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지영
아이가 태어나면 걷고, 잡고, 말하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누워서 지내는 중증 뇌병변 장애 아이에게는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고개도 못 가누는 아이의 자세와 움직임을 내 팔다리로 보조해 주다 보니 나까지 허리며 어깨며 여기저기 삐그덕거렸다. 그나마 기댈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애인 보조기기였다. 장애 당사자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보호자를 위한 것까지. 장애 유형과 운동 능력 등에 따라 다양한 용도의 보조기기가 있다. 한편 종류가 무궁무진한 만큼 우리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어떤 것인지 몰라서 헤맬 수도 있다. 오늘은 뇌병변 심한장애인 다섯 살짜리 우리 아이가 사용해온 보조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유아동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조기기
내가 처음으로 보조기기를 접했던 것은 '장애인 보조기기 렌탈 서비스'('렌탈 바우처'라고도 한다)를 신청할 때였다.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도 잠시,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1. 피더시트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내가 아이를 돌볼 때 가장 힘든 게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밥을 먹일 때였다. 고개를 못 가누는 아이를 왼팔에 안고 오른손으로 이유식을 먹였는데 한 끼 먹는데 30분에서 1시간은 걸렸고, 강직이 있는 아이라 먹는 내내 뒤로 뻗쳐서 왼쪽 팔, 어깨와 등 전체에 통증이 있었다. 당시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내 등을 본 선생님은 왼쪽 등 근육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굳어있다고 했다. 한편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지하는 팔에 힘이 빠지니 아이의 자세 또한 거의 눕다시피 하거나 고개가 자꾸 젖혀져서 기도 흡인의 위험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우리 아이의 첫 보조기기는 앉기 자세 유지를 위한 피더시트(feeder seat)였다. 재활치료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란색 의자인데 이름처럼 식사나 놀이, 학습 시간에 휠체어를 대신해 앉아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부드러운 재질이라 앉았을 때 편하면서도 자세를 잘 잡아주어 근 긴장도가 높은 아이에게 좋은 의자다. 이물질이 묻으면 물티슈로 닦거나 물로 간편하게 씻을 수도 있어 자주 토하고 기저귀 밖으로 변이 새는 우리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2. 장애인 카시트, 유모차 - 아동용 보조기기
외출할 때 일반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면 고개가 떨어졌다 젖히기를 반복하고 허리가 휘는 등 차의 움직임에 따라 자세가 무너졌다. 반면 장애인용 카시트는 등과 허리에 패드가 있고 벨트도 복부 전체를 감싸는 모양이라 아이를 안정감 있게 잡아주었다. 다만 초반에 고개가 떨어지는 것이 잘 잡히지 않아서 시중에 판매하는 머리 고정 벨트나 목베개를 함께 사용했다.
이동용 보조기기로 유모차형 휠체어(장애인 유모차)도 빼놓을 수 없다. 장애 아동의 자세를 잘 잡아주도록 설계되어 있어 단순히 이동뿐 아니라 신체 변형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 유모차형 휠체어는 대표 제품을 한두 개로 좁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종류가 많은데 아이의 상태나 생활 환경에 따라 최소 요구사항을 정하고 하나씩 따져보면서 고르면 된다. 180도로 펴져서(리클라이닝 기능) 유모차에서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지, 체간을 잘 잡아주는지, 접어서 차에 실을 수 있는지, 쉽고 빠르게 각도를 조절하고 접을 수 있는지, 여자 혼자 들 수 있는 무게인지, 디럭스 유모차 수준으로 몸체와 바퀴가 안정적인지, 핸들링이 좋은지, 특히 산소발생기와 석션기 등 짐이 많은 아이의 경우 짐을 실을 공간이 충분한지 등을 조건으로 꼽을 수 있다. 나는 리클라이닝 기능과 우리 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지를 최소 조건으로 유모차를 선택했다.

3. 발목 보조기, 기립기 - 보행 및 서기 보조기기
서서 걷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아이만 발목 보조기(단하지 보조기)를 착용하는 건 아니다. 발과 발목의 변형과 구축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거나 서기 훈련을 할 때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발목 보조기를 착용한다. 우리 아이는 평소에는 쓰지 않고 기립기에서 서기 훈련할 때만 착용한다. 기립기(기립 보조기기, 스탠더 라고도 한다)는 스스로 서거나 걷지 못하는 아이의 근력과 뼈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실에 기립기가 없는 경우도 있고, 있더라도 치료 전이나 후에 30분씩 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집에 들이게 되었다. 아이가 고개를 가눌 수 있다면 받침이 앞에 있는 전방기립기, 가눌 수 없다면 받침이 뒤에 있는 후방기립기를 선택한다.

4. 휴대용 의자 - 앉기 자세 유지 보조기기
우리의 첫 보조기기인 피더시트를 슬슬 바꿀 때가 되었다. 제하 몸집이 커졌을 뿐 아니라 이동하려면 아이를 들어서 바닥에 눕혀놓고, 피더시트를 옮긴 후 다시 아이를 안고 가서 피더시트에 앉혀야 했다. 피더시트도 아이도 둘 다 무거운데 이걸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한다. 또 부피가 큰 피더시트는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명절에 친척 집에 가거나 여행 가서 실내에 머물게 되면 삼시세끼 아이를 안고 밥을 먹여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실내용 유모차를 따로 살 수도 없고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휴대용 자세 보조 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퀴가 달려있어 앉은 상태로 이동할 수 있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손잡이만 없을 뿐 형태와 기능이 유모차와 비슷하다.
5. 기타 자세 유지 보조기기
아이가 커가면서 추가로 들인 것들은 대부분 신체 변형을 예방하면서 다양한 자세를 도와주는 자세유지 보조기기이다. 엎드린 자세유지를 보조해 주는 '웻지(wedge)'는 경사가 있는 지지대로 평평한 맨바닥에서 이른바 '터미 타임(Tummy time)'을 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환경적으로 난이도를 낮춰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서서 기립기 훈련을 할 때나 피더시트에 앉아있을 때마다 한쪽으로 고개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머리 지지대인 '헤드 마스터칼라(Head mastercollar)'를 써보기도 했다. 푹신한 매트와 다양한 형태의 쿠션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세지지시스템'은 찍찍이로 탈부착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조합으로 아이가 다양한 자세를 잡는 것을 도와준다. 척추측만과 고관절탈구 예방을 위해 누워있을 때도 쿠션형 제품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