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바움의 관점을 통해 바라본 <가족과 삶을 중심에 둔 조기개입>

글 : 이소영(특수교육학 박사,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

한국의 조기개입은 여전히 조기진단과 치료를 통한 ‘결함 중심 고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아이의 기능을 향상시키기보다 결함을 교정하려는 접근이며, 가족의 삶은 그 과정에서 중심이 되지 못한다. 캐나다 소아과 의사 피터 로젠바움은 이러한 기존 관점을 비판하며, ‘재활’의 본질을 삶의 가능성 확장으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조기개입의 핵심은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발달과 웰빙을 중심에 두는 것이라 강조한다. ICF와 F-words는 이 전환을 위한 실천적 틀이며, ‘결함 중심 고치기’가 아닌 ‘참여와 의미 있는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본 칼럼은 로젠바움의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조기개입의 방향을 성찰하고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조기개입: '장애 치료'에 치우친 현실

우리나라의 장애아 조기개입은 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여 정상 발달에 최대한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조기에 치료하면 발달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장애 정도를 줄일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부모들은 아이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과 치료실로 데려갑니다. 실제로 병에 의한 입원이 아닌 발달 지연 문제로 재활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아이들도 있고, 가정에서보다 의료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한 경우도 흔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조기개입 본연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장애아동의 발달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혹시 아동과 가족이 누려야 할 일상의 시간마저 병원 중심의 치료가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달에 있어서만은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구호 아래 어린이 재활병원의 확대 설립이 당연한 방향처럼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재활'의 의미 재고: 로젠바움 철학이 말하는 것

이 지점에서 장애 아동에게 ‘재활’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소아 재활 전문가인 피터 로젠바움 박사도 2025년 국제조기개입학회(ISEI)에서 기존의 재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로젠바움 박사는 아이의 장애를 ‘고쳐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급급한 접근에서 벗어나, 가족을 중심에 두고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과 기능 향상을 돕는 것이 조기개입의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학·재활 모델처럼 진단명 규명과 기능 결손 교정에만 집착하지 말고, 대신 아동과 가족의 발달 및 일상적 기능 향상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

✅아이 한 명만을 바라보던 관점을 버리고 가족을 지원의 중심에 놓아, 부모에게도 ‘조기개입’을 제공할 것.

✅장애아동을 ‘정상’으로 고쳐주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아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삶에 최대한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할 것.

✅조기개입 단계부터 아이의 일생을 내다보는 긴 호흡으로 접근할 것 (즉, 눈앞의 치료 성과만이 아니라 평생의 발달과 웰빙을 염두에 둘 것).

로젠바움 박사의 이러한 철학은 우리에게 조기개입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줍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번 컨퍼런스뿐 아니라 과거부터 일관되게 같은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 로젠바움 박사는 “장애아동에 대한 현대적 접근은 기존의 ‘고치기’와 ‘정상화’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야 하며,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강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캐나다의 CanChild 연구진이 제안한 이른바 ‘F-words’ 개념(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여섯 가지 F 단어: Function, Family, Fitness, Fun, Friends, Future)으로도 잘 알려진 패러다임입니다. 다시 말해 장애 그 자체보다 아이의 삶과 능력,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가족 중심, 기능 중심 접근이 중요한 것일까요? 부모와 가족을 지원하는 일이 곧 아이를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는 일반 아동을 키우는 부모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 부담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부모의 안녕이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로젠바움 박사는 “아이의 발달을 돕기 위해서는 부모와 가족의 웰빙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아이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못지않게 부모와 형제자매를 위한 지원 서비스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아이와 부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공동체이며, 부모가 건강하고 역량을 갖출 때 아이도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 가족과 함께하는 조기개입

이제 우리나라의 조기개입도 이러한 가족 중심 철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발달의 골든타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아이를 치료실에만 붙들어두는 사이에, 정작 아이가 가정과 사회에서 배우고 즐길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조기개입의 목적은 장애를 단기간에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기의 개입을 통해 장애아동과 그 가족이 앞으로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이어야 합니다. 치료실에서의 연습만큼이나 아이의 일상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참여와 성취가 중요합니다. 이제는 병원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아이의 삶의 현장인 가정과 지역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활(habilitation)’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로젠바움 박사가 강조했듯, 이제는 ‘re-habilitation’이 아닌 ‘habilitation’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이는 이미 잃은 기능의 회복이 아니라, 아직 갖추지 못한 기능을 획득하고 확장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조기개입의 성공은 아이와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데 달려 있습니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정상 아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신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과 전문인이 파트너가 되는 것—로젠바움 박사의 철학이 가리키는 방향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조기개입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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