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장난감 창고

글 : 이소영 (서초아이발달센터장, 특수교육학 박사)

아기가 성장해가면서 엄마아빠 마음이 참 바빠지죠? “옆집 아기는 전집을 들였다더라”, “이 교구가 발달에 좋다더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얼른 나도 구매해야 할 것 같고, 결제 버튼에 손이 가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아기들 눈에는 비싼 장난감보다 엄마 아빠가 매일 쓰는 물건들이 훨씬 흥미로운 ‘신상’이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옛날에도 ‘장난감’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요? 예전에는 아기들은 뭘 하고 놀았을까요? 그냥 주변에 널린 나뭇잎, 돌멩이를 만지고, 나무 막대기로 흙을 파기도 하고, 집에 있는 바구니나 그릇을 가지고 놀지 않았을까요? 아주 아기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집에 있는 더 이상 안쓰는 사기그릇이나 스테인리스 그릇, 공사장에서 주워온 벽돌을 부수고 풀잎을 뜯어서 소꼽놀이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기들은 모두 ‘탐험가’예요

사실 아기들에겐 놀이의 본능이 있어서, 굳이 의도적으로 만든 놀잇감이 없어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내곤 하죠. 엄마랑 마주 보고 눈 맞추며 장난치거나, 옷자락의 보들보들한 감촉을 만지작거리는 것조차 아기들에겐 훌륭한 놀이랍니다. 그런데, 예전의 저처럼 아이가 집안을 뒤져서 이것저것 다 꺼내서 가지고 논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어쩌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며 한숨부터 나올 수도 있고요. 멀쩡한 티슈를 줄줄이 뽑아놓거나, 화장품 뚜껑을 열어서 비싼 크림을 이불에 다 발라놓고, 엄마 지갑 속 카드를 다 꺼내서 놀다가 어디다 끼워 놓았는지 찾을 수가 없게 만들고,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탁자에 탕탕 두드리는 것과 같은 행동들 말이에요. 그런데 이 골치 아픈 행동들이 사실은 발달 검사지에 나오는 ‘중요 문항’들이랑 딱 연결돼요.

“엄마, 나 지금 공부 중이에요!”

티슈 곽이라는 좁은 입구에 손을 넣어 물건을 끄집어내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소근육 조절 능력이 필요해요. 발달 검사에서는 상자 안에 든 물건을 스스로 꺼내거나, 의도적으로 목표 지점에 물건을 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한답니다. 화장품 뚜껑을 돌려서 여는 동작은 손가락 근육이 섬세하게 발달했다는 증거예요. 또 끈적한 크림을 이불이나 몸에 바르는 건 촉각을 통해 사물의 성질을 배우는 ‘감각 탐색’ 과정이죠. 검사지에서는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는지, 다양한 질감에 반응하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얇은 카드를 손끝으로 집어내는 건 엄지와 검지 손 끝으로 미세하게 잡기 능력이 완성되어야 가능해요. 게다가 카드를 틈새에 끼워 넣는 행동은 “이 얇은 게 여기에 들어갈까?”라는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인지 발달 단계 중 하나인 ‘문제 해결 능력’과 연결될 수 있어요. 밥 먹다 말고 숟가락으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는 건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라 숟가락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것은, “내가 두드리면(원인) 소리가 난다(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아기가 ‘사고’를 치고 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얼른 말려야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아, 우리 아기가 지금 발달 검사 항목 하나를 스스로 통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아기를 위한 ‘우리 집’을 장난감 창고로 활용하기 팁

비싼 장난감 대신, 지금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물건으로 이렇게 한번 놀아보세요.
1. 스카프 박스 ● 방법: 다 쓴 티슈 곽에 가제 수건이나 알록달록한 손수건이나 스카프들을 줄줄이 묶어 넣어주세요. ● 효과: 아기가 이걸 끝없이 뽑아내면서 손과 팔의 협응력을 기를 수 있어요. 진짜 티슈를 뽑는 쾌감은 그대로 주면서 정리는 훨씬 편해질 거예요.
2. 주방의 오케스트라, 냄비와 숟가락 ● 방법: 아기 앞에 크기가 다른 냄비나 플라스틱 밀폐 용기를 뒤집어 놓아주세요. 그리고 나무 숟가락 하나를 쥐여줘 보세요. ● 효과: 탕탕 두드리며 재질마다 다른 소리를 탐색하는 건 아기의 청각 발달과 인지 발달에 정말 좋아요.
3. 기저귀 까꿍 놀이 ● 방법: 기저귀를 갈 때, 새 기저귀로 엄마 얼굴을 슬쩍 가렸다가 “까꿍!” 하며 나타나 보세요. 아기 얼굴에 기저귀를 살짝 올렸다가 아기가 스스로 치우게 기다려주는 것도 좋고요. ● 효과: ‘대상 영속성(눈앞에 안 보여도 물건이 사라진 게 아님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이만한 놀이가 없답니다.
4. 식사 시간의 ‘바사삭’ 탐색 ● 방법: 간식으로 주는 뻥튀기나 아기 과자를 그냥 주지 말고, 아기 앞에서 톡! 부러뜨려 소리를 들려줘 보세요. 아기가 직접 부러뜨려 보게 유도해도 좋고요. ● 효과: 손가락 끝 근육을 발달시키고, 바삭거리는 질감을 느끼며 다양한 사물의 특성을 파악해 가는 시간이 돼요.
엄마를 당황하게 했던 그 '사건'들이 사실은 우리 아기가 스스로 발달 목표를 하나씩 통과하고 있는 대견한 순간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거실에 흩어진 티슈나 카드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실 거예요. 사실 놀이는 특별한 장소에 가거나 비싼 장난감이 있어야 하는 거창한 게 아니거든요. 아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몰입하고, 또 하고 싶어서 자꾸만 손을 뻗는다면 그게 바로 세상에서 좋은 ‘최고의 놀이’이자 ‘최고의 공부’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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