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소영(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
발달이 지연되거나 장애를 지닌 영아의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공통된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아이가 자신의 선택을 하기보다는 양육자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육자의 선택이 아이의 요구를 충족시킬지라도, 그것이 아이의 발달에 있어 최선의 방법일까요?
실제로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를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고, 스스로 선택하려는 의지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아기의 첫 선택
아기들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요구를 울음으로 표현하고, 어른들은 이에 반응하며 돌봄을 제공합니다. 이는 초기의 중요한 상호작용 방식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기들은 점차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행동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흔들리는 모빌을 보며 손을 뻗어 모빌을 움직여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아기가 선택을 하는 순간이며, 이러한 경험이 아기의 발달을 촉진합니다.
모빌이 멈췄을 때 다시 손을 뻗어 움직이고, 재미가 없어지면 다른 것에 관심을 확장하는 과정은 아기가 주체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기는 자신의 행동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점차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려는 능력을 키웁니다.
발달지체 영아와 선택의 제한
하지만 발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기들은 이러한 선택의 순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양육자가 아기의 발달을 돕기 위해 선택한 장난감, 치료, 교육적 활동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놀이와 재미보다는 발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제공되는 장난감들, 또래보다는 어른들과의 상호작용에 익숙해지는 환경 속에서 아기들은 점차 선택의 기회를 잃고, 주어진 상황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자기결정으로 이어지는 '선택'의 경험
우리는 흔히 장애아동 교육에서 자기결정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다루며, 특히 성인기를 준비하는 청소년기 교육과정에서 자기결정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결정은 단기간에 배우는 기술이 아닙니다. 아기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는 순간부터 자기결정은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히 "어떤 것을 할래?"라는 질문을 통해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아이가 자신의 선택을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양육자의 역할: 선택을 존중하는 환경 만들기
발달지체 영아의 양육자들은 아이의 발달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발달을 돕기 위한 환경이 아이의 선택을 제한한다면, 이는 오히려 아이의 자율성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양육자들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제공하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을 고르는 순간, 어떤 놀이를 할지 결정하는 시간, 혹은 놀이의 진행 방식을 아이가 선택하도록 기다려주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 아이의 자기결정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발달을 돕는 진정한 방법
아이의 발달을 돕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아이의 선택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발달지체 영아일수록 선택의 경험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발달 지원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일상은 스스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율성과 자기결정을 위한 기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들
- 제한된 선택지 제공 :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 때는 너무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세 가지의 옵션만 제시하여 아이가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를 들어, “오늘 이 노란 양말이랑 파란 양말 중에 어떤 걸 신고 싶어?” “사과랑 바나나 중에 뭐 먹을래?”라고 물어보세요.
- 의사결정의 결과를 경험하게 하기: 아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도록 도와주세요. 예를 들어, “네가 이 장난감을 골랐으니 오늘은 이걸로 놀아보자!” “사과를 골랐으니 오늘 간식은 사과야, 맛있게 먹자!”라고 말해주세요.
- 선택과 규칙의 균형 잡기: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기기보다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을 설정하고, 규칙 내에서 선택권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엔 따뜻하게 입어야 해. 반팔은 여름에 입자.” “간식은 하나만 먹어야 해. 바나나랑 요거트 중에 하나만 골라볼래?”라고 말해주세요.
- “무엇이든 골라”는 피하기: 아이에게 “뭐 먹고 싶어?” 또는 “뭐 하고 싶어?”처럼 막연한 질문을 하면 아이가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줄 수 없는 것을 선택했을 때 이로 인해 갈등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구체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초록색이랑 줄무늬 옷 중에 뭐 입을래?” “블록놀이랑 그림 그리기 중에 뭘 해볼까?”라고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