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치료실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라기를 바라며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조기개입 분야에서 '일과중심개입(Routine-Based Intervention)'이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왔습니다. 아이의 발달을 지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가 실제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개입을 하는 것임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고요.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어 하고, 그 의미 있는 삶의 귀결점은 결국 나와 가족, 이웃으로 이어져요. 내 삶이 나아지려면 나 혼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함과 만족감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삶의 모든 선택과 노력, 관계와 목표는 결국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수렴됩니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와 그 가족도 다르지 않아요. 아이가 가족과 함께 웃고, 먹고, 놀고, 쉬는 그 일상이 곧 삶의 중심이고, 발달의 토대입니다.

전문가 먼저 일과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일수록, 일상은 오히려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치료 일정이 하루를 채우고, 병원과 센터가 생활의 기준이 돼요. 먹기, 놀기, 이동하기, 쉬기 같은 기본적인 활동들은 '개입의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효율을 위해 그냥 생략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현실 앞에서 부모님을 탓하기는 어려워요. 일상보다 치료를 우선하게 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치료는 목표가 분명해 보이고, 전문가가 있고, 회기마다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반면 일상은 너무 당연해서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고, 변화도 느리게 나타나니 효과가 없는 것처럼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그것을 양육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전문가예요. 전문가가 먼저 일과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양육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은 계속해서 치료실에서 답을 찾으려 할 수밖에 없어요.

전문가로서 스스로에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전문가로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아이에게 왜 이 치료를, 이 수업을, 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 아이와 가족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가? 그 물음의 답은 발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발달은 특별한 시간에만 일어나지 않아요. 아이는 하루 대부분을 일상 속에서 보냅니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반복되는 경험들, 익숙한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뇌는 조직되고, 몸은 조절을 배우며, 의미 있는 행동이 하나씩 쌓여요. 일상이란 발달이 일어나는 장소이면서 시간이기도 해요. 그렇기에 일상이 빠진 발달 지원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가정에서 반복되지 않는 기술은 유지되지 않고, 아이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목표는 결국 의미를 잃어요. 반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작더라도 오래갑니다. 특별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런 변화들이 쌓여 아이의 삶 전체를 바꿉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이를 치료실 밖으로 내보낼 때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상이 즐겁고 평안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의 발달을 진정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치료했느냐가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의 하루 전체가 발달의 기회가 되도록 하는 겁니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덜 하자'는 말이 아니에요.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바로 그곳에서 충분한 발달의 기회를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아이다운 일상을 되돌려 주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개입의 시작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특별한 치료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조기개입은
치료실 밖, 가정과 지역사회 속 일상을 지키고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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