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글 : 김지영

제하가 학교에 다니고, 나는 자조 모임을 시작하면서 장애인 자녀를 둔 선배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나는 선배의 말을 아주 귀담아듣는 편이다. “활동지원사? 장애인콜택시? 우리 땐 그런 거 하나도 없었어! 아픈 애 키운다고 아파트 몇 채는 해 먹었지.” 복지, 정보 등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불모지였을 시대를 먼저 살아본, 모진 풍파를 몸소 겪은 선배의 말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된 건 없다

그들은 자녀가 성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열정적인 활동가다. 내 아이를 위해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게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돌이켜 보면 그냥 된 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애인 보장구 급여비 지원사업에 자세보조용구(맞춤형 이너)가 포함된 것이나 뇌병변장애인 대소변흡수용품 구입비 지원사업이 시작된 것, 비전센터, 뇌병변 마스터플랜 등도 모두 선배 엄마들이 중증장애인 부모 모임을 통해 이뤄낸 것이었다.
후배 부모에게도 장애 자녀의 부모로서 사회활동을 할 것을 권했다. 그 시작점은 학교다.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면 엄마끼리 뒤에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의견을 모아 학교를 상대로 적극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부모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견을 내야 학교도 긴장하고 아이들을 위한 방향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학부모회나 학부모위원회에 소속되면 내 목소리를 현실화할 힘이 생긴다는 선배 엄마의 조언에 학부모회 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통학 첫해라 어리바리한 학부모였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손만 들면 되었다.
학교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힘이 약하기에 장애인 부모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정책을 제안할 때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단체로 행동하거나 임원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을 얻고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임에 소속되고 부모 활동가가 되면 몰랐던 것을 알 수 있고, 엄마가 많이 알고 요구하는 만큼 많이 누린다.

내 의견을 똑똑하게 현실화하는 방법

중증장애인은 유아동기를 지나서도 기저귀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가 크면 밖에서 기저귀를 교체하기란 쉽지가 않다. 유아용 기저귀 교환대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일반 화장실은 장애인 유모차가 들어가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제하도 기저귀 갈 곳이 마땅찮아 종종 길 구석에 유모차를 펼쳐두고 기저귀를 교체하곤 한다. 더 크면 남들 시선 때문에 이마저도 할 수 없을 텐데, 화장실 때문에 외출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역시나 성인 와상장애인 자녀를 둔 선배 엄마는 화장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담요로 아이를 가린 상태에서 교체하는데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서럽고 죄짓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했다.
<일반적인 장애인화장실 / 침상이 마련된 기저귀 교환실>
쇼핑몰이나 지하철 화장실에는 법적 근거도 없는 파우더룸은 있으면서 와상 장애인의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더라도 변기 옆에 붙잡을 수 있는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여태 와상 장애인을 위한 기저귀 교환대를 구비한 화장실을 직접 본 건 대학병원과 특수학교, 장애인복지관이 전부다.
침상을 갖춘 기저귀 교환실이나 가족 화장실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의 고민이 될 수 있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영유아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소수라면 외면당하기 쉽다. ‘저 사람은 맨날 불만이야.’, ‘당신만 불편한 거 아니야?’ 단지 진상으로 낙인찍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으거나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문제를 제기할 때 식당에서 주문하듯 ‘알아서 해주세요’ 하면 안 되고 요구사항을 최대한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선배 엄마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장애인 화장실을 방문했다가 공간도 너무 좁고 접이식 기저귀 교환대는 먼지 쌓인채 밖에 방치되어 있어 차마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열악한 시설에 의문을 품고 한국도로공사에 민원을 제기했다. 무턱대고 왜 이딴 식으로 만들었냐고 따지고 든 게 아니라, 장애인 화장실은 최소 어느 정도 넓이가 확보되어야 하고 어떤 시설이 필요한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근거로 안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휠체어 방향을 360도 틀어도 걸리는 곳이 없어야 하며, 보호자가 함께 들어가도 비좁지 않아야 한다. 성인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기저귀 교환대가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등.

의무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학교에서 나아가 국가를 상대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은 민원을 가장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반가워한다. 그들이 사업계획서를 구상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현실적이고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담당자가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민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어떤 부모 모임을 가보아도 내가 항상 막내다. 선배 엄마들은 젊은 엄마를 너나 할 것 없이 반겨준다. 모임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후배를 바라보고, 뭐 하나라도 더 챙겨줄 것이 없는지 보듬어 준다. 모임에서 선배 엄마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 또래 엄마들이 더 많이 밖으로 나와서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싶다. 학교에서는 활동지원사가 부모를 대신하고, 부모 모임에서도 활동하는 엄마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의 ‘의무’로 바쁘다고 해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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