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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보조기기 입문

글 : 김지영

아이가 태어나면 걷고, 잡고, 말하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누워서 지내는 중증 뇌병변 장애 아이에게는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고개도 못 가누는 아이의 자세와 움직임을 내 팔다리로 보조해 주다 보니 나까지 허리며 어깨며 여기저기 삐그덕거렸다. 그나마 기댈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애인 보조기기였다. 장애 당사자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보호자를 위한 것까지. 장애 유형과 운동 능력 등에 따라 다양한 용도의 보조기기가 있다. 한편 종류가 무궁무진한 만큼 우리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어떤 것인지 몰라서 헤맬 수도 있다. 오늘은 뇌병변 심한장애인 다섯 살짜리 우리 아이가 사용해온 보조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유아동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기기

내가 처음으로 보조기기를 접했던 것은 '장애인 보조기기 렌탈 서비스'('렌탈 바우처'라고도 한다)를 신청할 때였다.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도 잠시,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1. 피더시트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내가 아이를 돌볼 때 가장 힘든 게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밥을 먹일 때였다. 고개를 못 가누는 아이를 왼팔에 안고 오른손으로 이유식을 먹였는데 한 끼 먹는데 30분에서 1시간은 걸렸고, 강직이 있는 아이라 먹는 내내 뒤로 뻗쳐서 왼쪽 팔, 어깨와 등 전체에 통증이 있었다. 당시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내 등을 본 선생님은 왼쪽 등 근육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굳어있다고 했다. 한편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지하는 팔에 힘이 빠지니 아이의 자세 또한 거의 눕다시피 하거나 고개가 자꾸 젖혀져서 기도 흡인의 위험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우리 아이의 첫 보조기기는 앉기 자세 유지를 위한 피더시트(feeder seat)였다. 재활치료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란색 의자인데 이름처럼 식사나 놀이, 학습 시간에 휠체어를 대신해 앉아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부드러운 재질이라 앉았을 때 편하면서도 자세를 잘 잡아주어 근 긴장도가 높은 아이에게 좋은 의자다. 이물질이 묻으면 물티슈로 닦거나 물로 간편하게 씻을 수도 있어 자주 토하고 기저귀 밖으로 변이 새는 우리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2. 장애인 카시트, 유모차 - 아동용 보조기기

외출할 때 일반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면 고개가 떨어졌다 젖히기를 반복하고 허리가 휘는 등 차의 움직임에 따라 자세가 무너졌다. 반면 장애인용 카시트는 등과 허리에 패드가 있고 벨트도 복부 전체를 감싸는 모양이라 아이를 안정감 있게 잡아주었다. 다만 초반에 고개가 떨어지는 것이 잘 잡히지 않아서 시중에 판매하는 머리 고정 벨트나 목베개를 함께 사용했다.
이동용 보조기기로 유모차형 휠체어(장애인 유모차)도 빼놓을 수 없다. 장애 아동의 자세를 잘 잡아주도록 설계되어 있어 단순히 이동뿐 아니라 신체 변형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유모차형 휠체어는 대표 제품을 한두 개로 좁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종류가 많은데 아이의 상태나 생활 환경에 따라 최소 요구사항을 정하고 하나씩 따져보면서 고르면 된다. 180도로 펴져서(리클라이닝 기능) 유모차에서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지, 체간을 잘 잡아주는지, 접어서 차에 실을 수 있는지, 쉽고 빠르게 각도를 조절하고 접을 수 있는지, 여자 혼자 들 수 있는 무게인지, 디럭스 유모차 수준으로 몸체와 바퀴가 안정적인지, 핸들링이 좋은지, 특히 산소발생기와 석션기 등 짐이 많은 아이의 경우 짐을 실을 공간이 충분한지 등을 조건으로 꼽을 수 있다. 나는 리클라이닝 기능과 우리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지를 최소 조건으로 유모차를 선택했다.

3. 발목 보조기, 기립기 - 보행 및 서기 보조기기

서서 걷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아이만 발목 보조기(단하지 보조기)를 착용하는 건 아니다. 발과 발목의 변형과 구축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거나 서기 훈련을 할 때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발목 보조기를 착용한다. 우리 아이는 평소에는 쓰지 않고 기립기에서 서기 훈련할 때만 착용한다. 기립기(기립 보조기기, 스탠더 라고도 한다)는 스스로 서거나 걷지 못하는 아이의 근력과 뼈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실에 기립기가 없는 경우도 있고, 있더라도 치료 전이나 후에 30분씩 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집에 들이게 되었다. 아이가 고개를 가눌 수 있다면 받침이 앞에 있는 전방기립기, 가눌 수 없다면 받침이 뒤에 있는 후방기립기를 선택한다.

4. 휴대용 의자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우리의 첫 보조기기인 피더시트를 슬슬 바꿀 때가 되었다. 제하 몸집이 커졌을 뿐 아니라 이동하려면 아이를 들어서 바닥에 눕혀놓고, 피더시트를 옮긴 후 다시 아이를 안고 가서 피더시트에 앉혀야 했다. 피더시트도 아이도 둘 다 무거운데 이걸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한다. 또 부피가 큰 피더시트는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명절에 친척 집에 가거나 여행 가서 실내에 머물게 되면 삼시세끼 아이를 안고 밥을 먹여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실내용 유모차를 따로 살 수도 없고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휴대용 자세 보조 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퀴가 달려있어 앉은 상태로 이동할 수 있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손잡이만 없을 뿐 형태와 기능이 유모차와 비슷하다.

5. 기타 자세 유지 보조기기

아이가 커가면서 추가로 들인 것들은 대부분 신체 변형을 예방하면서 다양한 자세를 도와주는 자세유지 보조기기이다. 엎드린 자세유지를 보조해 주는 '웻지(wedge)'는 경사가 있는 지지대로 평평한 맨바닥에서 이른바 '터미 타임(Tummy time)'을 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환경적으로 난이도를 낮춰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서서 기립기 훈련을 할 때나 피더시트에 앉아있을 때마다 한쪽으로 고개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머리 지지대인 '헤드 마스터칼라(Head mastercollar)'를 써보기도 했다. 푹신한 매트와 다양한 형태의 쿠션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세지지시스템'은 찍찍이로 탈부착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조합으로 아이가 다양한 자세를 잡는 것을 도와준다. 척추측만과 고관절탈구 예방을 위해 누워있을 때도 쿠션형 제품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추후 사용을 고려하는 것으로는 목욕 의자, 전동 침대가 있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아기 욕조에 고개를 걸쳐놓고 씻기는데 이젠 한계가 와서 목욕의자가 필요할 것 같다. 이름은 목욕 '의자'지만 아이를 눕힐 수도 있고,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이거나 받침대를 함께 구매하면 어른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씻길 수 있다. 또 바닥보다 침대가 아이를 간호하거나 들고 내릴 때 편한데, 침대 자체의 높이 조절뿐 아니라 상체를 세울 수 있는 전동침대는 누워서 비위관이나 위루관으로 식사하는 아이에게는 역류를 방지해주기도 한다.

보조기기 지원받기

보조기기는 거품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다. 다행히 국가 지원을 비롯해 각종 복지 기관과 재단,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보조기기를 직접 지원받거나 구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집에 있는 보조기기도 내돈내산은 단 하나도 없이 모두 지원받아 구매 또는 대여했다.(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1. 국가 지원 서비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보조기기센터에서는 제품 대여, 소독 세척, 맞춤 제작, 전시체험장 견학, 의류 리폼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역별로 운영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서울시 센터에서는 1인당 최대 3개까지 동시에 대여할 수 있고 직접 수령은 물론 배송도 된다. 대여료로 반납 시 환급되는 보증금만 내면 되는데 보증금 자체도 저렴해서 거의 무료에 가깝다. 보조기기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지원 사업은 물론 보조기기 활용 교육을 시행하기도 하니 홈페이지를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좋다.
시중에 나와 있는 보조기기는 중앙보조기기센터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비롯해 보조기기 판매 사이트(설명이 더 자세하고 가격도 확인할 수 있어 보기가 편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보조기기가 필요할지, 어떤 회사 제품이 좋을지. 내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구매 전 전문가의 진료나 상담을 받아본 후에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재활의학과 의사 및 치료사, 보조기기센터의 보조공학사, 보조기기 판매업체 담당자(주로 보조기기 렌탈서비스 이용 업체) 등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조언을 구해보자. 보조기기는 한 번 들이면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한다. 적절한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을, 가족 모두에게는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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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하기

글 : 김지영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마치 작은 천을 이어 붙인 조각보 같다. 짧은 시간에 할만한 게 별로 없다 보니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흘려보내기 일쑤고, 쉬면서도 이래도 되나 알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육퇴 후 뭐라도 해야지 다짐하지만 아이들 재우고 나면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기가 어렵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었고,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없었다. 시간과 돈 어느 쪽도 여유가 없는 지금, 적은 돈과 짧은 시간으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산책하기

얼마 전 아이 치료가 끝나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앉아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처음으로 치료실 주변을 산책했는데 평소 몰랐던 풍경이 보였다. '여기가 숲이 우거진 아기자기한 동네였구나.', '이렇게 예쁜 카페가 있었는데 왜 몰랐지?' 택시가 오기 까지 단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이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일 10분 만이라도 이런 시간이 있으면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안과 집밖에 있는 시간을 모두 좋아했지만 강제 집순이가 되니 더 기를 쓰고 나가고 싶어져서 짧게라도 외출을 해야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다. 짧은 외출로는 목적 없는 걷기, 산책이 최고다. 산책할 시간조차 없다면 아이 치료실 가는 택시 안에서 폰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정도로도 꽤 기분 전환이 된다.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는 대학생 때 시작한 나의 오랜 취미이다. 매일 보는 흔하고 사소한 장면일지라도 카메라를 통해 시선을 주면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똑같은 일상에서 보석 같은 순간을 찾아내는 눈이 생긴다. 특히 필름 카메라는 디카나 폰카와 달리 결과물을 미리 확인할 수 없어서 필름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어떤 장면이 담길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또, 필름이 무한대가 아니기에 한컷 한컷 신중을 기하게 되는데 숨죽이고 집중하다가 셔터가 '찰칵'하는 그 순간이 짜릿하다. 출산 후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필름 카메라를 최근 들고 다녀보았다. 아이만 보고, 앞만 보고 스치듯 지나온 길에서 다시금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보는 수단이 될 듯하다. 필름 카메라 구매가 부담스러우면 일회용 카메라를 써보는 것도 좋다. 촬영을 마친 뒤 사진관에 필름 스캔을 요청하면 디지털 파일로 받을 수 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만 인화를 요청할 수 있다.

그림 그리기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예술교육센터를 '시민이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탐색하는 공간'으로 소개한다. 공간 자체도 좋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이곳에서 낙서를 주제로 처음으로 오일파스텔을 접했다. 순수 미술은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걱정과 잡생각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그 순간에만 몰입하게 된다. 또 좋은 점은 결과물을 보며 소소한 성취감도 얻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1회로 한 달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끝나고 나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서 색연필을 샀다. 집에서 틈틈이 그리기도 하고 가끔 밖에도 들고 나간다. 그림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인터넷에서 '컬러링', 'DIY 명화' 등으로 검색하면 손쉽게 완성할 수 있는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순수 미술보다 실용적인 것이 좋다면 뜨개질, 자수, 미싱으로 옷이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특히 뜨개질 재료는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사람을 꽤 봤다.

수집하기

결혼 전부터 성냥을 수집했다. 원래는 여행 기념품으로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 왔는데 무겁기도 하고 어떤 돌멩이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바꾼 것이 성냥이다. 저렴한 가격에 가볍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특색이 있어서 수집하기 좋았다. 모로코, 스페인, 필리핀, 태국, 일본... 여행지에서 사거나 식당에서 받아오기도 하고 내 취미를 아는 친구들에게서 선물 받은 것도 있다. 아이 낳고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소품 가게에서 우연히 예쁜 성냥을 발견했다. 2천 원짜리 성냥을 계산하는 데 어찌나 설레던지.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얼굴이 따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소녀 감성이 솟아올랐다. 아이 외에 집착할 것이 생긴다는 것, 수집은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작은 사치하기

내 소비 습관은 푼돈은 아끼고 큰돈은 잘 쓰는 것이다. 결혼 전에도 몇백 원 아끼려고 집 앞에 마트를 두고 길 건너 시장에 가면서 1년에 한두 번은 비행기를 꼭 탔다. 육아로 퇴사한 뒤에는 집에 커피를 잔뜩 놔두고 혼자 카페에 가는 게 어색하고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사치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작은 사치의 기준은 '이 정도 돈 쓴다고 안 망한다, 이거 아낀다고 큰 부자 되는 거 아니다'이다. 출산 후 처음 혼자 카페에 갔을 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떴다.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카페로 나오면 집중도 더 잘 됐다. 또 다른 작은 사치로는 꽃을 사는 것이다. 종류나 관리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사두면 짧게는 일주일 길면 2주는 두고 볼 수 있다. 단 한 송이 꽃이라도 볼 때마다 기분이 싱그러워진다.

점심밥 대충 먹지 않기

아이 치료실 다니느라, 혼자 차려 먹자니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점심을 거르거나 대충 먹은 적이 많다. 점심으로 일주일에 3번 이상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 그러다 체력도 자존감도 떨어지는 것 같아 혼자 먹어도 든든하게, 예쁘게 차려 먹기로 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SNS를 활용하고 있는데 점심 사진만 올리는 용도로 새로 만든 이 계정은 댓글이나 팔로워 수 등 다른 신경은 쓰지 않으려고 굳이 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업로드를 건너뛰는 날도 있지만 덕분에 아직 흐지부지되지 않고 잘 차려 먹고 있다. 한 가지 더, 점심에 밖에서 혼자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맥주나 하이볼을 꼭 주문한다. 밤에 육퇴하고 남편과 마시는 것과 다르게 일탈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명상하기

명상은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가 공통으로 추천한 방법이다.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명상은 아니다. 호흡 명상, 걷기 명상, 잠자리 명상... 종류가 많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바쁘게 돌아가던 생각이 잠시 멈추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순간에 집중해 맛과 향을 온전하게 느끼면서 먹는 것도 명상이다. 주의를 집중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어 마음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길러주는 것. 명상을 많이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통찰력이 더욱 예리해진다.

우리에겐 낭만이 필요해

이런 거 할 시간에 아이 스트레칭이나 한 번 더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책이라도 읽어주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마음 한편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만 하는 것은 기계나 다름없는 삶일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낭만이 필요한 것 같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사전에서는 '낭만'을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일탈, 새로운 경험, 몰입... 낭만적인 시간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을 건강하게 하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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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회로 나아가기 : 가족에서 사회로

글 : 윤승아

나 그리고 가족

영아기일때는 사실 이 상황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고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내아이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가슴찢어지는 고통, 뭘해야할 지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불안, 당황, 좌절감, 뭐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쏟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능력과 지식도 생기고 가족들도 받아들여 이해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재활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목표로 달리며 이제 좀 살아갈 힘이 생기면, 아이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지낼 수 있는 활동지원, 교육기관의 이용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아이는 같이 사회로 나가는 첫 연습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불안함이 커서 선듯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

나의 불안함은 언제 할 지 모르는 경련. . .

아이는 스스로 체온 조절을 할 수 없어 외부에서 옷을 입히거나 벗기면서 냉난방 기구로 외부온도를 조절해 주어야 했고 감염에 취약해서 아프지 않게 해야 했으며 어설픈 움직임으로 다치지 않게 해야하고 무엇보다 언제 할지 모르는 경련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간질중첩증(스스로 잘 못멈추는 증상)으로 응급약을 항문으로 투약해야 했기에 다른사람이 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쩔수 없이 아이를 안전하게 케어한다는 명분으로 아이 스스스로 조절해보고 시도해볼 기회를 너문 않주고 의존적으로 키우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기회가 왔을때 내가 챙겨왔던 이 모든것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기엔,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났고 쉽게 믿음이 안생겼습니다.

아이를 4시간이상 맡길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이 있나요?

아이가 어릴 때 들었던 부모교육이 있었습니다. 6개의 항목을 주제로 부모교육이 구성되었고 그중 사회성에 관한 강의가 있었는데, 경력이 많은 특수교사였던 강사분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몇 명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모님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못 적었습니다. 강사는 앞으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4시간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을 60명을 확보하라”고 했습니다. 한 명도 없는데 60명이라니요. . . . 그렇게 많이? 사실 이유는 지금 명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질문만 기억 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나 이외에는 돌볼 수 없게 계속 사는 건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지요. 나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집안에 일이 생길 수 도 있고 나는 늙습니다. 영원히 내가 다 살펴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금방 제게 닥쳤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돌봄이 필요했던 상황이 생기다

저는 일단 구하는 것도 미루었습니다. 가족의 지원이 있어 당장 시급하지 않기도 했지만 낮선 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루었던 일이 갑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도와주시던 친정아버지가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셔야 했했습니다.전적으로 도와주시던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어려워 지자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구하고 나서도 많은 부분을 한동안은 제가 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먹이던 것을 마저 먹여주시고 그렇게 조금씩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조금씩 믿음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저도 암진단을 받아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강제로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제가 걱정하던 위험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어요.

기관을 이용하기 시작하다

이런 연습의 과정을 거쳐 아이를 기관에 보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발달하기 위해선 다양한 자극이 필요한데 다양한 사람으로부터도 받을 수 있고 사회성이 발달 할 수 있을것 같아서죠. 사실 아이가 좌절하지 않고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그럼 성장 할 수 가 없잖아요. 넘어져봐야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상처받아야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 엄청난 고민끝에 여러형태의 기관중 바로 집앞에 병설초 유치원 특수반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한번 맡겨보니 제가 걱정한거보다는 별일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용기가 조금 났죠.
처음 아이를 입학시키고는, 경련을 하는 아이라 불안함이 컸던 이유도 있지만,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 5분 거리에서 1달 이상을 배회했습니다. 잠깐씩 살짝 보러 가기도 했어요. 다행히 선생님 이 이해해 주셨어요. 아마도 많은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저와 같았나봐요. 선생님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해주시고 다양한 시도하고 있는 방법들을 공유해주시고 하루 이틀 그렇게 별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자 조금씩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반나절 지내고 점심을 먹고 하원하던 아이가 어느 날 오후 4시까지 체험학습을 간다고 해서 또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걱정 말고 보내라 잘 할 수 있을 거다"하셔서 보내기로 하고는 따라가겠다고 했더니 또 괜찮다고 설득하셔서 아이만 보내기로 했습니다. 체험학습 당일 아침에 큰 배낭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갔다가 “어머니 무슨 1박2일로 여행가요? 다 빼셔도 돼요. 걱정 마세요. 잘 챙길게요"하시며 싸가지고 갔던 비상약이며 추울 때를 대비한 여벌 옷, 로션, 수건, 먹을 것 등등 다 빼시고 거즈 손수건만 하나만 본인 가방에 챙기시며 가방 채로 돌려주셨지요. 조금은 무안하고 창피했는데, 온 마음으로 잘 챙길테니 믿고 보내 달라셨던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관계와 삶의 폭을 넓혀가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을 하면서 아이는 나와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전보다 쉽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게 되었고 또 아이가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요. 작은 이사짐 수준으로 들고다니던 짐들로 하나씩 줄이게 되었어요.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한 명 한 명 이름을 적어보면 아직도 60명은 안됩니다. 아무리 짜내어 꼽아봐도 30명이나 될까요? 하지만 전보다 훨씬 이름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 그 누구든 4시간 정도는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60명이 되면, 이 목표는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가 독립적인 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과 맞닿아 이 사회에서 내가 없이 아이가 살아나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하고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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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편견에 대해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편견의 시선을 많이 느낀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 빼고는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은 남들보다 작은 일에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가족인데. 처음엔 그런 시선에 위축되었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이 살고있는 자치구의 도서관에서 편견을 주제로 시민 작가를 공모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전시에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편견)'을 주제로 사진과 글을 출품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K-장녀라 그런가, 나는 어릴 때부터 누가 내 걱정을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웬만한 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고 가족들에게는 아예 얘길 하지 않거나 상황이 종료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 알렸다. 성인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이유로 지인에게 아이의 장애를 밝히기가 ㅋ꺼려졌다. 걱정의 눈빛을 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주 만나거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숨길 수가 없어서 일찌감치 얘기를 했지만 가끔 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기도 했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절반 이상이 '대단하다'이다. "어떻게 그렇게 밝아?", "긍정적이네!",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고?" 장애인 가족은 으레 어둡고, 부정적이고, 간병과 육아와 살림과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삶이 찾아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사는 것뿐. 내가 대단해서, 타고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악의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내 삶이 어둠인 것 같다고 굳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믿고 살고 있던 나로서는 순간 힘이 빠진다. 내 삶은 내가 대단해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남들은 출산하면 축복 속에서 육아를 하는데 우리는 축하는 커녕 측은함과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꾸역꾸역 아이를 키웠다. 양가 식구들도 우리 가족을 안쓰럽게만 바라보았다. 물론 출산 후 약 2년 동안은 좋은 일이 있어도 오롯이 행복감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러나 출산한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힘든 순간도 있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며,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출산 전보다 새로운 것에 더 많이 도전하고 공부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집 나가면 쯧쯧

아들 둘과 집에만 있는 것이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릴 땐 쌍둥이 유모차에, 요즘은 장애인 유모차와 킥보드에 하나씩 태워서. 가까이는 동네 산책부터 멀리는 놀이공원까지 가기도 한다. 아이들 핑계로 나왔지만 나도 콧바람을 쐴 수 있어 외출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불편한가 보다. 흘끔흘끔 혹은 대놓고 빤히 보는 사람들. "쯧쯧"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아이고 엄마 혼자 애 둘 데리고 고생하네, 쯧쯧...",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됐니. 엄마 고생시키지 말아라."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우린 신나는 나들이 중인데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면 흥이 깨진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이고~ 너 왜 그렇게 사니, 쯧쯧' 하면 기분이 어떨까?
명품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의 유래가 된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11세기 영국에서 한 영주의 아내였던 고디바는 과도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백성을 구하고자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거닐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의 용기와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문과 창을 닫고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장애인을 길에서 스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궁금하거나 안쓰러워도 불편한 눈빛과 말은 거둬줬으면 좋겠다. 걱정되면 도와주기만 해도 된다. 길을 비켜주거나 문을 열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 가족, 좋~을 때다!

장애인 가족을 바라보는 불편하거나 측은한 시선을 주제로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은 산책길 한가운데서 포즈를 취하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한 어르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상되는 말이 흘러나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제일 좋~을 때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편견 없이 행복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힘이 난다.
말에는 힘이 실려있다. 누가 안쓰럽다고 하면 정말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 행복감은 배가 된다. 퇴사해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아이의 장애를 얼굴에 점 하나 있다는 것 정도로 반응해 준 회사 후배(절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하와 형을 번갈아 보며 쌍둥이냐며, 둘 다 너무 잘생겼다고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호들갑 떨며 말해준 식당 종업원.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큰일 난 게 아니다. 그런 시선들이 장애인 가족 스스로에게 예기치 못하고 맞닥드리게 된 자신의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위 글과 사진은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주관으로 지난 10월 25일 경춘선숲길갤러리에서 개막한 '뜻밖의 OOO 전시회'에 참여한 작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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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피질시각장애 (CVI) 이해와 일상지원 – 강의영상

보는 것에 어려움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원인에 따라 개입 방법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피질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 때문에 잘 못보는 것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으시죠? 이번 강의를 통해 이러한 피질시각장애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알아보고 가정과 어린이집 등의 일상의 환경에서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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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 해방일지 – 심리상담부터 정신과 약 복용까지

글 : 김지영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우리 가족은, 나는 어떻게 살지? 질문에 답을 내리거나 뭔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전쟁 같은 일상이 펼쳐졌다. 몸으로는 지금 할 일을 하면서 머리로는 그다음에 해야 할 일만을 생각했기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이런 날이 어쩌다 하루 이틀 있는 게 아니라 매일 계속되는데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심리상담과 정신과 약물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내 정신적 여정을 풀어보려 한다.

정신 줄이 끊어지니 화살이 가족에게 날아갔다

'쌍둥이', ‘이른둥이’, ‘초저체중아’라는 타이틀로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제하가 갑작스러운 괴사성장염으로 첫 수술을 받을 때 남편과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어떻게든 잘 키워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다음날, 주치의는 아이가 수술받을 때 혈압이 떨어져 뇌 손상을 입은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의사가 보여준 화면 속 제하의 뇌는 녹아내린 듯 대부분 검게 보였다. 말을 못할 수도,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잘 키워보자는 다짐은커녕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겼다.
제하가 퇴원해 집으로 온 뒤부터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두 아이가 동시에 울 때였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둘을 달랠 수 있었지만,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는 매 순간 갈등이 일었다. 누구를 먼저 안아줘야 하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질문들처럼,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이 아픈 문제였다. 그리고 제하에게는 미안하지만 늘 첫째를 먼저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하의 울음소리는 애써 안 들리는 척해봤지만 온몸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첫째를 재빨리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제하는 울다 지쳐 훌쩍이고 있거나 혼자 잠들어 있었다. 제하가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는 탓에 숨소리를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늘 숨이 찼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거의 5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봤고 남편이 퇴근하면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말 그대로 손발을 총동원해서 두 아이를 달래던 시절
웬만하면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씩씩하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는데, 양육 스트레스 검사나 각종 심리검사 결과는 ‘고위험군’이었다. 너무 바빠서 내 감정을 제대로 느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힘들어도 견딜만하다고 착각하는 동안 내 스트레스는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남편을 비난하고,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부터는 아이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심리상담으로 시작해 보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복지관에서 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무료에다 제하가 치료받는 동안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장점이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서약서를 내밀었다. 상담 기간에는 자살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는 아닌데, 여기서 상담받는 나는 그렇게 심각한 상태구나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의 기질, 성격유형 검사를 먼저 받았다. 일단 나와 배우자가 어떤 기질이고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 공통점도 있지만 애초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사람이구나. 다정한 우리 남편이 왜 아이의 치료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이 체중 늘리는 것을 나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지, 이런 나를 부정적이라 여기는 남편을 보며 나만 큰일 났고 나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아 외로울 정도였는데 그동안의 갈등이 헛웃음이 날 정도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기질, 성격 유형 검사지
상담사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상담이 도움은커녕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데 나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반대로 상담을 받는 사람도 마음을 충분히 열어야 한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는 식으로 상담사를 대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면 상담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장애인 부모 상담이니까 아이 때문에 느끼는 감정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부모, 배우자 등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마음속 응어리가 상당히 풀렸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진득이 듣고 공감하는 한편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해 주었다. 귀가하면 남편과 상담 내용을 가지고 대화도 하고, 선생님의 조언대로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밖에 나가 외식을 하기도 했다. 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30회기로 진행되었고 부족하면 추가로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마음에 안정을 찾은 상태로 딱 30회 되던 날 상담을 종료했다.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은 약의 도움을 받아보자

그렇게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상담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욱’하고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마침 미운 네 살에 접어든, 말은 하지만 말을 듣지는 않는 첫째에게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이건 고작 네 살짜리에게 가혹한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말을 하는 와중에도 후회가 일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상담을 받는다고 달라질까?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화는 상담만으로 다스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병원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생각보다 주변에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닌지, 잠에 취하거나 축축 처지는 건 아닌지, 살이 찌는 건 아닌지 등 부작용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약을 먹어본 경력자(?)들은 요즘은 약이 좋아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으로 찾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의사를 만나기 전에 먼저 우울증과 불안의 정도를 체크하는 자가 보고식 설문지를 작성하고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다. 손목과 발목에 센서를 붙이고 5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이걸로 정말 스트레스 검사가 되는 건지 처음에는 의심이 되었다. 이 검사의 원래 명칭은 '자율신경계 검사(HRV, Heart rate variability)’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파악해 스트레스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현재 몸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어서 진단의 보조 자료가 된다고 한다.
설문 결과도, HRV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충분히 약을 먹을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 복용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마음이 그릇이라고 치면, 그릇에 가득 찬 물은 스트레스다. 햇볕을 쫴서 물을 증발시키거나 그릇을 기울여서 물을 좀 흘려보내야 하는데 나의 문제는 물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제하의 장애) 물을 쏟아내기도 어려워서(스트레스 해소) 그릇 자체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약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의존도가 적은 약을 처방해 달라고 부탁해 최소 용량으로 복용을 시작했다. 이후 2주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하면서 약효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경과를 살폈다.
비상용으로 남겨둔 약
약을 먹으면서 확실히 화가 덜 났다. 거의 안 났다. 아이가 미운 행동을 해도 ‘아이니까’ 하고, 화내기 전에 객관적으로 상황 판단을 먼저 할 수 있었다.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생각도, 모든 게 나때문이라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할 만큼 하고 있다는 만족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약을 먹고 의사와 상의 후 2주 치 비상약만 남긴 채 복용을 중단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좀 더 일찍 먹었다면 아이와 남편에게 험한 꼴 덜 보였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네가 상담을 왜 받아?’, ‘정신과는 정신병 걸린 사람이나 가는 곳 아니야?’ 옛날 같으면 이런 시선이 있었겠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요즘은 흔한 일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사춘기에 비뚤어지는 것처럼, 어른이 갱년기 때 감정이 널뛰는 것처럼 감정에는 호르몬도 관여하기 때문에 내가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몸이 아플 때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상담을 받고 필요하다면 약을 먹는 것도 고려해 보자. 조금만 용기 내면 내 그릇이 스트레스로 넘치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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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 영유아를 위한 동화영상 만들기

CVI(뇌성/피질시각장애) 영유아를 위한 그림동화 영상 만들기

CVI 연구회 모임에서 유아특수교사인 박지혜 선생님이 그림동화 영상 만들기 수업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참여하신 어머님들의 작품도 담았습니다. 소리를 아이들에 따라 조절하면서 보여주세요.
그리고 직접 우리 아이에게 맞는 그림동화를 만들어 보여주시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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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같은데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 보는 아이

글 : 윤승아

집안을 잘 돌아다니지만 가슴높이의 책상을 보지 못하고 정면으로 들이받고, 엄마가 평소 잘 앉지 않는 거실 쇼파에 있으면 엄마를 찾아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도 엄마를 찾지 못합니다. 계단의 깊이와 높이를 구별하지 못하며, 감각으로 올라가도 계단의 시작부분과 끝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발을 헛딛으며,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목소리와 느낌으로 구별합니다.
바로 뇌손상으로 인해 시지각의 어려움을 가진 “피질 시각장애(Cortical Visual Impairment), 최근에는 뇌성시각장애(Cerebral Visual Impairment)”라고 불리는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시지각의 어려움은 대부분 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하며 피질시각장애에 대해 알고 있어도 단편적으로 알고 있고 상세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가 드물며 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적극적인 진단이나 중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장애의 시지각 문제와 같이 지적 영역으로 취급되고 시각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문제가 없어도 못 보던 아이

지민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 장난감을 쳐다보거나 손을 뻗어 잡지 않고 눈맞춤도 안되고 깜짝반사도 전혀 되지 않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알 수 없다고 하고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이미 뇌손상으로 인해 뇌성마비, 지적장애, 영아연축등 엄청난 일을 격고 있는 중이라 불명확한 상태로 만1세가 되었습니다.
만1세무렵 "미숙아 망막증 Follow-up진료에서 망막의 시신경은 잘 자랐지만 시각을 사용하는 반응이 거의 없다. 깜짝반사가 안나오며 이시기는 고개를 많이 들고 있어야 하는데 시각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시각적 예후가 매우 안좋을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이후 시유발검사, 다른 소아 안과를 찾아다녀 봤지만 “안구의 문제가 아니다 뇌의 문제이므로 뇌가 좋아지면 좋좋아질거다.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뇌가 좋아져야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재활치료 열심히 받아라. 자라면서 좋아질 수도 있고 안좋아질 수도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저는 만나는 전문가마다 아이 상황을 알렸고 그 중 한 치료사가 시각문제에 관심이 있는 작업치료사를 소개해주셨고 그분이 Dr. Roman-Lanzzy의 책을 공부하며 여러 시각적 중재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만 3세를 며칠 앞두고 아이가 햇빛에 비치는 환타병을 잡으러 가는 것을 보는 순간 피질시각장애란 것이 어떤것인지 몰랐던 저는 “아 이제 보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시각적 작극을 주시던 치료사도 거의 회복되었다는 의견에 다른 재활과 뇌전증 치료에 몰두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환타병을 보고 잡으러 가던 날
하지만 아이는 보는 아이다 싶으면 확연하게 보이는 큰 사물도 보지 못하고 안보는건가 싶으면 작은거도 손으로 집었습니다. 굉장히 여유있는 폭의 복도를 마치 비좁은 길을 가는것처럼 지나가지 못하며 쩔쩔매기도 하고 블럭이나 장난감을 선반위에 아슬아슬하게 정리해 놓기도 했습니다. 계단을 혼자 못올라갈 이유가 없는 신체상태가 되었어도 계단이나 장애물을 잘 인식하지 못했고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보행시 흔들림이 많았고 이는 야외에선 더 심했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무릎을 구부려 안정성을 얻는 방식으로 걸었습니다.

진단과 조기개입이 안되어 허비한 시간. 10년!

초등학교 2학년 최진희 박사님의 피질시각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CVI아동의 행동적 시기능적 특징을 듣는데 그냥 딱, 모든 것이 지민이였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모두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상황을 모르고 했던 거의 학대에 가까웠던 시행착오가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갔고 가슴이 미어져, 강의를 듣는 내내 울음을 삼키며 들어야 했습니다.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평가 받고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들고 쫓아가 여쭤보며 아이가 좀 더 잘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이의 CVI특성에 맞는 중재를 시작하자 아이는 눈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하지 못하던 것을 하게 되고 운동이나 인지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또한 저는 그동안 아이의 특성을 몰라 아이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것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인해 뇌전증도 좀더 조절되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아이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지민이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가 있고 그로인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피질피질시각장애를 고려한 시각적중재활동이 지민이의 재활 프로그램에서 최우선과제가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부재 - CVI 시각 전문 특수교사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선 전문가와 현 치료사들의 인식 및 교육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민이의 시각적인 어려움(피질시각장애)을 이해시키기 어려웠고 시각적중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함께 해주시려했던 전문가분들도 기존 다른아이들의 치료와 본인 업무시간 등으로 공부하고 적용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자료도 아직 번역되지 않은 외국 자료들 뿐이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로소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적절한 개입과 중재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학령기가 되어 특수교육지원대상자가 되었지만 시각적 어려움은 시각장애로 등록이 되었거나 특수교육법상 시각장애로 진단배치가 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담당 특수반 교사와 같이 공부하며 개별화계획 수립에 포함시켜 시도들을 해보는 방법 밖에 없었고. 업무가 과중함에도 여러 시도를 해주셨던 특수교사 선생님과 시설물 설치와 지원 인력을 허락해주셨던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CVI를 알고 처음 학교 사물함 환경 중재를 한 것

보지 못하지만 시각장애로 등록할 수 없는 현실

시각장애로의 등록은 우리아이들의 시각장애를 지적영역으로 평가하고 이중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거부당해야 했습니다. 특수교육법상 시각장애로 배치되기 위해서는 시력이나 시야의 검사가 해당되지 않거나 검사가 불가능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단할 전문가가 없고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되어 부모가 증명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시각 특수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시기능과 일상생활 및 학습에서 개선이 될 수 있음에도 전문가와 정부기관의 무지로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과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모르는 것, 외면하는 것

장애아를 키우며 받은 불평등과 불합리는 인식의 부재가 컸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대해야할지 당황하고 불편해합니다. 저역시 지민이를 키우기 전엔 그랬구요.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같이 생활하며 경험하면 훨씬 더 다른 태도(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가 됩니다. 때문에 장애인식교육을 하고 통합교육을 하며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알고도 외면한다면 우리아이들의 인권과 교육권에 대한 부당한 불평등이며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개선되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보행연습 중인 최근 지민이

보는 것 같은데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 보는 아이 Read More »

뇌성마비 아동에게 생길 수 있는 근골격계 문제

글 : 김지영

뇌성마비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 엄마가 가장 후회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재활치료를 좀 더 열심히 받지 않았던 것? 사랑을 더 많이 주지 못했던 것? 뇌병변 장애 자녀가 이제 20대가 된 선배 엄마에게 동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의외로 아이의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말했다. 가장 후회될 정도라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아닌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의 운동 발달만 생각하다 골격이 틀어진 뒤에서야 뒤늦게 자세 유지에 신경 쓰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에 대한 의료적 지원이 부족한 것 같아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와 평소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비책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 아이의 뼈에 무슨 일이?

뇌 손상이 있는 아이들은 좌우 근육과 뼈를 균형 있게 사용하지 못한다. 동시에 아이가 사용하지 않는 뼈와 근육은 퇴화하고 굳는다. 뼈는 서고 걷고 뛰는 등의 활동을 하는 동안 체중에 저항하면서 발달하는데 뇌성마비 아동은 이러한 활동이 어렵다. 자세가 틀어지고 몸이 뻣뻣해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걷는 데 지장을 주고 통증, 합병증 등 추가로 따라오는 여러 가지 문제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때문에 뇌성마비 아이들은 재활 치료뿐 아니라 근골격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적극적으로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

(1) 고관절 탈구

고관절 탈구는 쉽게 말하면 허벅지 뼈가 골반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발생 시기는 천차만별인데 빠르면 3세 이전에도 겪을 수 있다. 경직이 심할수록, 누워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거나 걷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고관절 탈구가 일어나기 쉽다. 딱 우리 아이와 같은 상황이다. 제하는 경직성 뇌성마비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고 아직 서지도 못한다. 다리에 경직이 심한 제하는 재활의학과에서 주기적인 엑스레이 촬영으로 고관절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아탈구(부분 탈구)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경우에 따라 허벅지 안쪽 근육에 보톡스를 맞추거나 향경직제을 처방해 근육에 힘이 덜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
제하의 고관절 사진. 왼쪽 고관절이 조금 더 빠져 있다.

(2) 척추측만

제하는 누워도, 앉아도, 서도 고개가 왼쪽으로 꺾인다. 처음에는 허리에 힘이 없어서 한쪽으로 쓰러지는 줄 알고 앉아있을 때만 쿠션을 받쳐주었다. 그런데 등밀이도 못하는 제하가 눕혀두면 늘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회전하는 것이었다. 자세를 잘 살펴봤더니 좌측 골반을 머리 쪽으로 꺾으며 힘을 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체가 시계방향으로 새우처럼 휘면서 고개도 왼쪽으로 꺾이는 모양새였다. 앉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누워있을 때도 바른 자세를 위한 지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하처럼 스스로 몸통을 바르게 유지하기 어려운 뇌성마비 아동은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지 않으면 척추 변형이 누적되면서 척추측만증이 올 수 있다.

(3) 골감소증

재활 치료를 받던 아이의 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이가 통증을 표현하지 못해 다리가 부어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병원에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치료 강도만 탓할 것이 아닌 것이, 뇌성마비 아이들은 골밀도가 비교적 낮다. 다리뼈에 체중 부하가 되지 않으면 골밀도도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깥 활동량도 적어서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의 합성이 부족하며, 뇌전증으로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도 골밀도 소실에 영향을 준다. 골감소증이 심해지면 골다공증으로 진행되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지게 된다.

집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

첫 번째는 아이가 서는 것이다.
첫 번째는 아이가 서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뼈는 서고 걷고 뛰면서 뼈에 실리는 체중에 저항하며 발달한다. 스스로 서 있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립기를 사용하면 하루 종일 누워있는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서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다. 제하는 한 번에 삼십 분, 하루 두 번 이상 기립기에 세워두는데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으면 좀 더 오래, 더 자주 해줘도 좋다. 집에 기립기가 없다면 이용하고 있는 재활치료실에 요청할 수 있다. (간혹 기립기가 없는 치료실도 있다) 기립기 훈련은 다리의 골밀도를 높이고 고관절 안정성에도 도움이 된다.
기립기 훈련 중인 제하. 바른 자세 유지를 위해 발목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아이의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는 것이다.
누워있을 때도, 유모차나 카시트, 피더시트에 앉힐 때도 아이의 골반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지, 머리나 허리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는지 체크하고 쿠션 등을 받쳐서 바르게 해준다. 제하는 하지 경직이 심해서 다리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시키며 힘을 주거나 무릎을 안쪽으로 모으면서 동시에 양발은 바깥쪽으로 뻗으며 힘을 주는 등 고관절이 빠지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취한다. 고관절이 안정적으로 관절 안에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리를 바깥으로 벌린 자세가 좋은데, 자세를 잡아놔도 아이가 힘을 주게 되면 흐트러지기 때문에 쿠션이나 자세 보조도구를 활용한다.
(좌) 아무런 지지 없이 누워있을 때 나쁜 자세 (우) 자세 보조도구로 보조했을 때 바른 자세
그런데 집에 있는 수건이나 쿠션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어떤 것을 쓰면 좋을지 병원에 문의해도 아이에게 딱 맞는 자세 보조 용구를 추천받기가 어려웠다. 보조기기 센터는 생각보다 성인 중심인 데다 소아에 대한 전문성이 비교적 떨어지고 갖추고 있는 소아 용품도 부족했다. 결국 직접 제하에게 맞는 자세 보조 용구를 찾아본 뒤 보조기기 센터에 있는 것은 대여하고, 없는 것은 장애인 보조기기 렌탈 바우처를 이용해 구매했다. 요즘 제하가 쓰고있는 보조기기는 헤드마스터칼라, 삼각형외전베개, 자세변환용구 LBP-02, 자세지지시스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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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골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골밀도를 높이기 위해 칼슘을 잘 먹이고 칼슘의 흡수를 돕기 위해 비타민 D도 챙겨줘야 한다. 영양제보다도 음식으로 먹는 것이 좋고 하루 2시간 이상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근골격 문제 예방을 위한 규칙적인 스트레칭, 보조기 착용 등이 있으나 그런 것들은 병원이나 치료실에서 비교적 잘 알려주기 때문에 생략한다.
새로운 재활치료실에 가면 선생님이 아이의 치료 목표와 방향을 묻는다. 처음엔 목을 가누고 서고, 걷는 것만 생각하면서 욕심을 부렸는데 지금 제하의 목표는 최소한 고관절이 빠지지 않고 자세가 틀어지지 않는 것이다. 재활치료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이 신체의 기본 틀을 잡아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뇌성마비 아동에게 생길 수 있는 근골격계 문제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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