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장애영유아의 발달권을 다시 살펴보기
장애를 지닌 영유아에게는 함께 보장되어야 할 두 가지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입니다. UN장애인권리협약 제26조는 장애인이 최대한의 자립과 참여를 이룰 수 있도록 하빌리테이션(habilitation)과 재활(rehabilitation) 서비스를 조기에, 그것도 가능한 한 이른 시기부터 제공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1]. 발달에 어려움을 지닌 아이에게 물리치료(physical therapy)나 언어치료(speech-language therapy), 때로는 응용행동분석(Applied Behavior Analysis, ABA) 같은 구조화된 프로그램은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유아로서의 권리, 곧 발달권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발달권’은 단지 가르침이나 훈련을 받는 권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먹고 자고 씻고 어린이집에 가고 놀이터에서 노는 일상적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에 참여함으로써 실현되는 권리입니다. 장애가 없었다면 아이가 있었을 바로 그 자리, 즉, 가정의 식탁, 어린이집 교실, 동네 놀이터 등에서 일과에 참여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일상에 참여하며 자랄 권리입니다.
이 두 권리는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일까요? 아이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조기개입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치료를 위해 아이의 하루를 양보하고 있지는 않나요?
낮잠이나 수유 리듬과 무관하게 잡히는 치료 일정, 치료실에 가기 위해 어린이집을 조퇴하거나 결석해야 하는 상황. 필요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중요한 일상의 경험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문제는 치료 자체가 아닙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아이의 생활 리듬과 참여 기회를 계속 양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지원은 아이의 일상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을까요, 아니면 일상을 대신하고 있을까요?
치료가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두 권리를 함께 보장하기 위한 방향은 치료와 일상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다만 치료사가 가정이나 어린이집을 방문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일상기반 지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소만 옮긴 채 별도의 치료 시간을 운영한다면 아이의 하루와 분리된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어린이집이라는 일상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구성할지, 그리고 양육자와 교사가 그 일상 속에서 아이와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를 전문가가 지원하는 것. 치료는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자체에 녹아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상을 치료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일상에 더 잘 참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방법론적 전환에 대한 논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1986년 「장애인교육법(당시 명칭 Education of the Handicapped Act)」 개정으로 Part H(현재의 Part C, 영유아 조기개입 프로그램)가 신설되면서 이 흐름이 본격화되었고2],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s)'이라는 용어 자체가 법 조문에 등장한 것은 1991년 개정(P.L. 102-119)부터였으니, 벌써 35년 전의 일입니다3]. 이후 이 법은 "적절한 최대 범위 내에서, 조기개입 서비스는 자연환경 — 장애가 없는 아동이 참여하는 가정과 지역사회 환경을 포함 — 에서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못박았습니다[3].
로빈 맥윌리엄(R. A. McWilliam)의 '일과중심개입(Routines-Based Intervention)' 모델도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한 접근입니다. 그 핵심 도구인 일과중심면담(Routines-Based Interview, RBI)은 1992년 처음 고안되어, 가정에 도착하고 떠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만날 수 있었던 가족들과 협력적으로 일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고[4], 이후 다년간의 연구를 거쳐 2010년 단행본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5].
해외사례가 보여주는 방향
미국 Part C 체계에서 실제 서비스는 이렇게 조직됩니다. 한 아이에게 여러 전문가(언어치료사,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등)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도, 이들이 각자 따로 가정을 방문해 개별 세션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중 한 명이 '주요서비스제공자(Primary Service Provider, PSP)'로 지정되어 가족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나머지 전문가들은 이 PSP에게 자문(consultation)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업합니다. PSP는 아이를 직접 '치료'하기보다, 양육자가 일상적 상호작용과 놀이 속에서 아이의 발달을 촉진할 수 있도록 코칭(coaching)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언어청각협회(American Speech-Language-Hearing Association, ASHA)는 이 방식이 "여러 전문가의 잦은 가정 방문으로 인한 서비스의 파편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6]. 포르투갈은 보건·교육·사회복지 세 부처가 연계된 국가조기개입체계(Sistema Nacional de Intervenção Precoce na Infância, SNIPI)를 국가 단위로 운영하며 전국조기개입협회(Associação Nacional de Intervenção Precoce, ANIP)는 이후 이 모델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훈련을 제공해왔는데[8] 가족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원을 조직해왔습니다. 일과중심모델을 바탕으로 한 훈련과 보급도 이루어졌지만, 모든 실천가가 같은 방법을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스페인은 '확산 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부 기관과 자치주를 중심으로 일과중심 접근의 도입과 훈련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두 나라의 제도와 확산 과정은 다르지만, 아이와 가족의 실제 생활을 지원의 중심에 놓으려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의 어려움이 발견되면 아이의 일상과 별개로 치료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서비스 접근성이 달라,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 가족이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거주지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 현실을 가족의 선택이나 노력만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일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서비스 체계와 전문가의 실천을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장애영유아를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 아이의 수면·식사·놀이 리듬을 존중하고 있나요?
- 아이가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실제로 참여할 기회를 넓히고 있나요?
- 가족과 교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상과 목표를 함께 살펴보고 있나요?
- 필요한 전문적 지원과 일상의 경험을 연결하고 있나요?
재활받을 권리와 일상에서 발달할 권리는 서로 경쟁하는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치료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와 지원이 아이의 삶을 돕는 방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조기개입은 아이를 일상에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과 함께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자라도록 돕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