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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I2024-12-12T17:14:14+09:00

글 : 김지영

엄마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출산할 때 지름 3cm 크기의 자궁근종이 있었다. 근종이야 여자들에겐 흔한 것이니 큰 걱정이 없었고 의사의 지시대로 1년에 한 번 추적 검사를 받았다. 근종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커지더니 4년 동안 8cm로 자라났고 자잘한 것들도 새로 생겼다. 7cm쯤 됐을 때 검진센터에서 수술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급한 건 아니라고 했고, 나는 제하 돌봄 문제가 걱정되어 좀 더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극심한 생리통이나 과다 출혈과 같은 증상이 심하면 당장 수술을 알아봤을 텐데 속이 더부룩한 것 외에는 크게 불편한 증상이 없어서 참을 만했다. 그리고 1년 뒤, 담당 의사 진료가 밀려 다른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는데 이 의사는 왜 혹을 키우고 있냐고 버럭 화를 내며 위치가 안 좋으니 빨리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보다 아이가 먼저

집 근처 종합병원에 갔다. 의사가 위치가 좋지 않아 근종만 제거하긴 어렵다며 자궁 적출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내가 출산했던 더 큰 병원으로 갔다. 여기서는 근종만 제거하려면 개복해야 하고, 적출은 복강경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나이도 젊은데 근종만 제거하고 자궁을 살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내 몸보다 아이 돌봄 문제가 가장 걱정이었던 나에게는 회복 기간이 짧은 방법이 1순위였기에 적출을 하더라도 복강경이 최선이었다.
“하나 더 낳고 싶을 것 같은데…” 아이가 둘인데 하나는 장애가 있다는 말에 의사는 본인이 가장 권하고 싶은 안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당시 나도 아이를 더 낳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기에 조금 망설였다. 이를 눈치챈 의사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지 않았고 암이 아니라서 급하지 않으니 4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밤에도 아이를 돌봐야 해서 아직까지 통잠을 못 자는데 임신하면 그 영향이 아기에게 가지 않을까요?” 넉 달 뒤에도 임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 질문에 의사는 전쟁통에도 다들 멀쩡하게 낳았다며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진료에서도 수술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고 또 4개월 뒤에 보기로 했다. 세 번째 진료에서 나는 단호하게 출산 계획이 없다고 했다. 낳으려면 진작에 낳아야 했는데… 이제 내가 체력이 달려서 더 낳아도 키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자궁 적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사이 근종은 조금 더 커져서 9cm가 되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걱정

근종은 제거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 자라날 수 있어서 출산 계획만 없다면 자궁 적출이 최선이라고 한다. 의사는 암이 아니라서 난소를 살릴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ㅡ조기 폐경으로 인한 호르몬 문제 등ㅡ도 없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생리를 안 할 수 있다니! 체중도 줄겠는걸? 나는 요즘 유행하는 ‘원영적 사고’를 장착한 채 수술 날짜만 기다렸다.
이른둥이, 중증중복장애, 발달장애… 아이와 관련한 커뮤니티는 그렇게 많이 가입했으면서 자궁 근종과 관련한 정보는 따로 찾아보지도 않았다. 아이가 개복 수술을 몇 번이나 해서일까, 내 수술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의사 말대로 하면 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병원에서 며칠 실컷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까지 되었다. 그런데 수술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점점 신경이 쓰였다.
뒤늦게 관련 카페에 가입해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수술을 앞둔 이들은 걱정돼서 잠이 안 온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질문하며 두려워했고 적출 후 후유증이 있다는 글도 꽤 많이 보였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허리도 아프고, 또 아무리 복강경이라도 수술 후 최소 3개월은 5kg 넘는 물건을 들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퇴원 후 다시 요양병원에 한 달 입원해서 쉰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퇴원하면 일상으로 바로 복귀해야 하고 18kg에 달하는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데… 게다가 주말부부라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출산 계획이 없으니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어찌 되었든 내 몸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던 자궁이 빠져나간다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야 우리 아이도 산다

수술 한 달 전, 타병원에서 자궁경부암 검사결과지를 받아 내야 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들렀다. 나는 습관처럼 내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고 이야기를 듣던 의사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비수술적 치료법인 색전술을 하는 병원을 추천해 준 것이다. 색전술은 근종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영양과 산소 공급을 차단해 괴사시키는 방법으로, 2박 3일만 입원하면 되고 보호자도 필요 없었다. 그 방법이 가능하다면 아이 돌봄 문제도, 내 몸에 대한 걱정도 해소였다. 만세!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병원을 나서면서 곧바로 추천받은 곳에 전화를 해보았고 다행히 이틀 뒤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진료를 통해 시술 가능 여부 확인 후 입원 날짜를 정하고 기존 수술은 취소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오늘 오전 시술을 끝내고 병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이 퇴원이다.
자궁적출술을 했다면 원래 계획은 이랬다. 먼저 입원 동안 시어머니가 내 보호자로, 남편은 연차를 쓰고 아이들을 돌본다. 약 일주일 뒤 나도 퇴원하고 남편이 일터에 복귀할 때가 되면 제하를 도토리하우스에 일주일 맡긴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도토리하우스는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소아청소년 환자의 단기 돌봄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 기간에는 내 몸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집안일을 한다. 하지만 도토리하우스에는 아이를 한 번에 일주일 이상 맡길 수도 없고, 재활치료를 길게 쉴 수도 없어서 일주일 뒤부터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 달도 쉬지 못한 채 회복이 덜 된 상태로 아이를 들어올려야 하기에 차선책으로 보조기기 센터에 이동식 리프트 대여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당연히 대기가 길었지만 일단 이름을 올려두었다. 혹은 내년부터는 아이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서 돌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니 수술을 내년 이후로 미룰 수도 있었다.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짱돌을 굴러보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 돌봄 문제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등한시하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병은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가 쉽고 늦게 발견할수록 치료가 어렵다. 우리는 이 당연한 이야기를 알면서도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도움받을 곳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고, 더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치료를 시작한다. 나는 자궁 적출의 문턱에서 운 좋게 다른 방법을 찾았지만,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뻔했다. 나보다 아이가 먼저? 이제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야 아이가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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