초기에 전조증상으로 경련이 시작된 걸 모르고 40여분 후 대발작을 시작해서야 응급실에 갔습니다. 서울대 본원이었는데 아이를 침대에 옮기고 경련약 투여 후 응급 피검사 결과가 나오자 마자 커텐을 치며 저와 남편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코드00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의료인들이 달려 오더라구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위기는 넘겼다고,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높았다고, 다행히 응급조치로 수치가 낮아져서 입원치료 후 퇴원했었습니다.
두번째는 응급실에서 약물 투약후 멈추었다 생각했는데 보이는 경련이 없어도 심박이 안정되고 깊은 잠이 들지 않으면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고 이 경우 2~30분 후 대발작으로 이어지고 그럼 약을 퍼부어도 쉽게 멈추지 못했어요.
당시 아이는 아티반 2회 투약 후 대발작은 멈추었지만 심박이 150으로 높았고 호흡소리도 짧았어요. 멈춘것 같다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40분 정도 후 대발작을 시작했고 응급 메뉴얼로 1~5단계의 경련약이 있는데 4단계까지 5분간격으로 약을 쏟아 부어도 멈추지 않았어요. 마지막 미다졸을 투여하면 자가 호흡이 어려워 반드시 삽관을 해야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면서 아이는 전신 대발작을 하고 있는데 가서 입원수속을 하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수속했는지도 모르게 경황 없이 수속하고 오니 다행히 아이는 대발작은 멈춘 상태였고 중환자실로 옮긴 후 의식을 찾으며 라인을 스스로 하나씩 뽑고 퇴원을 했습니다.

1년이 넘어서야 경련 양상을 파악함

이렇게 아이의 경련을 1년이 넘도록 격어 가며 아이의 경련 양상을 파악 할 수 있었습니다. 전조증상이 있고 전조증상의 시작은 경련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고 초기에 조절하지 못하면 쉽게 멈추지 못하고, 심박과 호흡이 안정되고 완전히 잠이 들어야 '멈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엔 이 정보를 응급실에 가면 의사와 공유해 매뉴얼 대로 안하고 아티반을 적극 대응하고 보이는 경련이 없어도 심박이 안정화 될때까지 약물을 적극 투여하는 것으로 대응 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조절이 중요하다는 주치의의 처방으로 응급약을 교육받아 경련 5분이내로 항문으로 투약했고 심폐소생술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응급약 투약 후 응급실까지 가는 횟수도 좀 줄게되었습니다.

안해본 것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의 수많은 시도들

영아연축때 약물로 Seizure Free한 경험이 있었기에 약물로 빨리 찾으면 조절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물로 호전은 있었지만 약물로 완전히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모든약을 시도해본것은 아닙니다. 어떤약은 부작용으로 지속시킬 수 없었고 경련 할때마다 약이 붙어서 4~5개의 약을 먹여보기도 했습니다(응급실 투여로 시작된약도 퇴원했다고 금방 종결 할 수 없었어요.). 일단 약을 시작하면 안듣는것 같아도 외래로 정리하는데는 몇달이 걸렸습니다. 지민이는 매일 하는 경련은 아니고 컨디션이 안좋을때 하는거라 약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경련주기가 1달에서 2달이어서 약이 맞는지 확인이 어렵고 오래걸렸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계속 경련을 했고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중요한 발달 시기에 치료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일상은 무너져갔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약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것은 아니였어요. 분명 영향은 있는 것 같은데 딱 멈추진 않더라구요. 점점 짧아지던 간격이 조금 벌어졌고 응급투약과 대처도 조금은 익숙해져서인지 나아졌습니다. 조금 더 맞는 약을 추가하면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걸 찾는 것이 오래 걸리고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씩 추가되면서 아이는 별다르게 호전되지 않고 그러면서 아이는 여러 약들로 힘들어졌습니다.
약으로 조절이 잘 안되니 한약도 1년여 먹여보고, 대체의학인 생의학 요법도 1년정도 해봤습니다. 수술이나 미주신경요법 등의 치료도 가능했으면 시도해 봤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심각한 발달지연이 예상되는 상태여서 다양한 경험으로 뇌에 여러 자극을 주어야 하는 상태였고 뇌전증치료는 뇌가 자극에 둔감해지도록 눌러주는 것이므로 서로 상반된 입장입니다. 저는 맘이 급해졌습니다. 아이는 발달자극이 필요한 중요한 연령대였는데 뇌전증은 뇌전증대로 잡지도 못하고 치료에 변화도 없이 무심히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꺼내면서도 다시 마음이 아파오는 그 순간들

나는 이놈(뇌전증)과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겠구나 생각한 대발작이 있던 그 날.

응급실에서 발작 후 잠든 아이를 보며, “아이의 뇌전증은 의학적인 치료(약물, 수술, 기타 의학적 치료)로 완치(Seizer Free)는 어려운 게 아닐까? 뇌에 손상이 백질 뿐 아니라 회백질까지 있는데 경련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거 아닐까? 나와 이 아이는 뇌전증은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당뇨나 고혈압처럼.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뇨나 고혈압도 약물과 생활습관 개선 등으로 관리하면서 평생을 지내지 않습니까? 나와 아이에겐 뇌전증이 당뇨나 고혈압 같은 거라 생각하니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아이와 내 삶을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경련이 반복되면서 경련에 대한 대응에 자신감도 좀 생겨나고 있었고 주치의 말씀으론 아이가 대발작이라 심해보이지만 뇌기능이 퇴행되는 경련은 아니라고 했었기에 더이상 완치를 위한 약을 찾느라 삶을 허비하지 말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의 경련이 반복되면서 경련에 대한 대응에 자신감도 좀 생겨나고 있었고 주치의 말씀으론 아이가 대발작이라 심해보이지만 뇌기능이 퇴행되는 경련은 아니라고 했었기에 더이상 완치를 위한 약을 찾느라 삶을 허비하지 말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치의와 상의해서 어느 정도의 약의 갯수를 최소로 하고 최소용량을 유지하면서 다른 경련유발요인을 최소화하고 경련주기를 아이가 다시 회복하고 성장할 수있도록 최대한 늘려보는것을 목표로 치료방향을 정했습니다. 빠른 약조절을 위해 입원을 해서 약을 한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스케쥴을 조정하고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장소와 상황은 최소로 조정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도록 하고 방에도 숙면을 위해 아무것도 못하고 돌처럼 지켰습니다. 지민이와 비슷한 경우 좀더 많은 약을 많은 용량을 먹고 지민이보다는 좀 덜 자주 경련하지만 지민이는 약을 좀 덜 먹고 일상과 치료와 컨디션 관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경련 전 후의 상황을 기록하고 대비했지만 삶이란 게 잘 조절되지도 않았고 아이도 저도 피로감을 잘 알아차릴 수 없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2~3달에 한번씩 경련을 했고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약물이나 응급조치가 필요한 위험한 경련을 하고 있기에 긴장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경련이 발생하면 부모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저는 그걸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이는 뇌전증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 관리해서 길게 11개월정도 대발작이 없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경련 양상도 익숙해지고 있었고 대응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측이 되었기에 더이상 두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경련 양상도 변한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초경)가 되면서 또 양상이 바뀌었고 경련주기가 다시 짧아졌습니다. 전조도 없이 바로 대발작을 합니다. 최근에는 경련 주기가 2달이 안되어 회복할 겨를 없이 다시 경련을 해서 약물을 좀 적극적으로 써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가 경련 후 체력을 회복 할 정도의 주기는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전증만 바라보고 살 수 는 없었습니다. 장애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장애를 가졌어도 병이있어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아이들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뇌전증과 같이 지내기로 결심하고 관리하고 지낸 5~6년간은 가끔 행복하단 생각도 하며 살았습니다. 관리하는 기술이 늘어 주기도 조금 길어지고 전조 증상시 경련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 도 많았고 아이도 컨디션 조절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었지만 조금씩 시도하고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지금 막 아이가 아픈걸, 혹은 어려움을 갖게 된걸 알게 된 부모는 10명이면 10명이 낫게 해주고 싶은 맘일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낫지 않으면 삶도 없고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실것 같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뇌가 손상되어 퇴행이 생기거나 생명에 위험이 되는 경우는 적극적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번 쯤 생각해보세요. 아이와 아이의 삶을, 그리고 그아이와 같이 살아갈 나와 다른 가족을. . . 물론, 가끔 한번씩 생각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경련을 딱 멈추게 되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말입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을 즐기는 지민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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