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장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글 : 김지영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열 달의 임신기간 동안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두고 육아서를 읽으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한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에게 장애가 생긴다면, 그 장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도 장애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진 않으니까. 아이에게 장애가 생겼고, 나는 모든 면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벌거벗은 상태로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생존에만 매달리는 삶

뇌병변 장애인인 나의 아이는 재태주수 32주 5일 870g의 초극소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생후 1개월 무렵 괴사성장염으로 소장 일부와 대장의 대부분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았는데 이때 혈압이 많이 떨어져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었다. 머리든 몸이든 둘 중 하나라도 성하면 좋으련만, 장이 짧으니 소화 흡수가 어려워 밤낮으로 먹여야 했고 묽은 변을 수시로 지려서 엉덩이가 성할 날이 없었다.
어쩌다 콧줄이 빠지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래가며 콧구멍을 통해 위까지 비위관을 집어넣었고 외출 중에 배변 봉투가 터지면 변이 흐를세라 땀을 뻘뻘 흘리며 교체했다. 일이 터질 때마다 병원에 갈 수는 없으니 퇴원할 때 교육을 받았지만, 일종의 의료 행위이므로 익숙해질 때까지는 나의 실수로 애가 잘못될까 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한 생활에 적응할 만해지면 아이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적인 수술을 받거나 경련 때문에 수시로 병원에 입원했다.
외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등 대학병원에서 열 군데가 넘는 과목의 외래 진료를 주기적으로 다녔는데 이 와중에 재활치료도 받아야 했다. 뇌 손상의 범위와 정도가 심각해서 재활이 시급했으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알아보고 다닐 여력도 없었고 기관마다 대기가 있어서 바로 치료가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기관의 지원을 받으려 하면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절차도 복잡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케어만 해도 벅찬 상태에서 비장애인인 쌍둥이 형제의 돌봄 문제까지 겹쳤다. 아무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한 사람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과다한 책임과 의무. 나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는 마음의 병

아이에게 장애가 생기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건 엄마다. 가정적인 나의 남편은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었지만 변함없이 회사를 다닌 반면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매달렸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출산 직전까지 회사에 다녔고 취미생활도 일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했다. 그런 내가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살아온 30여 년의 삶을 뿌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나 꿈같은 걸 상상하는 건 사치였다. 오로지 하루하루를 별 탈 없이 살아내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렇게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해서 실감이 안 났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고? 아이가 2살이 될 때까지는 밤마다 가슴을 치다가 쥐어뜯다가 했다. 억울해. 저렇게까지 될 아이는 아니었는데. 의료진을 한없이 원망하다가 내가 임신 기간 동안 뭔가 잘못했나 기억을 되짚으며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극단적인 생각이 불쑥 찾아올 때도 있었다.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은 후 부모의 심리적 반응은 보통 5단계로 그려진다고 한다. 충격과 현실 부정, 의료진이나 아이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 타협, 무기력, 그리고 수용. 나의 경우 이 과정이 2년에 걸쳐 두 번 반복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인 후에도 일상에서 기쁨을 잃거나 무력감과 우울감을 만성적으로 느낄 수 있다. 글을 통해 장애 부모의 심리 변화를 알고 나서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아, 이런 시기가 오겠구나. 내가 지금 그 긴 터널을 지나고 있구나. 출산 후 3년이 되어서야 나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장애아이를 둔 엄마라면 심리 상담을 적극 권하고 싶다. 상담을 받으며 나의 마음은 예전보다 건강해졌다. 가장 좋은 점은 잃어버렸던 나를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만 보며 달려왔던 이전에 비해 좀 더 넓게 보며 상황을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걸면 삶이 힘들어진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아이'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어떤 엄마가 보기에 나는 불량 엄마다. 만 4살이 된 지금까지 목도 못 가누는 아이에게 걷거나 말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이의 재활치료에 나의 시간을 모두 할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병원 일정도 많고 기저귀 교체, 피딩과 석션 등으로 통잠을 자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도 조금씩 하고 운동도 꾸준히 다닌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데 4년이 걸렸다. 그것은 아주 작은 실천과 큰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가족과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다. 엄마, 아빠의 인생을 지키려면 장애 자녀 부모 심리지원, 장애 아이 돌봄 등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 제도나 기관의 지원을 잘 알아보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 사정 없이 사는 가족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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