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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I2025-02-03T15:40:07+09:00

글 : 김지영

가족 나들이는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는 종종 ‘제하는 나가면 손해’라는 말을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밥도 제때 못 먹고, 낮잠도 못 자고, 그렇다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즐겁게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아이가 안쓰럽고 미안해서 우리는 2인 1조로 움직인다. 다 같이 나가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어른 한 명과 제하는 집에 남는다. 또는 넷이 같이 나갔다가 유모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이 나오거나 제하 밥 먹일 시간이 됐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면 아빠가 첫째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제하와 수유실이나 카페에 앉아서 이유식을 먹이거나 하는 식이다.

쉬는 것도 안 쉬는 것도 아닌 여행

잠깐의 외출도 이럴진대 여행은 더 어렵다. 일단 짐이 어마어마하다. 피딩펌프, 석션기 등의 묵직한 의료기기와 앰부백, 피딩 용품, 드레싱 용품, 각종 약과 영양제… 입원하는 것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수준으로 짐을 싸야 한다. 트렁크에 짐과 장애인 유모차까지 실으면 차창 밖으로 뒤따라오는 차를 볼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아무리 꼼꼼하게 체크해도 제하 짐은 쌀 때마다 찝찝하다. 미리 만들어둔 리스트대로 준비해도 늘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석션기를 깜빡하는 바람에 여행지에 거의 다 도착해서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렸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이야기다.(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1년에 두 번 이상 가족여행을 감행했다. 대신 도착하기만 하면 큰 이동 없이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리조트를 즐겨 찾았다. 첫째가 아빠와 워터파크에서 노는 동안 제하는 나와 객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떠나온 여행지에서도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니, 여기 와서도 방에 갇혀있구나. 그런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리조트 안에 있는 카페로 유모차를 끌고 가기도 했다. 좁고 답답한 객실이나 수유실보다야 카페가 훨씬 나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첫째도 여행 초반에는 함께하지 못하는 엄마 또는 아빠를 찾았는데 점점 2인 1조가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제하는 장거리 이동 후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지곤 했다. 차에서 잠들지도 못하고 4시간이든 6시간이든 뜬눈으로 버텼다. 눈이 스르르 감기다가도 차가 조금만 덜컹거리면 놀라서 눈을 번쩍 뜨는 것이다. 평소에 잘 있던 아이가 여행을 가거나 명절에 고향에만 내려가면 토하고, 배변도 잘 못하더니 결국 집에 돌아와서 경련을 한 적도 있었다.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을 망설이게 되었다.

도토리하우스는 어떤 곳?

일상적인 외출이나 여행부터 크게는 이사, 수술까지. 중증장애인의 가족은 많은 것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일반적인 돌봄이 아닌 ‘의료적 돌봄’이 필요하기에 친할머니에게조차 아이를 맡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2023년 10월 중증장애아동을 돌보는 보호자와 가족들이 미뤄둔 일을 하거나 쉴 수 있도록 돕는 곳이 생겼다. 국내 최초 소아청소년 환자 단기 의료돌봄센터 ‘도토리하우스’다.
도토리하우스에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전문의와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며 아이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집에서와 같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돌봐준다. 의료진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치료사 등의 전문 인력과 자원봉사자가 함께하며 입원 동안 아이에게 놀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 시범 사업 중으로 참여하는 기관은 도토리하우스 외에 칠곡경북대학교 어린이병원 ‘더쉼’이 있다. 해당 병원을 이용한 적 없더라도 사전에 외래를 통해 주치의와 상담 후 이용할 수 있다.
한편 도토리하우스에는 비장애 형제자매를 위한 프로그램인 ‘모여라! 도토리형제’ 도 있다. 베이킹, 공예품 만들기, 공연 관람 등 매월 새로운 주제로 진행되며 참가비용이 없다. 만 9세 이하 아동팀, 만 18세 이하 청소년팀으로 나눠 소수로 운영되어 또래가 서로 친밀감을 형성하기에도 좋다. 도토리하우스에 입원한 경험이 있거나 입원 예정인 아이의 형제, 자매라면 이용할 수 있다.

죄책감 없는 휴식, 쉬어가도 괜찮아

도토리하우스에는 다양한 병명의 아이들이 입원하는데 그중에서도 제하와 같은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용 가족은 주로 여행을 떠나고 출산하러 가거나 이사, 수술 등 미뤄왔던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우리는 24년 3월 첫 입원 후 지난 연말까지 1년 동안 총 네 번 도토리하우스를 이용했다. 세 번은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가장 최근에는 자궁근종 수술 후 몸조리를 위해서였다.
처음 제하 없이 여행할 땐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 아빠를 독차지한다며 기뻐하는 첫째를 보며 흐뭇한 마음과 동시에 제하를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생각도 잠시, 도토리하우스 사회복지사가 제하의 사진과 영상을 카톡으로 공유해줬다. 여러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악기를 연주해 주는 등 제하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다. 한번이 아니라 매일 사진과 함께 오늘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컨디션은 어땠는지 등 소식을 보냈다. 활짝 웃고 있는 제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덕분에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곳들을 여기저기 다녔다. 산악 체험도 하고, 갯벌 체험과 캠핑도 다녀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렇게 제대로 쉴 수 있는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의료기기에 의존해야 하는 중증 환아를 돌보는 부모는 수면과 휴식 시간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2020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중증 소아·청소년 보호자 74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 돌봄자인 부모는 아이를 하루 평균 14.4시간 돌보며 수면 시간은 5.6시간, 개인 시간은 2.4시간 불과했다. 5.6시간으로 조사된 수면 시간조차 아이 체위 변경, 석션 등으로 숙면이 아니라 쪽잠 수준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토리하우스와 같은 단기 의료돌봄센터를 비롯해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 사업(장애아동돌봄), 장애인돌봄가족휴가제, 장애가족 심리지원 서비스 등 돌봄 제공자에 대한 지원을 적극 이용한다면 우리가 조금이나마 더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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