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권리가 만나는 자리
2026년 11월 05일
글 : 이소영 (특수교육학 박사 &서초아이발달센터장)
얼마 전 5개월 된 아기가 있는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가 조금만 칭얼거려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배가 고픈 건지, 졸린 건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안아 달라는 건지 얼른 알아내서 바로 해결해 주려고 애쓴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아기의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머니는 몹시 지쳐 보였습니다. 이 어머니의 마음은 아기를 향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태도를 ‘반응적 상호작용’이라 부르며 권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아기의 모든 신호에 ‘바로, 완벽하게’ 응답하는 것이 정말 반응적인 양육일까요?
‘반응적’이라는 말은 ‘즉각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반응적 상호작용의 핵심은 아기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아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알맞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반응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읽고 잘 맞추어 주느냐입니다. 대부분의 양육자가 아기의 신호에 적절하게 반응하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아기와 양육자의 상호작용이 서로 잘 맞는 순간이 전체 시간의 약 30%에 그친다고 합니다(Tronick & Gianino, 1986). 나머지는 어긋났다가 다시 맞추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를 돌볼 때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자에 대한 신뢰 속에서 어긋났다가 다시 이어지는 경험이 쌓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아기가 요구를 표현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채고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른이 앞서서 모든 것을 채워 주면, 아기는 ‘불편함을 느끼고, 표현하고, 응답을 받는’ 경험을 할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든 연령의 아기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울기 전에 먼저 다가가 주세요
신생아는 스스로 감정을 달랠 방법이 거의 없어서 어른이 전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아기가 울음으로 표현하기 전에 신호를 알아차리고, 가능한 한 울음이 길어지지 않도록 살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 호르몬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힘든 상황을 만나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내보냅니다. 짧고 가끔 일어나는 스트레스는 정상적인 것이며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오래 계속되면서 곁에서 달래 줄 믿을 만한 어른의 도움이 없을 때입니다. 하버드 아동발달센터와 소아과학 연구자들은 이를 ‘독성 스트레스’라 부르며, 이런 상태가 아기의 뇌 구조와 이후의 정서·신체 건강에 오래가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Shonkoff et al., 2012; National Scientific Council on the Developing Child, 2014). 또한 어른이 아기의 불편함에 따뜻하게 반응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막아 주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Gunnar의 연구에서는 양육자가 곁에서 부드럽게 달래 주는 경험이 영아의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을 낮추고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더 빨리 회복하도록 돕는다고 보고했습니다(Gunnar, 2017). 그렇다고 아기가 잠깐 칭얼거리거나 가끔 우는 것이 뇌 발달을 해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의 연구들이 경고하는 것은 심하고 오래 계속되며 달래 주는 어른이 없는 상황입니다. 신생아에게 빠른 반응이 중요한 것은, 곧 어른이 와서 달래 준다는 경험이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틈’이 필요해요
신생아 시기를 지나 아기가 조금씩 자라면, ‘잠깐의 틈’이 아기에게 도움이 되기 시작합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민감하고 따뜻한 반응이 아기의 발달에 좋다는 것은 여러 연구가 일관되게 보여 줍니다. 아기를 울게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과 ‘기다릴 틈 없이 바로 해결해 준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 틈이 아기에게 세 가지 기회를 줍니다. 첫째, 불편해도 괜찮고 곧 나아진다는 경험을 합니다. 불편함이 생겼다가 양육자의 도움으로 다시 편안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기는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배웁니다. Tronick과 Gianino는 이를 ‘어긋남과 회복’이라 불렀습니다. 불편함을 아예 만나지 못하면 이 회복의 경험도 쌓일 수 없습니다. 둘째, 스스로 달래 보는 ‘자기조절’을 기를 수 있습니다. 생후 몇 개월 된 아기도 손을 입으로 가져가 빨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몸을 뒤척이며 스스로 편안해지려는 시도를 합니다. Kopp(1982)는 이런 행동을 자기조절의 첫 싹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칭얼거리기 시작하자마자 매번 어른이 해결해 주면, 아기가 이런 시도를 해 볼 틈이 없습니다. 아기는 ‘해 보고, 안 되면 다른 것을 해 보는’ 연습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셋째, 처음엔 어른이 도와주지만, 점차 아기 스스로 조절하게 됩니다. Bernier 등(2010)의 연구에서는 생후 12~15개월 무렵 양육자가 아기가 스스로 해 보려는 시도를 지지해 준 경우, 18개월과 26개월에 아이의 계획하고 조절하는 힘(실행기능)이 더 좋았다고 보고했습니다. 반대로 어른이 모든 것을 앞서서 해 주면 아기가 스스로 조절하게 되는 과정이 더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잠깐의 틈’을 두는 경험은 자기조절을 키우고, 자기조절은 생각의 힘이 자라는 바탕이 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잠깐 멈추고, 떠올려 보고,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것인데, 자기조절이 바로 이 ‘잠깐 멈춤’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할 때 한 박자 머물며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하고 겪어 보는 경험이 쌓이면 생각하는 힘이 자라고, 그 힘이 다시 자기조절을 돕습니다. 이렇게 주의를 모으고 충동을 멈추며 상황에 맞게 방법을 바꾸는 힘을 ‘실행기능’이라 하는데, 그 기초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일찍, 영아기부터 자라기 시작한다고 보는 연구들이 있습니다(Center on the Developing Child, 2011; Fiske & Holmboe, 2019).
아기의 요구를 ‘알아차린’ 다음 ‘느긋하게 말걸기’를 해 주세요
생후 몇 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주변 상황을 알아보고, 사람과 눈을 맞추고 소리를 내며 자기 뜻을 전하려 합니다. 이때부터는 아기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만큼이나, 느긋한 마음으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해 주며 상호작용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배가 고플 때든, 기저귀가 젖었을 때든, 졸리거나 심심할 때든, 아기가 칭얼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칭얼거릴 때 “배가 고팠구나. 지금 우유 준비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줄래?” 하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기저귀를 갈 때도 “쉬했구나. 축축했겠다. 같이 갈아 보자” 하고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아기가 문장의 뜻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어조와 표정을 느끼고 ‘내가 소리를 내면 엄마가 대답해 주는구나’ 하는 주고받기의 순서를 몸으로 익힙니다. 이렇게 하면 양육자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아기의 요구를 빠짐없이 빠르게 알아내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아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해결해 간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배고픔이나 기저귀 같은 기본 욕구를 채워 주었는데도 칭얼거린다면, 졸린 건지, 심심한 건지 등 다른 이유를 헤아려 보고 그에 맞게 반응해 주세요. 이유를 바로 알기 어렵다면 서두르지 말고, 이런 방법으로 곁에 머물러 보세요. 가까이에서 부드럽게 토닥여 줍니다. 아기가 볼 수 있는 곳에 장난감을 보여 줍니다.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노래를 불러 줍니다. 이 방법들의 목적은 아기가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게 막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안전감을 주면서 아기가 ‘이제 어떻게 하지?’ 하고 스스로 찾아볼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약간의 틈을 두고 달래도 아기의 칭얼거림이 점점 더 격해진다면 계속 기다리지는 마세요. 기다림은 어디까지나 아기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이어야 합니다. 아기마다 기질이 다르고, 특히 예민하거나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기는 필요한 도움의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아기에게 맞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담당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