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자녀에 가려진 아동기 비장애 자녀, 어떻게 대해야 할까?

글 : 김지영

제하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난 옆 침대의 고등학생 여자아이는 수술 후 몸이 아프고 불편할 텐데도 너무나 밝았다. 병원에 있는 내내 엄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어떻게 키웠길래 아이가 저렇게 예쁜 말만 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딸은 몸이 안 좋아서 온종일 붙어 지내니까 밝은데, 아들은 엄마와 말도 안 섞는다는 것이었다.

내 동생은 장애인이에요.

장애 아동의 부모가 간과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비장애 자녀일 것이다. 부모는 아픈 아이에게 온 신경을 쏟느라 다른 아이에게는 시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줄 수 있는 것이 부족해진다. 돌이켜 보면 나도 제하의 형과 진득하게 앉아 놀아준 시간이 손에 꼽히는 것 같다. 형은 돌봄 선생님에게 맡기고 제하를 데리고 매일 같이 재활을 다녔고, 제하가 수술을 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병원에 입원하느라 형은 몇 달을 제대로 못 본 적도 있었다. 한 번은 돌봄 선생님이 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해 보내줬다. “엄마 보고싶어요... (울먹울먹) 엄마 보고싶어요...” 아직 25개월밖에 안되었을 때였는데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덩치도 제하보다 훨씬 크고 정상 발달을 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형이기에 우리도 편의상 ‘첫째’, ‘형’이라고 칭하지만, 사실 제욱이는 뱃속에서 몇 초 먼저 나온 쌍둥이 형제다. 두 돌 때까지는 내가 제하를 안고 있으면 제욱이가 달려와서 때리거나 꼬집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나도 안아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속도 모르고 혼을 냈다.
“엄마, 제하는 아기라서 아직 못 걸어?” 아이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제하도 이젠 아기라는 핑계가 먹히지 않을 정도로 자라서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직 제욱이는 ‘장애인’이라는 명칭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길에서 장애인콜택시를 마주치면 반가워하고,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면 신이 나서 우리 자리라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나와 같은 처지의 지인은 벌써 아이에게 장애인이라는 걸 알려줬느냐고 놀라서 물었다. 장애, 비장애 남매를 키우는 지인은 초등학생인 누나가 슬슬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걸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곧 겪을 일일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나도 엄마 아빠의 아이잖아요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2~30대 청년들이 만든 자조모임이 있다. ‘나는’이라는 이 모임에서 출판한 책 <나는, 어떤 비장애 형제들의 이야기>는 장애 가정에서 비장애 형제자매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경험과 상처를 돌보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아이의 심정에 대해 짐작해보고 미래에 겪게 될 문제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도 엄마 아빠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인데, 장애 형제 때문에 손해 보고 차별받는 것 같은 좌절감과 분노. 그럼에도 내가 장애 형제를 돌봐야 한다, 부모님이 기대하는 만큼 내가 더 잘해야 하고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일이 잘 풀리면 내 형제도 건강했다면 나처럼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는 죄책감, 반대로 일이 잘못되면 이게 다 형제 때문이고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원망과 그 생각 끝에 드는 죄책감. 장애 형제와 함께 살면서 드는 복잡한 감정은 다른 누구에게, 심지어 부모에게조차 온전히 말하기도 이해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부모가 비장애 자녀에게 해줘야 할 일

비장애 자녀는 마음에 상처를 입기 쉬운 환경에 있기에 부모가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는 사랑을 많이 표현할 것. 장애 형제가 아파서 하루 종일 돌보고 있지만 나는 너 또한 사랑한다는 것을 꼭 알려주면 좋겠다. 아이의 입원으로 엄마나 아빠가 장기간 떨어져 있어야 할 경우에는 매일 영상통화를 하든 주말만 보호자를 교대하든 면회를 오게 하든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너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
둘째는 둘만의 시간을 가질 것. 장애아동 돌봄 선생님이 온 뒤로는 제하를 맡기고 첫째 어린이집 하원 후 가까운 놀이터에 가거나 어린이박물관 등 가끔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 조금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밖에 나갈 시간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집에서 놀아줘도 충분하다. 아이에게는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니까.
셋째는 만약 아이가 장애에 관해 물어보면 정확하게 얘기해줄 것. 이야기 해줘도 이해 못할 거라고 대충 얼버무리면 비장애 자녀는 자신에게도 형제와 같은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장애가 생겼고 어디가 불편한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넷째는 장애 아이 양육에 너무 올인하지 말 것. 부모가 그로 인해 불행한 인생을 사는 모습은 아이에게도 큰 짐이 된다. 또한 아픈 아이를 탓할 수 없기에 부모가 힘들수록 비장애 자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할 수 있다. 나도 제하를 돌보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첫째에게 화를 못 참는 순간이 많았고 감정적으로 육아를 했다. 힘든 와중이지만 부모 인생도 즐기며 사는 것이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필요하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장애 자녀는 말 못 할 고민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속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해줘야 한다. 대화가 어려운 경우에는 심리상담을 받도록 하거나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비장애 형제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제욱이는 심리상담을 받기에는 아직 어린 만 4세이기에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담당 선생님께는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보다는 제욱이가 지금까지 겪었을 결핍을 다독여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놀아달라고, 뭔가 해달라고 할 때마다 제하를 돌보느라 뒷전으로 미뤘던 일.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일인데 제하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했던 것들. 덜 안아주고 많이 웃어주지 못한 기억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아이의 눈을,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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