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적어도 한 번은 이사할 일이 생긴다. 우리에게는 제하가 특수학교에 입학할 때 그 시기가 찾아왔다. 특수학교 입학 심사에는 아이의 장애 유형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만, 지원자 대부분이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에 거주지가 학교와 가까운 사람을 우선으로 배치하게 된다. 당시 살던 곳 부근에는 특수학교가 없었기에 이사가 불가피해서 원서를 내기 전에 이사할 곳을 먼저 알아봤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이사는 단순히 집과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 이상이었다. 매일 다니는 치료실, 연계된 기관과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어디로 이사해야 할까?
일반적인 가정에서 고려하는 집값, 주변 환경 외에 우리가 살펴본 기준은 아래와 같다.
- 아이가 다닐 특수학교와 가까운가?
- 주변에 재활치료, 장애인 복지 시설이 있는가?
- 아이가 주로 이용하는 의료 기관과 너무 멀지 않은가? (주로 이용하는 병원)
-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살기에도 적합한가? (형제자매의 학교, 부모 직장과의 거리)
지원한 특수학교와의 거리가 1순위이긴 했지만, 제하는 요금이 저렴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으니 쌍둥이 형제가 유치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그렇게 특수학교까지 차로 10분, 유치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으로 정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이사를 계획한 곳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장애인 인구가 2순위로 많은 곳이었다. 자연스레 복지관 등 장애인 복지 시설뿐 아니라 재활치료 받을 곳도 많았다. 제하의 출생병원이자 주 이용 병원인 대학병원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남편은 어차피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근무지가 바뀌기 때문에 직장과의 거리는 크게 상관없었다.
이 외에 부수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짐을 충분히 넣을 공간이 있는지, 빛이 잘 들어오는지 등이었다. 원래 살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의 2층이었는데 제하를 안거나 유모차를 들고 오르내리기에는 힘들고 위험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한 번에 하나씩 옮기는 시간이 아까워서 한 손에 제하, 다른 한 손에는 유모차를 들고 다녔는데 집주인은 그런 나를 마주할 때마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는 동안 나의 손목은 탈탈 털렸고 승모근은 점점 발달했다. 제하의 키가 클수록 자세도 틀어지고 일반 유모차로는 커버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지만 크고 무거운 장애인 유모차 구입을 이사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머무르는 곳의 환경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아픈 아이와 사는 경우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기에 그만큼 중요한 것 같다. 제하의 짐은 형의 두 배 이상이었는데 특수 분유, 피딩 용품 등 온갖 의료용품 박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정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창밖에는 맞은편 집이 가까이 붙어있으니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고 어두운 집에 있으면 기분도 우중충했다. 이사 후 수납공간이 넉넉해지니 용품과 기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할 수 있게 되었고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이제 집에만 있는 날에도 울적하지 않았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이사 후 장애인 유모차에 탑승한 제하
이사 전후로 준비해야 할 것은?
- 재활치료 대기
제하의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재활 치료. 며칠만 빠져도 몸이 뻣뻣해지는데 집에서 착실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 남편이 집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의원, 복지관 등 이사할 곳과 가까운 치료기관을 먼저 알아봤다. 대기 기간을 감안해서 가능한 일찍 진료받는 것이 좋은데, 우리는 지원할 학교와 이사 날만 먼저 정한 상태라 집을 정하고 나서 진료를 보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대략 어느 동네로 가겠거니, 생각하고 그곳에서 차로 20분 이내의 시설을 추려 명단을 만들고 거리가 가까운 순서로 전화를 돌려 진료와 상담 예약을 잡았다. 그때가 이사 3개월 전이었다.
대학병원은 진료 예약 시 구비서류를 안내해 주는데 보통 기존 병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서 가야 한다. 소견서나 발달평가지 등을 같이 가져가면 더 좋긴 하지만 대기를 위한 진료라 기존에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정도만 말해줘도 충분하다. 복지관은 사회복지사와 초기 상담을 먼저 한 후 어떤 치료가 필요할지 치료사의 평가를 받고 대기하기 때문에 최소 2번 이상의 방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간혹 전화로 상담하고 이메일로 자료를 전송하는 등 비대면으로 치료 대기를 할 수 있는 복지관도 있었다. 그렇게 대기를 걸어두면 기관마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막막했는데, 이사하자마자 일주일 재활 스케줄이 꽉 찼다. 제하가 다른 대기자에 비해 어리고 중증인 편이라 순번이 당겨졌다는 곳도 있었고, 오전이 오후에 비해 대기가 짧은 덕분이기도 했다.
- 지원 기관 연결해 두기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애인종합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 가족센터, 아동복지관, 육아종합지원센터, 발달지원센터, 문화복지센터... 지역마다 있는 장애인 가족 지원 기관 및 복지 시설이다. 이들 대부분이 SNS나 카카오톡 등으로 행사 등을 공지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면 친구 추가를 해두는 것이 좋다. 복지관에 사례관리 신청을 해서 사회복지사와 관계를 맺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장애인 가족과 같이 경제, 심리 문제 등 복합적인 어려움으로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가족을 면밀히 살피고 직접적으로 지원해 주거나 외부 자원을 연계해 준다. 사회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이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두 곳 모두 신청해 두었다.
재활치료나 복지 시설을 찾을 때 참고한 것이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든 ‘WheelRing(휠링)' 앱인데 재활치료, 장애인복지관, 교육, 보조기기 관련 시설 등이 권역별로 정리되어 있어 편리했다.
나는 장애, 비장애 쌍둥이 형제를 양육하고 있어 장애아동돌봄(장애아가족양육지원사업)과 아이돌봄서비스를 모두 이용했다. 두 서비스 모두 원한다고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순번이 되어야 하기때문에 이 또한 미리 대기를 해둬야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이사 후 전입신고를 해야 해당 지역 서비스 제공 기관(자치구 가족센터 등)에 신청할 수 있는 반면, 장애아동돌봄은 이사 전이라도 주소가 결정되었다면 미리 대기를 할 수 있다.
내가 결혼하고 우리 가족의 첫 이사이자 아이와, 장애 자녀와 처음으로 함께했던 이사. 유비무환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빠뜨리는 것이 생기고 어려운 것이 이사인 것 같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긴 지 이제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무슨 정신으로 저걸 다 했나 싶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이렇게 기록해 두니 다음에는 좀 덜 겁내고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를 준비하는, 언젠가 이사를 해야 할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