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치료나 병원 진료 등으로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데 버스나 지하철은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에게 버스와 지하철은 대중교통이 아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2023년 1월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됐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이 쉽게 버스를 탈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고 바닥을 낮게 만든 버스다. 그런데 정작 장애인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승하차를 위한 경사판을 설치하려면 버스를 보도에 바짝 대야 하고, 버스 기사가 내려서 도와줘야 하고, 교통약자석에 휠체어를 고정하는 등 걷지 못하는 장애인 한 명이 올라타고 다시 출발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5분 이상 걸린다. 바쁜 시간에는 버스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도 없거니와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기사도 경험이 많지 않으니 승하차에 애를 먹기도 하고 정류소 자체가 저상버스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많다.
지하철은 몇 번 타봤는데 출발, 도착할 때 나는 특유의 기계음 때문에 제하가 땀을 흘릴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며 울어서 더 이상 시도할 수가 없었다. 휠체어 전용 공간에 서 있으면 굳이 와서 제하를 들여다 보며 쯧쯧 혀를 차고 참견하는 어르신들의 시선도 한몫했다.
장애인 콜택시, 이래서 좋다
장애인콜택시(이하 장콜)는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장애인 복지 혜택으로, 보행상 장애가 있는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등이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요금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서울시장애인콜택시의 경우 기본요금은 2024년 6월 기준 5km까지 1,500원이며 5km 초과 시 10km까지는 2,900원(km당 280원), 10km 초과 시 km당 70원이다. 시간이나 지역 할증도 없다. 집에서 25분 거리의 치료실까지 1,700원정도 나온다. 한 달 이용료로 따져봤더니 일반택시 대비 10배 이상 절약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휠체어 이용 승객에게는 슬로프를 장착한 차가 배차된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접지 않고, 아이를 태운 상태 그대로 승차할 수 있다. 처음엔 제하를 뒷자리에 혼자 두는 게 어색해서 유모차만 뒤에 싣고 아이를 안고 탔는데, 안았을 때 아이 머리가 내 머리를 넘어설 정도로 자라나니 나도 힘들고 아이의 자세도 흐트러지는 데다 안전벨트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위험하게 느껴졌다. 장애인 유모차를 들인 뒤로는 흔들리는 차에서도 안정감 있을 것 같아서 제하를 유모차에 태운 상태로 탑승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제하도 편안해 보였다.
세 번째, 온 가족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장애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나 동반가족도 최대 3명까지 탈 수 있어서 주말에는 우리 가족 넷이 장콜을 타고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제하를 안고 유모차에서 카시트로, 카시트에서 유모차로 이동하지 않아도, 무거운 유모차를 접었다 폈다 하지 않아도, 주차장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다.
택시 기사님과 에피소드
마지막 장점은 승하차 시 경험 많은 기사님이 친절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일반 택시 기사는 장애인 승객을 태운 경험이 별로 없기도 하고 딱히 도와줄 필요성을 못 느끼는지 트렁크 열림 버튼만 눌러줄 뿐, 대부분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았다. 장콜 대기가 너무 길어서 어쩌다 일반택시를 탈 때면 나 혼자 제하를 안아 올려서 차 안에 눕혀놓고, 유모차를 접어서 트렁크에 넣는다. 내가 혼자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장콜은 기본적으로 기사님이 다 해주신다.
매일 같이 장콜을 이용한 만큼 그동안 많은 기사님을 만났다. 할아버지, 청년, 아주머니 등 성별도 연령도 다양하고 에피소드도 많이 쌓였다. 같은 기사님을 두 번 이상 만난 적도 더러 있는데 제하가 아기일 때 본 분은 몇 년 만에 만난 제하의 이름이 기억난다며 많이 컸다고 놀랐다.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것을 알고 축하해준 기사님도 있었다.
처음 만난 장콜 기사님의 말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렇게 어리고 예쁜 아기가 어디가 아프냐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왜 소송 안 했냐, 남편은 가만히 있었냐는 둥 기사가 나 대신 진심으로 화를 내주었다. 그때까진 모든 걸 아이를 작고 약하게 낳은 내 탓으로 여겼는데 우습게도 그 기사님 덕분에 그런 생각을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도 장애가 있는데 성인으로 키워놓고 이 일을 하게 됐다던 할아버지 기사님.
옛날엔 장애인 복지가 없다시피 해서 아픈 아이 키우는 데 아파트 몇 채는 해 먹었다고 했다. 지금은 복지가 비교적 잘 되어있으니 젊은 엄마는 힘내라며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혼자 고생 고생하며 두 딸을 키웠다는 아주머니는 다들 평범해 보여도 힘들게 산다고, 그러니 나만 힘들다는 생각 하지 말라며 용기를 주셨다.
장콜을 운행해 보니 세상에 아픈 아이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아프다던 아저씨 기사님.
한편으로는 요즘 택시는 길에서 잡기보다 전화나 앱을 통해 불러서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휴대전화 사용이 어려워서 길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르신이 많아 마음이 짠하다며, 또 다른 교통약자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했다.
치료실 다니다 보면 시간을 놓쳐서 굶고 다니기가 부지기수다. 그런 나에게 밥 먹었냐며 간식을 주던 아주머니 기사님. 운전하다 보면 입이 심심해서 주전부리를 늘 챙겨 다니는데 넉넉하게 가져와서 나눠 먹곤 한다며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던 고마운 손길에 마음이 종일 따뜻했다.
택시 안에 갖가지 조화를 달아 예쁘게 꾸며놓은 아저씨 기사님도 있었다. 탑승 후 스위치를 누르니 줄전구까지 반짝반짝 빛났는데 순간 아저씨가 마술사처럼 보였다. 달리는 내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도 틀어줬다. 치료실에 가는 길이었지만 마치 놀이공원으로 나들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애인 콜택시 이용 팁
장콜을 부를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전체 대기, 주변 대기 숫자를 고려해야 한다. 주변 대기 인원이 많아도 전체 대기가 적으면 비교적 빨리 배차되고, 반대로 주변 대기 인원이 적어도 전체 대기가 많으면 배차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평균 배차시간은 최근 이용객이 갑자기 늘어나는 시간대에는 실시간 반영이 잘되지 않아 무시하는 게 낫다.
장콜은 아침 출근 시간, 그리고 기사 교대 시간인 3시부터 퇴근 시간까지 이용객이 가장 많다. 또, 주말에는 대기 인원이 얼마 없더라도 운행하는 차량 대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평일보다 일찍 신청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자잘한 것들을 잘 몰라서 택시가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배차되어 콜을 취소하고 일반 택시를 이용한 적이 많았다. 직접 이용해 보면서 감을 잡는 수밖에 없다.
장콜 초보 시절, 대기가 길어 도저히 제시간에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아 일반택시를 한 달에 세 번은 탔다. 편하지도 않은데 제 돈 주고 타는 게 어찌나 아깝던지. 이런 경우에는 바우처택시를 이용하면 가까운 거리의 일반 택시(티머니 온다택시)를 장애인콜택시와 동일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 대비 차량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로 지난해 10월 바우처택시가 확대 운영된 것이다. 다만 비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것이므로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할 경우 접어서 탈 수 있어야 한다. 서울장애인콜택시 이동지원센터(1588-4388)를 통한 전화 접수만 가능하고, 상담원에게 '바우처택시'를 이용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아이 낳기 전에는 택시를 타면 기사가 말을 걸까 봐 바로 눈을 감아버리거나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정치나 종교,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어서 아예 대화를 차단한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콜택시는 달랐다. 오히려 내가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하고,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말에 하루의 시름을 털어버리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