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지영
고집 부리는게 아니라 진짜 아프다구요!
제하는 웬만하면 잘 웃는 아이입니다. 그런 제하가 요즘 유독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발목보조기입니다. 언제인가부터 제하는 보조기를 착용할 때면 일관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학교나 치료실에서 잠시 보조기를 풀었다가 다시 신겨야 할 때면 온몸에 힘을 주고 울면서 버티곤 했습니다. 달래도 소용이 없을 때는 결국 보조기를 빼주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그저 ‘싫어서 고집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싫어요’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 됩니다.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표정이나 몸짓, 소리를 보고 아이의 마음을 짐작해야 할 때가 많죠. 제하가 보조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을 했습니다. 요즘 꾀가 는 것 같다고요. 싫은 것을 피하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울면서 버티는 모습이 오히려 인지 발달의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싫어요’라는 자기 의사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달래고, 기다리고, 때로는 조금 단호하게 보조기를 신겼습니다. 그런데 최근 언어치료사가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제하가 짜증을 내고 강직이 심해지는 등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계속 보조기를 채우는 것이 맞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싫다’거나 ‘불편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극심한 통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주의 깊게 관찰해보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깊게는 아니지만 AAC를 공부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사소통의 시도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요. 1년 전에는 제하의 표정과 몸짓, 소리를 바탕으로 ‘의사소통 사전’도 만들어두었고, 거기에도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얼굴을 찌푸리고 온몸에 힘을 주며 짜증을 내거나 울면, [불편해요 / 힘들어요 / 아파요(지속적인 통증) / 더워요]라는 의미라고. 그런데 정작 실전에서는 그 신호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보조기와 양말을 벗긴 직후 피부를 확인했습니다. 왼쪽 복숭아뼈와 주변 피부가 갈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강한 자극을 받은 흔적처럼 보였고, 일부는 피부가 벗겨졌다가 아물고 있는 듯한 흉터도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그동안 제하는 계속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난 그저 보조기가 싫어서 고집을 부리는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보조기 업체에 사진을 보내 확인해보니, 제하의 왼발이 틀어지면서 보조기에 강하게 맞닿는 부분이 생겨 불편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보조기를 수선했고, 다시 신겨보니 제하는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말하는 법만큼, 아이의 말을 듣는 법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울음은 배고픔일 수도 있고 통증일 수도 있습니다. 몸에 힘을 주는 것은 강직 때문일 수도 있고 불편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보조기를 거부하는 행동 역시 단순한 거부일 수도 있지만, 맞지 않는 보조기 때문에 생긴 통증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끊임없이 추측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틀립니다. 나는 아이의 의사소통 사전까지 만들어두었는데도 틀렸습니다. 이 사실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통해 아이의 의사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에게 의사표현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동시에 아이의 표현을 어른이 제대로 해석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아이의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행동으로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특히 말로 통증을 설명하기 어려운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제하의 의사소통 사전을 다시 펼쳐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표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내가 놓친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원래 싫어하는 거야’, ‘고집이 세졌어’, ‘요즘 꾀가 늘었네’ 그렇게 결론 내리기 전에 한 번쯤 멈춰서 의심해 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첫걸음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