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와 병원, 진단과 평가에 대한 궁금증 4가지

글 : 김지영

“다니고 있는 병원 교수님도 잘 모르던데… CVI는 진단 코드가 없나요?”
“병원에서 CVI 진단을 받으면 도움 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진단은 발달센터에서도 받을 수 있나요?”

Q. 발달센터에서 CVI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특수교사나 재활치료사 등이 하는 것은 '진단'이 아닙니다. 진단은 의사만 할 수 있고, 그 외 전문가들은 '평가'만 가능합니다. 평가를 받았다면 부모님이 CVI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아이의 고유한 시각적 특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학교나 치료실 등 기관에 공유하고, 치료와 지원 방향을 아이에 맞게 잡아주어야 합니다. 시각은 아이의 발달과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조급해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공부하고 꾸준히 개입하면 느리더라도 분명한 변화가 보일 것입니다.

Q. 그럼 병원에서 CVI 진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KCD)에서는 H47.6 ‘시각피질의 장애'로 표시하고 있고, 안과에서 진단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아주 제한적입니다.
CVI는 출생 후 바로 뇌 손상을 입어서 다른 장애를 동반하는 등 대부분 중증, 중복장애 아동에게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지 문제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를 동반한 경우에는 사회적 상호작용 문제와 시각 문제를 변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전문가 부족과 의료계의 무관심 또한 CVI의 진단을 어렵게 하는 원인입니다. 제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의 안과에서 ‘인지가 좋아지면 보는 것도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CVI를 진단받은 사례 대다수가 뇌졸중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시각 사용은 어려워졌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노년층 또는 전맹에 가까운 이들입니다.

CVI의 진단과 평가 방법은 일반적인 시각장애와는 다릅니다. 안구 이상이 아니라 뇌의 문제임을 확인해야 하므로 해외에서는 안과 단독으로 진단하지 않고 소아신경과나 특수교사와 협업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익숙한 환경이 결과의 정확도를 높이므로 가정 방문 평가가 권장되며, 아이의 병력, 평소 시각 사용, 행동 등 에 대한 부모의 자세한 설명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해외와 같이 체계적인 진단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는 않고 주로 안과에서 진단하고 있습니다.

Q. 그렇게 어렵다면 굳이 병원에서 CVI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특수학교 배치 등 교육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특수교육법상에서 '시각장애'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또한 복지 혜택을 위해서는 장애인복지법상 ‘시각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야 합니다. 현행 시각장애 판정 기준으로는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시력 검사 결과가 필요한데, 안구 자체에 문제가 없는 CVI 아동은 시각 문제가 아닌 뇌의 기능적인 처리 문제로 보기 때문에 전맹에 가까운 경우가 아니면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즉, CVI 아동이 병원으로부터 진단 코드를 받지 못하면 교육과 복지 등에서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시각 보조기기는 학교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지만 학교를 못 다니고 있거나 학교 밖에서 추가로 필요한 경우 부모가 자비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CVI 진단을 받으면 시각과 관련한 보조기기를 지원받거나 관련 기관(시각장애인 복지관, 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CVI 아동은 전맹과 달리 시기능이 조금씩 호전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낮은 단계라 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합니다. 즉, 최대한 시기능이 안 좋을 때 시각장애 진단을 받아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팁을 드리자면 소견서는 진단서보다 받기가 쉽습니다. 특수교육에서는 CVI 소견서로도 시각장애 학교에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진단서를 받기 어렵다면 소견서라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또한 같은 아이에 대해 어떤 의사는 아주 까다로운 기준으로 진단서를 써주지 않는 반면, 어떤 의사는 생각보다 쉽게 써주기도 합니다. 기존에 진단을 받은 아동의 사례를 참고하셔서 해당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Q. CVI가 있어도 다른 눈 문제 때문에 안과 진료를 계속 봐야 할까요?

CVI는 사시, 안구진탕, 근시, 난시, 원시 등 다른 시각장애 문제와 시신경위축, 시신경발육부진, 시신경형성장애 등 다른 안과 질환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CVI만 있다 하더라도, 시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추후 안구 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안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CVI로 진단받은 아동은 시각장애인으로 등록되어 공적 지원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수교사 양성 시에도 기본적으로 CVI에 대해 교육하고 있으며, CVI 아동은 학교에서 시각장애 학생이 받는 지원과 같은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특수교육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적극 찾아내고,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CVI 아동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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