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쓸모 – 아이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면

글 : 김지영

보톡스를 가장 최근에 맞은 게 언제죠? 어느 손을 더 잘 쓰나요? 아이가 새로운 재활 치료실에 가면 흔히 받는 질문이다. 학교나 복지관에서 만나는 특수교사, 사회복지사는 더 자세한 것을 묻는다. 중환자실에 있었던 기간은요? 어떤 진료를 보고 있나요? 쏟아지는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제하가 잘 쓰던 손이 오른손이었나? 그 수술을 언제 받았더라..? 출산할 때 뇌를 같이 낳기라도 한 건지. 누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물으면 생각이 안 나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도 있는데 하물며 제하는 워낙에 이슈가 많아서 더 기억나질 않아 면담이 끝날 때마다 기분이 찜찜했다.

무엇을 기록하면 좋을까?

아이의 이력서, 자기소개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능한 아이와 관련된 모든 걸 기록해 두고 카테고리별로, 시간순으로 정리를 한다. 사실 나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기록한 건 아니고 만 3세가 되어서야 필요성을 느끼고 제대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릴 적 방학 일기처럼 지난 일이 생각도 잘 안 나고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가능하면 미루지 말고 일찌감치 기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한 번에 다 쓴다고 생각하면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기록을 늦게 시작해서 밀린 내용이 많다면 틈틈이 조금씩 써보도록 한다. 완성 후에는 변동사항이 있을 때마다 업데이트한다.
경련을 많이 하거나 먹는 약이 많다면 간호일지를 써두는 것도 좋다. 기록을 하면 투약을 빠뜨리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돌봄 선생님 등 간병인이 여러 명일 때 인수인계하기도 수월하다. 경련, 발열 등 새로운 증상이 있을 때마다 기록하면 외래 진료나 응급실에 갔을 때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기가 쉬워진다. 장 절제 수술을 받은 우리 아이처럼 먹는 양과 배설 횟수 등이 중요한 경우라면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섭취량, 배설량 및 시간 등 모든 것을 기록한다.
재활 치료를 받는다면 치료사의 코멘트를 그때그때 써 둔다. 아이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치료사가 부모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도 있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할 겨를이 없는 나는 아이가 왼쪽을 더 잘 본다, 오른손을 더 잘 쓴다는 것을 치료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기록을 잘 해두면 원하는 치료 방향에 대해서도 그림이 잘 그려진다.
기록은 데스크탑, 태블릿, 휴대전화 중에서 본인이 활용하기 가장 간편한 매체를 활용한다. 다만 내용을 공유할 때는 파일보다는 종이에 출력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전체 내용은 프린트하기 편한 형태로 저장한다. 나의 경우 일지는 휴대전화에, 포트폴리오는 노트북으로 작업한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보육 기관, 교육 기관, 활동 기관, 거주 기관, 의료 기관 등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도움을 주는 기관과 사람은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다. 공들인 기록은 병원을 옮길 때나 새로운 치료실에 갈 때 등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아이의 소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내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때 이 기록물이 진가를 발휘했다. 치료실을 옮길 때, 특수학교에 입학할 때 첫 시간은 아이에 대해 면담을 했는데 이때 선생님께 미리 만들어 둔 기록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프린트한 것을 전하니 내가 놓친 건 없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기록물을 통째로 전달할 수도 있지만 대상에 따라 필요한 내용만 따로 빼서 줄 수도 있다. 상대가 필요하지 않은 내용까지 다 줘버리면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자료를 펼칠 엄두도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가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을 때마다 아이에 관한 백과사전처럼 꺼내 쓰기도 한다.
아이에 대한 기록은 부모가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면담의 보조자료로, 아이의 특성이 반영된 이력서로, 평생교육을 위한 객관적 근거로, 일관성 있는 지원을 위한 삶의 자료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 할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그다음에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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