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과 부당함을 당당하게 말하기

글 : 김지영

나는 원래 약간의 불편함이나 부당함은 참고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바깥바람이 신경 쓰여도 혹여나 다른 사람이 답답해할까 봐 열려있는 창문을 그대로 두었고, 당일배송 상품을 주문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오지 않아도 그렇게 급한 게 아니라면 별말 없이 기다렸다. 그런데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세상은 온통 불편하고 부당한 것투성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살기 불편한 곳이었나

장애인임을 공식적으로 인증 받으면 관련 기관이 나서서 뭐라도 해주는 줄 알았지만 저절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장애인등록증(복지 카드)을 받으러 주민센터에 갔을 때 직원이 말없이 건네준 장애인 복지 안내 책자가 전부였다. 그다지 두껍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그걸 제대로 읽어볼 여유가 없어서 시간 날 때 보기로 하고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 가장 많은 소통을 했던 주민센터 담당자는 어떨 땐 나보다도 모르거나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놓치는 것도 생기곤 했다. 대표적인 게 장애아동 양육수당이다. 장애아동수당 지급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 제한되지만, 장애아동 양육수당은 소득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다. 나는 주민센터에 장애아동수당을 신청하러 갔다가 자격이 안 된다는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더 묻지도 않고 돌아섰었다.
그리고 수급 기한인 48개월에서 두 달이 지난 지난달, 뒤늦게 장애아동 양육수당의 존재를 알고 소급 지급 신청을 했고 주민센터에서는 지급 여부에 대해 아직 상위기관과 협의 중이다. 애초에 자격이 안 되는 걸 문의하면 자격이 되는 비슷한 제도를 안내해줘야 인지상정 아닌가 싶었지만 담당자는 복지제도가 신청주의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회복지 용어에는 ‘신청주의’와 ‘직권주의'라는 것이 있다. 사회보장 급여의 신청에 관해 수급권자가 법에 따라 신청해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신청주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급권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직권으로 수급 자격 여부를 조사한 후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직권주의’다. 현재 사회보장 급여는 신청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결국 보호자가 제대로 알고 신청도 제때 해야 최소한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떠먹여 줘도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맞벌이가 장애인보다 더 배려를 받는다고?

온라인 카페와 같은 장애아 부모의 커뮤니티에서는 제도적 부당함에 대해 말하는 글이 종종 보였지만 불만을 말하는 데에서 그칠 뿐 어떻게 바꿔보자는 글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정신도 없거니와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나도 예전 같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나쳤겠지만 억울한 일을 몇 번 겪으니 이제 슬슬 부당함을 말해야겠다, 나와 우리 가족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아이의 유치원 모집 요강을 알아보던 중에도 억울한 일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장애아동의 형제자매에게 1순위로 입소 우선순위를 줬다. 반면 유치원은 우선 모집이나 방과 후 과정 지원 대상에 없었다. 유치원별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저소득층, 국가보훈대상, 북한이탈주민, 다문화, 다자녀, 장애 부모의 자녀, 한 부모, 맞벌이 등이 지원 대상이다. 이상해서 더 살펴보니 초등돌봄교실이나 중고등학교 우선 배정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 오히려 장애아동 가정보다 사정이 나은 맞벌이 가정을 더 배려해주는 이상한 상황.
장애아동은 입원이나 재활치료 등으로 스케줄이 많고 일상생활도 혼자 하기 어려워 부모가 돌봄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반면 함께 성장하는 비장애 형제는 보육과 교육 면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또한 부모는 장애아동 양육으로 하던 일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막대한 의료비 지출까지 겹쳐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맞벌이 가정은 아이를 볼 시간이 없다지만 돈이라도 벌지, 장애아동 가정은 소득도 반토막 나고 아이를 돌볼 시간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국가 차원의 교육 시스템에서 맞벌이 자녀보다 장애아동의 형제자매가 배려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부당한 처사였다. 현직 교사로 있는 친구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제안을 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라고 했다. 국민제안은 제안인이 처리기관을 지정해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소관 기관이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교육 전 과정에서 우선 모집, 우선 배정 등 교육적 배려 대상에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를 추가해 달라는 제안을 교육부에 넣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담당자로부터 나의 제안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며, 반영 여부를 논의해 올해 말쯤 내년 가이드라인이 결정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야 조용한 싸움닭

정부 청사 앞에서 머리도 밀고 시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용기가 없는 나처럼 소심한 사람이라면 최소 할 말은 하고 살았으면 한다. 물론 국민제안이든 공공기관이든 우리의 말을 듣고 실현할 수 있는 곳에 해야 한다. 우리끼리 투덜대봤자 정치인과 공무원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불편함을 무턱대고 참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도,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다. 조용한 사람이었던 내가 싸움닭이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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