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 같은데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 보는 아이

글 : 윤승아

집안을 잘 돌아다니지만 가슴높이의 책상을 보지 못하고 정면으로 들이받고, 엄마가 평소 잘 앉지 않는 거실 쇼파에 있으면 엄마를 찾아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도 엄마를 찾지 못합니다. 계단의 깊이와 높이를 구별하지 못하며, 감각으로 올라가도 계단의 시작부분과 끝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발을 헛딛으며,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목소리와 느낌으로 구별합니다.
바로 뇌손상으로 인해 시지각의 어려움을 가진 “피질 시각장애(Cortical Visual Impairment), 최근에는 뇌성시각장애(Cerebral Visual Impairment)”라고 불리는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시지각의 어려움은 대부분 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하며 피질시각장애에 대해 알고 있어도 단편적으로 알고 있고 상세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가 드물며 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적극적인 진단이나 중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장애의 시지각 문제와 같이 지적 영역으로 취급되고 시각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문제가 없어도 못 보던 아이

지민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 장난감을 쳐다보거나 손을 뻗어 잡지 않고 눈맞춤도 안되고 깜짝반사도 전혀 되지 않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알 수 없다고 하고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이미 뇌손상으로 인해 뇌성마비, 지적장애, 영아연축등 엄청난 일을 격고 있는 중이라 불명확한 상태로 만1세가 되었습니다.
만1세무렵 "미숙아 망막증 Follow-up진료에서 망막의 시신경은 잘 자랐지만 시각을 사용하는 반응이 거의 없다. 깜짝반사가 안나오며 이시기는 고개를 많이 들고 있어야 하는데 시각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시각적 예후가 매우 안좋을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이후 시유발검사, 다른 소아 안과를 찾아다녀 봤지만 “안구의 문제가 아니다 뇌의 문제이므로 뇌가 좋아지면 좋좋아질거다.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뇌가 좋아져야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재활치료 열심히 받아라. 자라면서 좋아질 수도 있고 안좋아질 수도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저는 만나는 전문가마다 아이 상황을 알렸고 그 중 한 치료사가 시각문제에 관심이 있는 작업치료사를 소개해주셨고 그분이 Dr. Roman-Lanzzy의 책을 공부하며 여러 시각적 중재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만 3세를 며칠 앞두고 아이가 햇빛에 비치는 환타병을 잡으러 가는 것을 보는 순간 피질시각장애란 것이 어떤것인지 몰랐던 저는 “아 이제 보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시각적 작극을 주시던 치료사도 거의 회복되었다는 의견에 다른 재활과 뇌전증 치료에 몰두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환타병을 보고 잡으러 가던 날
하지만 아이는 보는 아이다 싶으면 확연하게 보이는 큰 사물도 보지 못하고 안보는건가 싶으면 작은거도 손으로 집었습니다. 굉장히 여유있는 폭의 복도를 마치 비좁은 길을 가는것처럼 지나가지 못하며 쩔쩔매기도 하고 블럭이나 장난감을 선반위에 아슬아슬하게 정리해 놓기도 했습니다. 계단을 혼자 못올라갈 이유가 없는 신체상태가 되었어도 계단이나 장애물을 잘 인식하지 못했고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보행시 흔들림이 많았고 이는 야외에선 더 심했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무릎을 구부려 안정성을 얻는 방식으로 걸었습니다.

진단과 조기개입이 안되어 허비한 시간. 10년!

초등학교 2학년 최진희 박사님의 피질시각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CVI아동의 행동적 시기능적 특징을 듣는데 그냥 딱, 모든 것이 지민이였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모두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상황을 모르고 했던 거의 학대에 가까웠던 시행착오가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갔고 가슴이 미어져, 강의를 듣는 내내 울음을 삼키며 들어야 했습니다.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평가 받고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들고 쫓아가 여쭤보며 아이가 좀 더 잘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이의 CVI특성에 맞는 중재를 시작하자 아이는 눈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하지 못하던 것을 하게 되고 운동이나 인지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또한 저는 그동안 아이의 특성을 몰라 아이를 힘들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것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인해 뇌전증도 좀더 조절되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아이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지민이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가 있고 그로인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피질피질시각장애를 고려한 시각적중재활동이 지민이의 재활 프로그램에서 최우선과제가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부재 - CVI 시각 전문 특수교사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선 전문가와 현 치료사들의 인식 및 교육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민이의 시각적인 어려움(피질시각장애)을 이해시키기 어려웠고 시각적중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함께 해주시려했던 전문가분들도 기존 다른아이들의 치료와 본인 업무시간 등으로 공부하고 적용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자료도 아직 번역되지 않은 외국 자료들 뿐이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로소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적절한 개입과 중재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학령기가 되어 특수교육지원대상자가 되었지만 시각적 어려움은 시각장애로 등록이 되었거나 특수교육법상 시각장애로 진단배치가 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담당 특수반 교사와 같이 공부하며 개별화계획 수립에 포함시켜 시도들을 해보는 방법 밖에 없었고. 업무가 과중함에도 여러 시도를 해주셨던 특수교사 선생님과 시설물 설치와 지원 인력을 허락해주셨던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CVI를 알고 처음 학교 사물함 환경 중재를 한 것

보지 못하지만 시각장애로 등록할 수 없는 현실

시각장애로의 등록은 우리아이들의 시각장애를 지적영역으로 평가하고 이중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거부당해야 했습니다. 특수교육법상 시각장애로 배치되기 위해서는 시력이나 시야의 검사가 해당되지 않거나 검사가 불가능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단할 전문가가 없고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되어 부모가 증명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시각 특수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시기능과 일상생활 및 학습에서 개선이 될 수 있음에도 전문가와 정부기관의 무지로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과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모르는 것, 외면하는 것

장애아를 키우며 받은 불평등과 불합리는 인식의 부재가 컸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대해야할지 당황하고 불편해합니다. 저역시 지민이를 키우기 전엔 그랬구요.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같이 생활하며 경험하면 훨씬 더 다른 태도(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가 됩니다. 때문에 장애인식교육을 하고 통합교육을 하며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알고도 외면한다면 우리아이들의 인권과 교육권에 대한 부당한 불평등이며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개선되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보행연습 중인 최근 지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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