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글 : 강물이 아버지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아이가 또래보다 느리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나이가 어리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 해도, 부모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재활의학과 의사선생님을 통해 조기개입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부모가 개입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 길로 가정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부모가 해야 한다는 건 몰랐어요

처음엔 선생님이 아이를 직접 치료해 주시는 줄 알았어요. 몇 번만 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보다 저희를 먼저 보셨어요. 우리가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코칭해 주셨어요. 그때는 좀 어색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더라고요.

조기개입을 시작하고 한두 달 지나니까 아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눈을 마주치고, 부르면 돌아보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려고 하고. 예전엔 외출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같이 식당도 가고, 여행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게 다 아이의 행동만 바뀌어서가 아니라, 저희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하루 24시간, 아이와 함께 눈높이를 맞추는 연습

가정방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요. "지금 아이에게는 눈높이를 낮추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게 가장 큰 교육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아이의 표정, 몸짓,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어요. “물 줘”, “불 꺼줘” 같은 말에도 바로바로 반응하려고 했고, 아이가 뭘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최대한 도와주려 했어요.

식당에서도 연습했어요. 예전에는 아이가 뺏는 줄 알고 울었는데, “아빠 차례야, 하나 둘 셋” 하고 바로 돌려주는 걸 반복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나눔도 배우고, 기다리는 것도 배우더라고요. 씻기, 옷 입기, 인사하기 같은 사소한 일상도 기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일부러 더 일찍 일어나 아이와 옷 입기 연습을 하고, 숟가락 쥐는 것도 같이 해 봤죠. 그 시간이 결국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었어요.

아이는 달라졌고, 나도 변했습니다

처음엔 자신감보다는 혼란이 컸어요. 그런데 아이를 이해하게 되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내가 이 아이의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도 모든 게 잘 풀리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아이를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는 힘은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기개입을 하며 한 가지 더 크게 바뀐 게 있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에요. 예전엔 ‘장애’ 하면 그냥 불쌍하다, 안타깝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건 전혀 다른 세계였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애써주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많이 위로받고, 힘도 얻었어요. 내가 낳은 아이도 감당이 안 돼서 힘든데, 남의 아이를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다는 게 정말 큰 울림이었죠.

부모가 키우는 만큼, 부모를 도와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에는 부모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기개입도 결국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배워나가는 거고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해요. 맞벌이 부부가 자폐 아이를 24시간 돌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그래서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재정적인 지원도, 믿고 접근할 수 있는 공공기관도 훨씬 더 많아져야 하고요.

지금도 언어치료나 감각통합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병원과 일상이 단절돼 있는 느낌이 들어요. 치료가 실생활과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큰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가정방문처럼, 아이의 일상을 중심에 둔 개입이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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