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화 통화를 하면 대부분 “어디야?”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한다. 오후 시간대에 영유아, 학령기 자녀가 있는 양육자가 듣고, 말했던 몇 가지 답변을 모아보자면,
① 어디야? 응 나 문센 (문화센터)
② 어디야? 응 나 애프터 (영어유치원의 방과후를 뜻한다) 끝나서 데리러 왔어~
③ 어디야? 응 나 학원 (피아노, 미술, 줄넘기 등등)
④ 어디야? 응 나 센터 (여러 가지 치료를 한 곳에서 받을 수 있는 발달센터를 뜻한다.)
⑤ 어디야? 응 나 언치(언어치료), 놀치(놀이치료), 감통(감각통합치료) 왔어.
어느 날 나는 ⑤번 행선지를 말했을 뿐인데 해리포터에 나오는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먹은 듯 생경하고 이질적이고 느낌이 입 속에 남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자폐를 비롯한 발달 장애는 치료한다고 ‘낫는’ 병이 아닌데 모두 다 ‘치료’라고 하니 나도 덩달아 ‘치료’라고 지칭하게 된 것이다.
‘치료’라는 말이 주는 희망 고문
한번은 언어치료실에서 아이의 보호자로 뵈었던 할머니께서 분통을 터트리며 치료사 선생님께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6개월 동안 치료를 했는데 왜 애가 말을 못 하냐고 선생님께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고 계셨는데 당황한 치료사 선생님도 마음이 쓰이고 할머니의 답답한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치료’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치료(治療)’의 의미는 병을 낫게 하는, 병이 없어지게 하는 완치의 의미에서의 행위를 뜻한다. 외국에서의 발달 장애 아이들을 위한 치료는 ‘Cure’의 병이 낫게 하는 치료가 아닌 오늘보다 나은 내일,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완화와 재활의 의미를 담은 ‘Therapy’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치료사 선생님들의 직함도 ‘Curer’가 아닌 ‘Therapist’이다. 발달 장애는 사람의 생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어려움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치료’의 뉘앙스가 완치, 즉 정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 ‘치료’해서 ‘낫게’ 하여 장애를 없앤다는 의미가 발달 장애 가족, 사회구성원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턴시커(Pattern Seeker)』 의 저자인 사이먼 배런코언은 ‘자폐’는 4D에 모두 해당한다고 보았다. 자폐는 즉, 다름(Difference)이자 장애(Disability)이며, 이상(Disorder)이자 질병(Disease)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를 양육하며 발달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서 간지럽던 등을 효자손으로 긁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4D에 관해 설명한 부분을 발췌하였다. (p. 280-281, 『패턴시커』, 사이먼배런코언, 강병철옮김, 디플롯)
■ 다름(Difference) - 어느 쪽이 정상이고 어느 쪽이 비정상이라 할 수 없다. ex) 덴마크의 한 자폐인은 민물고기, 바닷고기를 예로 들었다.
■ 장애(Disability) – 특정한 능력이 평균 이하이거나, 일상 생활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 있어서 지원이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 이상(Disorder) –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름으로 인해 한 가지 이상의 측면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 질병(Disease) – 증상이 고통을 일으키며 원인이 분명히 밝혀진 경우이다.
'이상'과 '질병', '다름'과 '장애'
‘이상’과 ‘질병’은 치료해서 고통을 없애는 것이지만 ‘다름’과 ‘장애’는 치료해서 부정적인 면을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하고 ‘장애’는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4가지의 특성을 모두 가지는 오티즘의 지원 방법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인 용어가 있다면 이상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자폐 및 발달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시대를 걸쳐 진화하였듯이 신경 다양성의 특징과 함께 매일을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인 단어가 언젠가 등장하리라 믿는다.
컬러풀브레인친구는 신경 다양성의 개념을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뇌 신경의 연결이 다양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나타나는 신경 다양성을 남녀노소 누구나 알기 쉽게 뇌의 다채로움이라는 의미인 ‘컬러풀브레인친구’라고 명명하였다. 우리 아이들의 지원을 Cure의 치료가 아닌 새로운 용어로 표현하는 하나의 제안을 해보려고 한다. 치료(治療)의 한자어는 다스릴 ‘치’에 고칠 ‘료’이다. 발달 장애는 일상적인 ‘활동(活動)’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다스릴 ‘치’와 살 ‘활’을 조합한, 사는 것을 다스리는 ‘치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