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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하기
글 : 김지영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마치 작은 천을 이어 붙인 조각보 같다. 짧은 시간에 할만한 게 별로 없다 보니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흘려보내기 일쑤고, 쉬면서도 이래도 되나 알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육퇴 후 뭐라도 해야지 다짐하지만 아이들 재우고 나면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기가 어렵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었고,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었다. 시간과 돈 어느 쪽도 여유가 없는 지금, 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산책하기
얼마 전 아이 치료가 끝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앉아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처음으로 치료실 주변을 산책했는데 평소 몰랐던 풍경이 보였다. '여기가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동네였구나.', '이렇게 예쁜 카페가 있었는데 왜 몰랐지?' 택시가 오기 까지 단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일 10분 만이라도 이런 시간이 있으면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안과 집밖에 있는 시간을 모두 좋아했지만 강제 집순이가 되니 더 기를 쓰고 나가고 싶어져서 짧게라도 외출을 해야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다. 짧은 외출로는 목적 없는 걷기, 산책이 최고다. 산책할 시간조차 없다면 아이 치료실 가는 택시 안에서 폰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로도 꽤 기분 전환이 된다.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는 대학생 때 시작한 나의 오랜 취미이다. 매일 보는 흔하고 사소한 장면일지라도 카메라를 통해 시선을 주면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똑같은 일상에서 보석 같은 순간을 찾아내는 눈이 생긴다. 특히 필름 카메라는 디카나 폰카와 달리 결과물을 미리 확인할 수 없어서 필름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어떤 장면이 담길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또, 필름이 무한대가 아니기에 한컷 한컷 신중을 기하게 되는데 숨죽이고 집중하다가 셔터가 '찰칵'하는 그 순간이 짜릿하다. 출산 후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필름 카메라를 최근 들고 다녀보았다. 아이만 보고, 앞만 보고 스치듯 지나온 길에서 다시금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보는 수단이 될 듯하다. 필름 카메라 구매가 부담스러우면 일회용 카메라를 써보는 것도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사진관에 필름 스캔을 요청하면 디지털 파일로 받을 수 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만 인화를 요청할 수 있다.

그림 그리기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예술교육센터를 '시민이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탐색하는 공간'으로 소개한다. 공간 자체도 좋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이곳에서 낙서를 주제로 처음으로 오일파스텔을 접했다. 순수 미술은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걱정과 잡생각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된다. 또 좋은 점은 결과물을 보며 소소한 성취감도 얻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1회로 한 달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끝나고 나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서 색연필을 샀다. 집에서 틈틈이 그리기도 하고 가끔 밖에도 들고 나간다.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인터넷에서 '컬러링', 'DIY 명화' 등으로 검색하면 손쉽게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순수 미술보다 실용적인 것이 좋다면 뜨개질, 자수, 미싱으로 옷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특히 뜨개질 재료는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사람을 꽤 봤다.

수집하기
결혼 전부터 성냥을 수집했다. 원래는 여행 기념품으로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 왔는데 무겁기도 하고 어떤 돌멩이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바꾼 것이 성냥이다. 저렴한 가격에 가볍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특색이 있어서 수집하기 좋았다. 모로코, 스페인, 필리핀, 태국, 일본... 여행지에서 사거나 식당에서 받아오기도 하고 내 취미를 아는 친구들에게서 선물 받은 것도 있다. 아이 낳고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품 가게에서 우연히 예쁜 성냥을 발견했다. 2천 원짜리 성냥을 계산하는 데 어찌나 설레던지.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얼굴이 따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소녀 감성이 솟아올랐다. 아이 외에 집착할 것이 생긴다는 것, 수집은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작은 사치하기
내 소비 습관은 푼돈은 아끼고 큰돈은 잘 쓰는 것이다. 결혼 전에도 몇백 원 아끼려고 집 앞에 마트를 두고 길 건너 시장에 가면서 1년에 한두 번은 비행기를 꼭 탔다. 육아로 퇴사한 뒤에는 집에 커피를 잔뜩 놔두고 혼자 카페에 가는 게 어색하고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사치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작은 사치의 기준은 '이 정도 돈 쓴다고 안 망한다, 이거 아낀다고 큰 부자 되는 거 아니다'이다. 출산 후 처음 혼자 카페에 갔을 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떴다.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카페로 나오면 집중도 더 잘 됐다. 또 다른 작은 사치로는 꽃을 사는 것이다. 종류나 관리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사두면 짧게는 일주일 길면 2주는 두고 볼 수 있다. 단 한 송이 꽃이라도 볼 때마다 기분이 싱그러워진다.

점심밥 대충 먹지 않기
아이 치료실 다니느라, 혼자 차려 먹자니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점심을 거르거나 대충 먹은 적이 많다. 점심으로 일주일에 3번 이상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다 체력도 자존감도 떨어지는 것 같아 혼자 먹어도 든든하게, 예쁘게 차려 먹기로 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SNS를 활용하고 있는데 점심 사진만 올리는 용도로 새로 만든 이 계정은 댓글이나 팔로워 수 등 다른 신경은 쓰지 않으려고 굳이 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업로드를 건너뛰는 날도 있지만 덕분에 아직 흐지부지되지 않고 잘 차려 먹고 있다. 한 가지 더, 점심에 밖에서 혼자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맥주나 하이볼을 꼭 주문한다. 밤에 육퇴하고 남편과 마시는 것과 다르게 일탈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명상하기
명상은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가 공통으로 추천한 방법이다.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명상은 아니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잠자리 명상... 종류가 많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바쁘게 돌아가던 생각이 잠시 멈추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순간에 집중해 맛과 향을 온전하게 느끼면서 먹는 것도 명상이다. 주의를 집중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어 마음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길러주는 것. 명상을 많이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통찰력이 더욱 예리해진다.

우리에겐 낭만이 필요해
이런 거 할 시간에 아이 스트레칭이나 한 번 더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책이라도 읽어주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마음 한편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만 하는 것은 기계나 다름없는 삶일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낭만이 필요한 것 같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사전에서는 '낭만'을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일탈, 새로운 경험, 몰입... 낭만적인 시간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을 건강하게 하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드디어 사회로 나아가기 : 가족에서 사회로
글 : 윤승아
나 그리고 가족
영아기일때는 사실 이 상황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고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내아이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가슴찢어지는 고통, 뭘해야할 지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 당황, 좌절감, 뭐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쏟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능력과 지식도 생기고 가족들도 받아들여 이해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재활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목표로 달리며 이제 좀 살아갈 힘이 생기면, 아이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지낼 수 있는 활동지원, 교육기관의 이용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아이는 같이 사회로 나가는 첫 연습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불안함이 커서 선듯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불안함은 언제 할 지 모르는 경련. . .
아이는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할 수 없어 외부에서 옷을 입히거나 벗기면서 냉난방 기구로 외부온도를 조절해 주어야 했고 감염에 취약해서 아프지 않게 해야 했으며 어설픈 움직임으로 다치지 않게 해야하고 무엇보다 언제 할지 모르는 경련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간질중첩증(스스로 잘 못멈추는 증상)으로 응급약을 항문으로 투약해야 했기에 다른사람이 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쩔수 없이 아이를 안전하게 케어한다는 명분으로 아이 스스스로 조절해보고 시도해볼 기회를 너문 않주고 의존적으로 키우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기회가 왔을때 내가 챙겨왔던 이 모든것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기엔,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났고 쉽게 믿음이 안생겼습니다.
아이를 4시간이상 맡길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 있나요?
아이가 어릴 때 들었던 부모교육이 있었습니다. 6개의 항목을 주제로 부모교육이 구성되었고 그중 사회성에 관한 강의가 있었는데, 경력이 많은 특수교사였던 강사분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몇 명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모님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못 적었습니다. 강사는 앞으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4시간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을 60명을 확보하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없는데 60명이라니요. . . . 그렇게 많이? 사실 이유는 지금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질문만 기억 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나 이외에는 돌볼 수 없게 계속 사는 건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지요. 나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집안에 일이 생길 수 도 있고 나는 늙습니다. 영원히 내가 다 살펴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금방 제게 닥쳤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돌봄이 필요했던 상황이 생기다
저는 일단 구하는 것도 미루었습니다. 가족의 지원이 있어 당장 시급하지 않기도 했지만 낮선 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루었던 일이 갑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도와주시던 친정아버지가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셔야 했했습니다.전적으로 도와주시던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어려워 지자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구하고 나서도 많은 부분을 한동안은 제가 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먹이던 것을 마저 먹여주시고 그렇게 조금씩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조금씩 믿음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저도 암진단을 받아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강제로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제가 걱정하던 위험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어요.
기관을 이용하기 시작하다
이런 연습의 과정을 거쳐 아이를 기관에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발달하기 위해선 다양한 자극이 필요한데 다양한 사람으로부터도 받을 수 있고 사회성이 발달 할 수 있을것 같아서죠. 사실 아이가 좌절하지 않고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그럼 성장할 수가 없잖아요. 넘어져봐야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상처받아야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 엄청난 고민끝에 여러형태의 기관중 바로 집앞에 병설초 유치원 특수반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한번 맡겨보니 제가 걱정한거보다는 별일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용기가 조금 났죠.
처음 아이를 입학시키고는, 경련을 하는 아이라 불안함이 컸던 이유도 있지만,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 5분 거리에서 1달 이상을 배회했습니다. 잠깐씩 살짝 보러 가기도 했어요. 다행히 선생님 이 이해해 주셨어요. 아마도 많은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저와 같았나봐요. 선생님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해주시고 다양한 시도하고 있는 방법들을 공유해주시고 하루 이틀 그렇게 별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자 조금씩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반나절 지내고 점심을 먹고 하원하던 아이가 어느 날 오후 4시까지 체험학습을 간다고 해서 또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걱정 말고 보내라 잘 할 수 있을 거다"하셔서 보내기로 하고는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또 괜찮다고 설득하셔서 아이만 보내기로 했습니다. 체험학습 당일 아침에 큰 배낭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갔다가 “어머니 무슨 1박2일로 여행가요? 다 빼셔도 돼요. 걱정 마세요. 잘 챙길게요"하시며 싸가지고 갔던 비상약이며 추울 때를 대비한 여벌 옷, 로션, 수건, 먹을 것 등등 다 빼시고 거즈 손수건만 하나만 본인 가방에 챙기시며 가방 채로 돌려주셨지요. 조금은 무안하고 창피했는데, 온 마음으로 잘 챙길테니 믿고 보내 달라셨던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관계와 삶의 폭을 넓혀가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나와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전보다 쉽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게 되었고 또 아이가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요. 작은 이사짐 수준으로 들고다니던 짐들로 하나씩 줄이게 되었어요.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보면 아직도 60명은 안됩니다. 아무리 짜내어 꼽아봐도 30명이나 될까요? 하지만 전보다 훨씬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 그 누구든 4시간 정도는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60명이 되면, 이 목표는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가 독립적인 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과 맞닿아 이 사회에서 내가 없이 아이가 살아나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하고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장애인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편견에 대해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편견의 시선을 많이 느낀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 빼고는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남들보다 작은 일에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가족인데. 처음엔 그런 시선에 위축되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자치구의 도서관에서 편견을 주제로 시민 작가를 공모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전시에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편견)'을 주제로 사진과 글을 출품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K-장녀라 그런가, 나는 어릴 때부터 누가 내 걱정을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웬만한 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고 가족들에게는 아예 얘길 하지 않거나 상황이 종료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 알렸다. 성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이유로 지인에게 아이의 장애를 밝히기가 ㅋ꺼려졌다. 걱정의 눈빛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주 만나거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숨길 수가 없어서 일찌감치 얘기를 했지만 가끔 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절반 이상이 '대단하다'이다. "어떻게 그렇게 밝아?", "긍정적이네!",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고?" 장애인 가족은 으레 어둡고, 부정적이고, 간병과 육아와 살림과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삶이 찾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사는 것뿐. 내가 대단해서, 타고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악의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내 삶이 어둠인 것 같다고 굳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믿고 살고 있던 나로서는 순간 힘이 빠진다. 내 삶은 내가 대단해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남들은 출산하면 축복 속에서 육아를 하는데 우리는 축하는 커녕 측은함과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꾸역꾸역 아이를 키웠다. 양가 식구들도 우리 가족을 안쓰럽게만 바라보았다. 물론 출산 후 약 2년 동안은 좋은 일이 있어도 오롯이 행복감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러나 출산한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힘든 순간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며,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출산 전보다 새로운 것에 더 많이 도전하고 공부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집 나가면 쯧쯧
아들 둘과 집에만 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릴 땐 쌍둥이 유모차에, 요즘은 장애인 유모차와 킥보드에 하나씩 태워서. 가까이는 동네 산책부터 멀리는 놀이공원까지 가기도 한다. 아이들 핑계로 나왔지만 나도 콧바람을 쐴 수 있어 외출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불편한가 보다. 흘끔흘끔 혹은 대놓고 빤히 보는 사람들. "쯧쯧"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아이고 엄마 혼자 애 둘 데리고 고생하네, 쯧쯧...",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됐니.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우린 신나는 나들이 중인데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면 흥이 깨진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이고~ 너 왜 그렇게 사니, 쯧쯧' 하면 기분이 어떨까?

명품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의 유래가 된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11세기 영국에서 한 영주의 아내였던 고디바는 과도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백성을 구하고자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문과 창을 닫고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장애인을 길에서 스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궁금하거나 안쓰러워도 불편한 눈빛과 말은 거둬줬으면 좋겠다. 걱정되면 도와주기만 해도 된다. 길을 비켜주거나 문을 열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 가족, 좋~을 때다!
장애인 가족을 바라보는 불편하거나 측은한 시선을 주제로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은 산책길 한가운데서 포즈를 취하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한 어르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상되는 말이 흘러나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제일 좋~을 때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편견 없이 행복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힘이 난다.

말에는 힘이 실려있다. 누가 안쓰럽다고 하면 정말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 행복감은 배가 된다. 퇴사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아이의 장애를 얼굴에 점 하나 있다는 것 정도로 반응해 준 회사 후배(절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하와 형을 번갈아 보며 쌍둥이냐며, 둘 다 너무 잘생겼다고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호들갑 떨며 말해준 식당 종업원.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큰일 난 게 아니다. 그런 시선들이 장애인 가족 스스로에게 예기치 못하고 맞닥드리게 된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위 글과 사진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주관으로 지난 10월 25일 경춘선숲길갤러리에서 개막한 '뜻밖의 OOO 전시회'에 참여한 작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뇌성/피질시각장애 (CVI) 이해와 일상지원 – 강의영상
보는 것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원인에 따라 개입 방법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피질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 때문에 잘 못보는 것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으시죠? 이번 강의를 통해 이러한 피질시각장애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알아보고 가정과 어린이집 등의 일상의 환경에서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알아보세요.
뇌성/피질시각장애 (CVI) 이해와 일상지원 – 강의영상 더 읽기"
영유아기 면역과 감염 – 강의영상
면역과 감염 분야의 국내 권위자인 세 분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신생아와 영유아의 감염과 면역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하여 우리의 일상에서 신경 써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달리Go! 성장하Go!! <우리 아기 GoGo> 평가회
11워 26일 일요일 오후 우리 아기 전동차 타기 프로젝트 <우리 아기 GoGo>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아이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전동차를 타기 위한 준비를 하고 그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어린이들이 전동차 타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