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글 : 컬러풀브레인친구 대표 차예진

집에 다 왔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 바로 엘리베이터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같은 통로 어느 집의 저녁 메뉴도 가늠이 가능하다.
분명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느 날은 치킨 냄새가 가득한 공간을 마주하고(심지어 브랜드도 맞출 정도의 밀도감), 어느 날은 피자를 먹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렸을 때 과학 시간에 배웠던 분자의 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러한 네모의 공간은 밤톨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공간이다.
자신의 눈높이와 딱 맞는 곳에 좋아하는 숫자가 같은 크기로, 같은 간격으로, 같은 모양으로, 게다가 불도 들어오는 옵션까지 지닌 채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까이서 보기 위해 층수 숫자판에 딱 붙어서 집까지 가는 중 되뇌이는 밤톨이에게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2가지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① 메아리요정

밤톨이의 또 다른 별명은 메아리 요정이다.
그것도 시간차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한 기능적 메아리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바로 반응하는 즉각적 메아리, 언제적 메아린지 모르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갑툭튀 메아리 등 여러 가지 버전의 메아리를 보유하고 있다.
엄마인 내가 말하면 그대로 똑같이 복사해서 말하는 무지개 반사 기술을 의사소통의 기술로 사용하는 밤톨이는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즐겨말하는 메아리를 하나 꺼내서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다음은 밤톨이의 갑작스런 메아리, 뒤따르는 말은 엄마인 나의 말이다.
“삐삐이이” “어~~ 삐아빵야(밤톨이가 좋아하는 병아리 캐릭터) 보고싶었어?”
“아니야 그건 세모잖아!!!” “맞아~~ (사람들이 타기 전부터 이 주제로 대화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밤톨이가 맞아~”
“감 먹을까?”(한여름임) “감은 나중에 먹고 집에 가서 수박 먹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맥에 맞춰(?) 밤톨이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하는 나의 모습이 웃픈 순간이 있다.

② K-나이 문화

한국인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K-나이 문화!

인지심리학자이신 김경일 교수님에 따르면 한국인이 상대방의 나이를 물어보는 이유는 무례하지 않게 상대방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언어를 정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주민분들께서 머리카락 송송 밤톨이의 모습을 귀여워하시며 애정 어린 질문을 던지신다.
“너 몇 살이야~?”

밤톨이는 열 번에 아홉은 대답을 안 하거나 한번은 말을 따라하는 편이다.
어른들이 물어보는 경우엔 엄마인 내가 답을 하면서 조금 있다 내리면 되는데 또래처럼 보이는 아이들이나 조금 더 어린 동생들이 몇 살인지 물어오면 밤톨이랑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눈에 밟혀 마음이 허허롭다.

미리 “죄송합니다” 장착완료

밤톨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의 몸 어디를 쿡 찌르면 0.1초만에 나오는 말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가 되었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말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아무런 피해가 없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내가 미안해 하는게 맞는 것 같은 난제 같은 상황이 종종 생긴 후부터 날선 눈빛에 다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매일이 바쁜 시간으로 흘러가다보니 지나간 감정에 대해 곱씹거나 재고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 민경혜 작가님께서 쓰신 『세상의▁▁▁▁▁▁모든 연두』 책을 읽으며 그때의 감정에 대해 거울을 비춰볼 기회를 얻었다.

...<중략>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한 일이야. 미안해서는 안되는 일인데, 미안한 일이 되어버리거지. 그냥 그런 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 p.130
엘리베이터를 탄 것 같은 별 미안할 이유가 없는데 생기는 쓸데없는 미안함.

p.133-134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은 이색적이고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다 함께 서로 미안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로 한 발짝씩 다가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컬러풀브레인친구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행복한 엘리베이터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

집에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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