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컬러풀브레인친구 대표 차예진
새로운 학년이 시작하는 날,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지는 초등학생들이 있는 교실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리고 아래의 학생 소개를 같이 들어보자.
“안녕? 나는 고지능을 가진 OOO라고 해. 나는 수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이 자기소개를 읽는 독자분들께서는 실제로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가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실 수 있겠다. 자 그럼 ‘고지능’을 ‘고기능 자폐’로 바꾸어 읽어보겠다.
“안녕? 나는 고기능 자폐를 가진 OOO라고 해. 나는 수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대상화의 한계
개인이 가지는 능력 혹은 기술 중 하나의 지표로 사람을 보여줄 수 없듯이 높은 지능지수만으로 개인을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이와 동일하게 ‘고기능자폐’라는 것은 오티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 중 일부분을 설명하지만 대상화한다는 한계 또한 가지고 있다.
일명 고기능 자폐라고 불리는 지능지수는 높지만, 여전히 감각적인 처리의 어려움과 사회적 맥락의 파악이 어려워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고기능 자폐’의 네이밍이 주는 선입견으로 다 잘할 것 같아 특별한 지원이 필요 없어 보이게 되는 역효과가 존재할 수 있다.
기능별 분류의 문제
2013년 발표된 의학적 진단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 에는 필요한 지원의 정도를 명시한 3가지 레벨의 오티즘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기능, 저기능, 경증, 중증, 최중증 등의 개인의 능력과 기능을 ‘평가’하는 분류로 오티즘을 나누어 지칭하는 의학적 진단외의 여러 사례를 볼 수 있다.
실제 미국의 자폐 자기옹호 네트워크 (ASAN: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에서 2021년 “기능별로 분류하는 것은 오티즘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Functioning labels harm autistic people -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 (2021, December 9).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 https://autisticadvocacy.org/2021/12/functioning-labels-harm-autistic-people/ )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특히 기능이 낮은 ‘최중증 자폐’(profound autism)를 가진 사람이 왜 지원이 필요한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사회적 낙인효과
고기능, 저기능의 기능별 분류 레이블은 당사자가 때때로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방해 요소가 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잘못된 낙인효과가 생성되는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자폐는 질병이 아닙니다: 신경다양성의 정치학」 (「Autism is not a Disease: The Politics of Neurodiversity」)의 저자인 Jodie Hare는 ‘고기능(high-functioning)’의 라벨이 오티즘 당사자에게 ‘숨이 막히고’(suffocating), 실제 지원이 필요하게 되는 시기에 ‘수치스럽게’(feel ashamed) 느끼게 되는 감정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동감한다고 회고하였다. Hare, J., (2024), Autism is not a disease: the Politics of Neurodiversity, Verso, London, p.22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
시각장애인에게 왜 못 보냐고 하지 않고, 청각장애인에 왜 못 듣냐고 하지 않듯이, 오티즘을 가진 발달장애인에게 왜 의사 표현을 못하냐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오티즘의 특성상, 적어도 첫인상이 결정되는 자기소개에서 고기능, 저기능 자폐로 소개해 주기보단, 당사자가 필요한 지원의 정도인 ‘고지원 필요’, ‘저지원 필요’ 오티즘이라고 타이틀을 바꾸어 말하면 어떨까? 이는 사회 구성원이 오티즘 당사자를 판단하고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대신 당사자에게 맞는 지원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맞춰갈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자료
Hare, J., (2024), Autism is not a disease: the politics of neurodiversity, Verso, London.
Rudy, L. J. (2024, October 25). What Is High Functioning Autism? Verywell Health. https://www.verywellhealth.com/why-high-functioning-autism-is-so-challenging-259951.
Functioning labels harm autistic people –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 (2021, December 9).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 https://autisticadvocacy.org/2021/12/functioning-labels-harm-autistic-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