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이 늦은 우리 아이의 놀이에 대해 알아보아요

글 : 이소영(특수교육학 박사, 한국영아발달조기개입협회)

발달이 느린 영아들은 또래와 비교했을 때 놀이가 다소 단순하고 짧게 끊기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놀지 못하는 아이'로 생각하지는 마세요. 아이가 편하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자리, 복잡하지 않은 재료, 몸을 다양하게 써 볼 수 있는 기회를 조금씩 마련하면 놀이가 자연히 길어지고 풍성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발달이 느리다고 해서 발달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게 돼요. 바로 '즐거움'이지요. 그보다는 먼저 아이의 놀이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발달이 지체되는 영아의 놀이는 어떠한지를 알아봄으로써, 그 특성에 맞춰 환경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상호작용을 더해 주면 일상이 한결 수월해지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발달지체가 있는 영아는 놀이의 복잡성, 상징성, 통합 수준 등이 또래보다 낮게 관찰됩니다. 예를 들어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지연이 있는 영유아의 놀이는 또래 대비 놀이 주제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여러 가지 놀잇감을 조합하거나 역할 놀이로 확장하는 통합적 놀이는 적게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다만 연구마다 놀이를 분류하는 용어나 평가 방법이 달라 결과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아의 발달 지연 정도와 지연되는 발달 영역에 따라 놀이 양상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운동 발달이 늦은 아이는 물건에 손을 뻗거나 옮기고 조작하는 행동이 적어지고, 의사소통 발달이 늦으면 또래와 주고받기 놀이를 시작하거나 공동주의를 형성하는 상호작용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 발달 영역의 지연에 의한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몸으로 하는 활동과 인지·의사소통 능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어느 한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통합적인 발달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운동 능력과 인지 문제해결을 한꺼번에 자극하는 개입을 통해 아이의 여러 발달 영역이 함께 향상될 수 있음이 연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즉 놀이를 볼 때도 신체 놀이와 사회적·인지적 놀이를 따로 떼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 맥락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발달이 늦은 영아의 놀이를 위하여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바로 아이를 둘러썬 '환경'입니다. 아이의 놀이 능력을 키우려면 집에서 아이 스스로 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음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놀이 환경 조정 원칙입니다:

가깝게 (Reachable): 아이가 쉽게 닿을 수 있는 높이와 거리에 놀잇감을 두세요. 예를 들어 바닥이나 소파 옆, 낮은 탁자 위에 장난감을 놓으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통이나 장난감을 바로 눈앞에 두고, 다음에는 좀 더 거리를 두어 5~10cm 정도를 멀리 두어보세요. 이렇게 아주 작은 거리 차이만 주어도 아이는 스스로 몸을 움직여 도전하게 되고, 참여도가 늘어납니다. 실제 치료 프로그램에서도 장난감을 닿지 않는 곳에 두고 아이가 천이나 끈을 잡아당겨 가져가도록 유도하는 등, 아이가 한 걸음 노력하면 성취를 맛볼 수 있게 환경을 세팅합니다.

몸으로 (다양한 자세): 놀이 표면과 아이의 자세를 다양화해보세요. 딱딱한 마룻바닥, 미끄럼 방지 매트 등 느낌이 다른 바닥을 제공하고, 눕기(옆으로 눕기/엎드리기)와 앉기를 번갈아 시도합니다. 아이에게 자세를 바꾸는 순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만들어주세요. 예를 들어 옆으로 누워 있다가 장난감을 따라 고개를 들며 엎드려보고, 다시 일어나 앉아보기까지가 하나의 놀이 시퀀스가 됩니다. 이러한 자세 전환 연습은 아이의 운동능력과 공간인지 발달을 함께 도와주며, 실제 START-Play 같은 전문 개입에서도 핵심 원리로 활용됩니다.

쉽게 (재료 단순화): 아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 장난감을 과하게 많이 제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 번에 적은 수의 물건을 주는 편이 좋습니다. '바구니 1개와 작은 장난감 3개' 정도로 환경을 단순화해 보세요.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산만해지기 쉽고, 아이가 한 가지 물건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시판 장난감만 고집하기보다는 실제 생활 물건(예: 플라스틱 통 뚜껑, 작은 그릇, 깨끗한 나무 숟가락 등)을 활용해보세요. 이러한 일상 물건은 색다른 촉감과 소리를 제공하여 아이의 탐색 놀이를 오래 유지시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지고 놀기에도 좋습니다.

이처럼 적절한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양육자의 적절한 상호작용 또한 중요하겠지요? 상호작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관심을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거예요.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물건을 내밀거나, 소리를 내는 모든 신호에 최대한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무언가를 가리키면 “아, 공이 여기 있네! 공 굴릴까?” 하고 바로 말로 받아주고, 아이가 장난감을 내밀면 “고마워, ○○가 블록을 줬어요” 하고 응답합니다. 이렇게 아이의 몸짓과 소리를 “말로 되받아주는” 상호작용을 반복하면, 아이는 자기 행동이 엄마아빠에게서 의미 있는 반응을 끌어낸다는 걸 학습합니다.

자녀의 발달이 지연될 경우 양육자의 반응성이 낮고, 놀이를 이끄는 행동 빈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발달이 지연될수록 양육자의 즉각적이고 일관된 놀이 유도와 반응성은 아이를 놀이에 참여시키는 지름길임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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