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겪었던 소화기 문제들

글 : 윤승아

아이는 뇌병변의 후유증으로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애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아이가 아픈 걸 지켜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민이의 경우는 소화의 문제와 뇌전증이었어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뇌병변이 기저 원인이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렵고 도와줄 방법이 많지 않아서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먹고 소화시키는 것의 어려움

이른둥이였던 지민이는 젖병 빠는 힘이 약하고 양이 작아 먹이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습니다. 목표 용량을 먹이려면 40분 이상을 먹여야 했고 그나마도 잘 먹지 못해서 자주 먹이고 싶었지만, 자는 시간과 치료 시간을 고려해 자주 먹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유식은 많이 늦게 시작하지 않았지만 36개월 전후로 많은 병치례를 하면서 쉽게 밥을 먹는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어요. 꽤 오래 후기 이유식 형태로 먹였습니다. 치료를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서 간단하게 먹어야 하기도 했고, 소화기관에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소화가 잘되는 재료를 선택하고 고기나 덩어리는 거의 다지거나 갈아서 만들어 주었죠. 밥은 후기 이유식 형태였고 단백질은 주로 흰살 생선을 먹였습니다. 소화가 어려운 기름지거나 밀가루 음식은 못먹였어요. 우유도 자주 탈이 나서 일반 우유는 안먹였습니다. 빵을 먹여 본 것은 5~6살이 넘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였습니다.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제게도 당장은 이런 방법이 편했습니다
고열을 동반한 감기나 감염병에 걸렸을 때 열이 내리고 난 직후 꼬박 하루를 내리 울었습니다. 아이가 먹지도 않고 소변과 배변도 잘 안되고 하루종일 울어대는데, 이유도 모르겠고 미칠것 같았어요. 영아기의 어린 아기가 열이 날 때는 울기보다는 오히려 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운다는 것은 통증을 동반한다는 것이고, 외과적으로 다친게 아니면 배앓이가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 데려갔지만 의사는 “막연한 추측으로 아이를 치료할 순 없고 정밀 검사를 해야하는데 협조도 안되고 많이 힘들거다. 그 정도 병치례 후엔 속병이 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조금 쉬면 회복될거다”라고 하였고 관장을 좀 해주거나 위장관운동을 도와주는 약을 주는 것이 다였고 선생님 말처럼 만 하루를 쉬면 회복하기는 했습니다.
열이 난 후 회복기의 증상 이외에도 유아기엔 수면중이나 기상 후 1시간 내외로 식은땀을 흘리고 손발이 차갑게 되고 침을 힘겹게 삼키며 안절부절 못하는(뭔가 갑작스런 통증을 참는 듯한)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10분 이내로 금세 언제 그랬냐는듯 잘 놀았습니다. 트림이나 방귀를 뀌면서 증상이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증상이 수차례 반복되는 경우엔 경련으로 이어졌습니다.

저체중과 영양 부족

저는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모든 전문가와 부모들에게 이 문제를 공유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장도 길어지고 그래서 소화력이 약한 아이들은 점점더 힘들어지고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지민이는 저긴장아이라 어쩌면 이런 문제가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약도 먹여보고 대체의학에서 하는 보충제도 먹여봤지만 큰 도움은 안되었던것 같아요. 자연히 체중도 쉽게 늘지 않았습니다. 9kg을 넘기는것이 아주 오래걸렸고 만 24개월이 한참 지나서야 10kg대에 진입했어요. 경련안하게 소화장애 안상기게 조심하다보니 아이가 말라가는걸 미처 못느낀것이죠.
그러다 4세 무렵, 그날도 원인 모를 복통에 안되겠다 싶어 대학 병원에 진료를 보러갔다가 초저체중의 영양실조 상태라고 당장 입원하라고 해서 당일 바로 입원해서 검사를 진행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매일매일 보니까 아이가 그렇게까지 말라있는지 깨닿지 못했어요. 재활치료와 병치례에 정신이 없었고 당시 부모님들도 많이 편찮으셨고 저 역시 수술을 해야 했어서 경황이 없었나봐요. 우연히 찍은 아이 사진을 보니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기아난민같이 말라 있었어요. 사진으로 보니 더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이때 사진은 다 없앴습니다.TT)
협조가 안되어 검사를 하기가 쉽지 않았고 겨우 내시경과 삼키는 기능과 관련된 검사만 할 수 있었어요. 꼭 닫혀 있어야 하는 식도 입구가 거의 열려 있다고 해요.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근육 긴장도가 저긴장으로 정상이 아닌데 내장기관도 정상이 아닐 거란 생각은 왜 못했을까…
의사는 “식도역류로 추정진단하고 치료를 해보자. 호전되면 유지하고 호전이 안되면 다른방법을 찾자"고 해서 1년간 치료를 했습니다. 유아의 식도역류증상은 몸이 활처럼 휘는데, 그 모습이 꼭 경련 같아서 경련으로 오인되기도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후로도 소화기치료는 빈도가 좀 줄었지만 계속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기

악순환이 계속되며 아이는 말라갔습니다.
깡말랐던 4세 무렵
그러다가 아이가 만 5~6세 정도 되었을때 우연히 만난 특수교사가 수업전 평가, 상담시간에 지민이의 전반적인 일상생활을 물어보시며 지민이의 섭식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나이에 섭식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닌데 계속 후기 이유식 형태의 음식을 먹는 것에 놀라셨고 계속 유동식만 먹고 씹지 않으면 점점 더 씹는 기능과 소화기관의 소화력도 약해져 소화가 안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련에도 안좋은 영향을 준다. 그 문제로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소화력에 문제가 생기면 경련을 한다고 얘기했지만 선생님은 당장은 경련을 하더라도 소화력을 키워 줘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납득을 하지 못하자 본인의 동생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사지마비의 뇌병변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뇌전증도 있고 호흡, 소화 전반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인기에도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고 결국 그 문제로 20대에 떠나보내게 되었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저는 경련을 할 각오로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시도해봤다가 후회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악순환이 계속 되었지만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며 아이는 조금씩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중도 물론 5%ile 이내이지만 그래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초등 2학년때 경련 주기가 짧아지고 많이 아프면서 또 체중이 그래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살찌우기 프로젝트'로 영양사처럼 식단스케줄을 치료스케줄과 같이 짰습니다. 자기 전엔 2시간엔 공복을 유지하고 식사나 간식 직후 40분 이내엔 이동과 운동을 금하니 식사 3번, 간식 2번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먹였습니다. 대학병원 영양사였던 유치원 친구 어머니의 도움으로 고열량이면서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추천받아 모든 치료에 우선해서 규칙적으로 먹였습니다. 그러자 몸무게가 조금씩 늘고 운동기능이 조금씩 올라가며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소화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다

비슷한 시기에 수소문하여 소아 소화기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때 상담후 제가 느낀 결론은 “모른다”였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분이 무능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명한 분이시고 지민이같은 뇌병변아이들의 성장을 많이 지켜봐온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뇌손상을 받은 아이들의 섭식과 소화기의 문제는 예상하기 힘들다. 내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다. 크면서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크면서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당시 식도역류로 소화기 약 3가지를 1년 넘게 먹이고 있었는데 당장 먹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능력을 키울 수 없다. 소화기약 자체가 오래된 1세대 약이 많고 아이에게 장기 복용하면 아이 기능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민이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어쩌면 특정 질병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소화제 같은 약으로는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몸 전체를 관장하는 뇌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하겠구나.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기

신경과 주치의와 의논해서 뇌가 쉴수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수면'이 아닐까 여겨져서 현재는 밤에 숙면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조금은 호전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여야 하는데, 섭식이 잘 안되면 유동식만으로는 일반 식사의 영양과 열량을 공급해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섭식에 문제가 있다면 섭식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영양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의 운동기능과 활동 양도 고려해야 하고요.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발달을 하지 않습니다. 걷지 않거나 손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자란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손과 발이 어린 아이처럼 작습니다. 운동 뿐만 아니라 몸의 여러 기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씹지 않으면 관련된 관절과 근육이 약화됩니다. 단단한 것을 씹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고 부드러운 것만 먹이면 점점 더 씹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저희아이와 같진 않습니다. 무조건 아이 상황과 맞지 않는 무리한 시도를 하시면 안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악순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생각했던 것들 중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해내곤 합니다.
아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부모가 기회를 주지 않아서 또는 그 기회를 너무 일찍 주어서 또는 몇 번 시도하고 부모가 포기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다양한 음식을 먹는 최근 지민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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