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나가보자. 마음을 환기하자.

글 : 김지영

일, 취미, 평범한 일상... 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손에서 놓게 된 것이 얼마나 많을까.
횟수는 줄었지만 내가 여전히 하는 것은 한두 달에 한 번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운이 길게 남아 처음으로 두 번 방문한 전시가 있다.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조경가 정영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조경’이라고 하면 단순히 나무나 꽃을 심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건축 못지않다. 건축처럼 설계 도면으로 작업하며 터를 읽어내는 감각과 식물의 생육환경, 주변 경관과의 어우러짐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조경은 그 자체로, 또는 건축과 어우러져 건물의 안팎과 주변의 분위기까지 바꿀 수 있다.
<전시장 전경>
1973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기로 입학해 대한민국 1세대 조경가로 활동한 정영선은 국가 주도 사업부터 기업 프로젝트 등 지금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해냈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정영선의 작업은 곧 한국 조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청계천, 선유도 공원, 경춘선 숲길, 국립수목원, 아모레퍼시픽 사옥, 크리스찬디올 성수, 올림픽공원, 예술의 전당, 설화수의 집… 그녀의 손을 거친 곳 중 내가 가본 곳만 해도 열 곳은 넘는 것 같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까운 북촌 설회수의 집>
<아이들과 함께 한 청계천>
<이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의 경춘선 숲길. 전시를 보고 나서 가보니 감회가 새롭다>
정영선은 뻔한 잔디밭에 나무, 벤치, 분수가 늘어서 있는 정원은 지양했다. 어린 초목이 자라나 숲이 우거질 모습과 물의 흐름을 그리고 풀벌레와 동물, 사람들을 위한 쉼터… 정원 그 너머를 상상하며 땅에 한 편의 시를 쓰듯 작업을 했다. 때로는 생태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죽어가는 강을 살리기도 하고, 폐정수장을 그대로 살려서 공원으로 만들고, 주차장이 될 뻔한 곳을 살아 숨 쉬는 생태 정원으로 가꾸기도 했다. 정영선은 정원이란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감동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곳, 장소의 과거를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하게 하는 곳이라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정원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위로와 행복을 주는 공간, 정원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장 초입에서 상영하고 있는 인터뷰 영상이었다.
<서울아산병원 녹지화 스케치>
“환자도 보호자도 가슴이 뻥 뚫리게 숨 쉴 수 있는 곳, 비록 병상에 있어도 창 너머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 환자 앞에서 슬픈 내색을 할 수 없는 가족들이 나와서 펑펑 울 수 있는 곳. 병원의 정원은 그런 따뜻한 위로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영선이 서울아산병원 정원 리노베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렇다. 아이들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처음 만난 날, 제하의 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 날, 뇌 손상이 왔다고 한 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수술실에 혼자 들여보내 놓은 날... 사람들의 눈을 달리 피할 곳이 없어서 병원 복도 구석이나 화장실에 숨어서 몇 번이나 목 놓아 울었다. 가족이 다 같이 병원에 방문한 날은 병동 앞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놓고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그곳이 병원의 정원이었다.
“선유도 공원을 만든 지 며칠 안 됐을 때였어요. 젊은 여인이 기둥에 기대서 울고 있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살하려고 왔는데 공원이 위로를 준다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둘이 같이 울고 그랬어요. 공원이라는 곳이 행복한 사람이 와서 노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정말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 못할 때, 혹은 울고 싶을 때, 살아가다 보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너무나 많아요. 공원이 그런 것을 잘 새겨내 줄 수 있어야 해요.”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찾았던 서울숲>
나의 신혼집이자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한 우리 가족의 첫 집은 서울숲 바로 옆으로 이른바 ‘숲세권'이었다. 비록 집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좁디좁은 빌라였지만 마음먹고 소풍 가지 않아도 아침저녁으로 산책 삼아 넓은 정원을 거닐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유모차를 끌고 나갔고, 나무 아래에서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거나 기쁨에 웃음이 터지거나,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계절의 흐름에 따라 꽃들은 피고 지고, 새들은 지저귀고,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렸다. 정원은 가장 가까운 안식처였다.
전시장이나 정원을 거니는 것은, 일상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머리와 마음에 다른 것을 들여 환기해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원을 거닐듯 전시를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감탄하고, 다시 일상에서 힘을 낼 수 있는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전시를 볼 여유가 없다면 온라인에 상당히 많은 영상이 있으니 정영선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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