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

글 : 김지영

제하가 2년 간의 순회 학급 생활을 뒤로 하고 특수학교 유치부로 통학을 시작했다. 입학식 날 학교 강당에서 아픈 아이들 틈에 앉아 있으니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이 문득 실감이 나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은 꽃다발을 들고 왔는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도 서글펐다. 행사가 끝나고 교실로 향할 때 진행자의 안내로 강당 중앙에 마련된 꽃길로 퇴장했다. 꽃길 입구에서 교장선생님이 나눠주는 꽃다발을 제하 손에 쥐여주고 유모차를 미는데 코끝이 찡했다. 제하의 학교생활만큼은 꽃길만 같기를, 눈물을 겨우 삼키며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한 학교에서의 하루

유치부는 1개 반이고 5세부터 7세까지 제하를 포함해 총 4명이다. 제하와 직접 마주치는 선생님은 담임, 실무사를 비롯해 음악, 미술(겸 부담임), 수중운동을 담당하는 교과 선생님이다. 또 수시로 교실을 방문해 체온이나 산소포화도 등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보건교사와 간호사(병원에서 파견)도 있다. 통학 첫날 담임교사에게 돌봄수첩(참조글: https://kici.or.kr/2023/05/10/기록의-쓸모/)을 전달했고 제하를 만나게 될 모든 선생님께 공유를 부탁했다. 제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공유받은 선생님들은 아무래도 더 눈이 가고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특히 간호사 선생님 일부러 제하가 잘 볼 수 있는 빨간 옷을 입고 왔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다. 담임 선생님은 제하가 잘 웃고 반응이 좋아서 수업 피드백을 즉각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에는 수중운동을 한다. 제하는 기관절개관과 위루관이 있지만 학교에서 별다른 말 없이 수용해 줬다. 3년째 이용 대기해두었던 복지관에서는 기관절개관 수술 후에는 수중운동을 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대기를 취소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수중운동실에는 다양한 튜브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하는 기관절개관에 최대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상체를 잡아주는 튜브를 착용하고 물에 들어갔다. 물론 아이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도 함께 들어간다.
따뜻하고 얕은 물에서 시작해 미지근하고 깊은 물까지 교사의 지도하에 움직이며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누워서 첨벙첨벙 발차기도 해보고, 물속에서 서보기도, 손발로 공을 쳐보기도 했다. 쌍둥이 형이 수영장에서 놀 동안 방에서 기다리기만 했던 제하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넓은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와 처음 느끼는 감각 때문인지 표정도 몸도 긴장한 것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굳었던 얼굴이 점점 펴지며 웃기도 하고 움직임도 많아졌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중운동이 앞으로 제하가 좋아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인공호흡기, 경관영양 등 의료적인 케어가 필요한 아이의 경우 매일 보호자가 학교로 동행해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 올해 2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으로 학교 내 의료적 지원이 가능해졌지만, 우리 학교는 워낙 중증장애학생이 많고 그에 비해 간호 인력이 부족해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반에는 엄마가 데리고 오는 아이도 있고 외할머니가 돌보는 아이도 있었는데 학교를 통틀어 보면 활동 보조사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나는 제하를 교실에 들여보내고 학부모 대기실이나 학교 밖 카페에서 대기했다가 두 차례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러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하고 간식을 먹이기도 했다.
간식시간에는 우유나 요플레가 나온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순식간에 꿀꺽 마셔버릴 양이지만 제하에게 쉬는 시간은 너무 짧기에 맛만 본다. 생우유를 처음 맛본 제하는 입을 뻐끔뻐끔하며 잘 먹었다. 점심시간에는 일반식이나 죽 중에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형태로 급식이 나왔다. 위루관으로 피딩하는 아이는 유동식 등 기존에 먹던 것을 집에서 가져온다. 교실에서 아이들 점심을 먹이며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마음이 편했다. 첫날은 선배 엄마가 점심을 사주면서 학교생활과 관련한 이런저런 팁을 많이 알려줬다. 이런 것도 학교생활의 묘미였다.

동생이 학교 가니까 나도 좋아

등교할 때 처음에는 첫째를 먼저 유치원에 등원시킨 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제하와 학교에 갔다. 어떨 땐 콜택시가 너무 빨리 배차돼서 아이와 유치원까지 뛰어야 하고, 어떨 땐 너무 늦게 와서 학교에 지각하기도 했다. 치료실에 지각하는 것은 우리만 손해 보면 되지만 학교는 다른 친구의 수업까지 방해하는 것이 되기에 늦는 날은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유치원까지는 걸어서 10분, 학교까지는 차로 10분도 안 걸리지만 콜택시가 언제 배차될지 모르니 아침마다 전전긍긍 1분 1초가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선배 엄마가 아이만 먼저 통학버스에 태워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다.
<스쿨버스에 타는 동생을 지켜보는 형>
제하가 혼자 버스 타는 것을 처음으로 지켜본 날, 쌍둥이 형이 나보다 더 신이 났다. 리프트를 타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마치 제하가 계단을 직접 걸어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기사님께 꾸벅 인사까지 했다. “제하가 버스에서 내가 손 흔드는 거 봤겠지?” 버스가 코너를 돌아 우리를 지나가자 그제야 유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으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간지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엄마, 제하가 버스 타는 모습이 자꾸 생각나.”,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 “제하도 버스에서 친구들이랑 재잘재잘하면서 가겠지?”, “제하가 나처럼 유치원에 가다니.” “제하 좋겠다, 처음으로 버스 탔잖아!”
늘 누워있던, 엄마 아빠나 돌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던 제하가 (물론 통학버스 실무사 선생님과 기사님이 도와줬지만) 혼자 버스에 오르는 그 모습이 형에겐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고 기뻤나 보다. 그 복합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피어올라 웃음을 멈출 수 없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니 제하가 학교에 가는 것이 온 가족의 기쁨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제하 형은 동생의 장애에 대해 나에게 원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제하를 아프게 낳았어?! 나랑 놀지도 못하게.” 그러다가도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인지,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하처럼 예쁘게 웃는 사람은 없을걸?” 제하가 울고 웃고 목소리를 내고 뭔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부모인 나에게만 기쁨인 줄 알았는데 이 어린아이도 응원하고 있던 것이다. 제하야, 너의 학교생활을 엄마아빠가, 그리고 형이 함께 응원해!
제하야, 너의 학교생활을 엄마아빠가, 그리고 형이 함께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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