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 우리 아이를 위한 학교? 특수학교 순회학급에서 통학을 선택하기까지

글 : 김지영

어린이집 도움반? 장애전담 어린이집? 통합 유치원? 특수학교 유치부?
제하의 첫 보육/교육 기관을 고를 때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석션, 피딩 등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라
아무리 도움반이라 해도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무리였고,
장애전담 어린이집은 서울에 10곳 내외로 숫자가 너무 적어 경쟁이 치열했다.
처음에는 선택지가 많아 보였지만 현실적으로 가기 어려운 곳을 하나둘씩 줄여가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특수학교로 좁혀졌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될까

벌써 특수학교에 들어가야 해? 특수학교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면 고민하게 될 문제인 줄 알았는데, 특수학교 또한 경쟁률이 높아서 유치부로 입학하지 않으면 나중엔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육 기관 아닌가. 제하가 특수학교 말고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보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잘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서 뭘 배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제하는 공식적으로 뇌병변과 지적장애 등급만 받았지만 사실상 지체장애와 시각장애 등 여러 장애를 동반하고 있다.
“저희 아이는 목도 못 가누고, 기관절개관에 위루관도 있는데 입학해도 될까요?”
입학 원서를 쓰기 전에 1지망 학교에 전화해 봤더니 교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럼요! 우리 학교에는 거의 다 그런 친구들이에요!”
재활치료 시간
장애 유형별로 나뉘는 특수학교 중에서 지체 및 중도중복장애 특수학교를 선택했다. 왜 이 학교여야만 하는지 입학원서에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쓰고, 달리 갈만한 곳도 없었거니와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주기 위해 2지망은 아예 비운 채로 제출했다.
유치부 예비 소집일에 제하와 같이 처음으로 학교에 가보았다. 생각보다 참석한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아이를 데려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학교와 수업에 대한 안내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다행히 제하는 유모차에서 잘 기다려주었다.
그때 앞으로 학교 수업은 쭉 재택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교실 스피커에서 커다란 소리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 것이다. 평소 소리가 크지 않은 아파트 안내 방송에도 놀라는 제하는 큰 소리에 놀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으앙으앙 울었다.
‘제하가 학교 다니는 건 어렵겠구나'.

순회학급 학생의 생활

제하는 특수학교 유치부의 순회학급으로 입학했다. 순회학급은 통학이 어려운 학생이 있는 집이나 병원으로 특수교사가 방문해서 수업을 해준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제하는 주 2회, 한 번에 90분씩 수업을 듣는다. 제하는 교육보다 재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수업 시간을 요리조리 피해 치료 일정으로 일주일을 꽉 채웠다.
수업 준비 완료!
수업이 있는 날은 선생님이 오기 전에 제하를 자세 보조 의자에 앉히고 테이블을 세팅해서 미리 준비를 해둔다. 식사 시간이 겹치면 위루관으로 피딩을 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방문을 닫고 거실에 대기하고 있다가 한 번씩 방에 들어가 석션을 해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한다.
그 외에 수업이 진행되는 1시간 반 동안 엄마는 숨을 돌릴 수 있다.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밖에서 운동하고 온다는 엄마도 있던데 원칙적으로는 보호자가 집에 있어야 한다.
뇌성시각장애가 있는 제하를 위해 선생님이 만들어온 수업 교구
순회학급도 통학하는 학생과 마찬가지로 개별화 교육 회의를 통해 아이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 계획을 수립하여 수업에 반영한다. 제하의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이런저런 교재며 교구로 짐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제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들려준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거실에까지 들린다.
우유는 집으로 배달 오고 급식비는 통장으로 입금되는 등 교육 외적인 것들도 동일한 수준으로 지원된다. 이에 대한 공지는 학교 공지 시스템인 e알리미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도 있고 교사가 신청서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통학을 선택한 이유

그렇게 순회학급으로 졸업까지 쭉 갈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여러 말이 들려왔다.
“성인이 되고 나니 학교 다녔을 때가 아이한테는 가장 좋았던 것 같아.”
“학교에 보내면 엄마도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
“어릴 때는 또래랑 시간 보내는 게 제일 좋아.”
나는 워낙에 팔랑귀인 데다가 선배 엄마들의 조언만큼 값진 것도 없기에 그런 말들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 짧은 생각으로 아이가 행복할 권리를 빼앗아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년, 남은 유치부 1년부터는 통학에 도전해 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수교육지원센터 영아교실 수료식에서
아이에게 통학은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학교에서 좁게나마 사회생활을 겪어보고, 또래 친구를 만나고, 치료실과 집만 반복해서 오가던 것과 다른 생활 패턴을 경험하는 것이다. 평생 갇혀서 지낼 것이 아니라면 잘 보지 못한다고, 소리에 잘 놀란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세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를 통해 그동안 엄마가 보여주지 못한 세상을 만나다 보면 눈을 더 크게 뜨게 될 것이고 예민한 감각도 무뎌지게 되겠지. 무엇보다 학교에서 아이 스스로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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