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의 발달에 적신호를 발견하는 순간 부모님은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빨리,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이 모인 SNS에는 ‘ㅇㅇ치료 주 2회, XX치료 주 2회면 어떨까요? 치료 스케줄 좀 봐주세요.’라는 글이 하루에도 여러 번씩 올라옵니다. 치료는 역시 다다익선일까요? 이렇게 하면 우리아이는 잘 자라게 될까요?
아이들에게 치료/교육이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보기 위해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영아기에 가장 많이 받는 치료/교육은 ‘의사소통’영역입니다. 언어치료에서도, 조기교실에서도 언어 습득과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춥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발달시킬 수 있을까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영어를 배운다고 가정할 때, 어떻게 하면 영어가 쑥쑥 늘 수 있을까요? 쪽집게 과외 선생님과 일주일에 2번, 40분씩 만나서공부하면 영어 실력이 급상승할 수 있을까요? 과외선생님의 실력이 출중하고 학생의 이해력과 적용 능력이 뛰어나다면, 주당 80분만으로 유창한 영어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학생 시절최소 10년간 주당 80분 이상의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했지만 외국에 나가면 간단한 말 한마디도 입 밖에 내기 부담스럽습니다. 실전에 써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주일에 3번, 40분씩 하면 확실히 효과적일까요? 글쎄요. 그럼 일주일에 5번은요?2-3번하는 것보단 잘하겠죠. 읽기 선생님 따로, 회화 선생님 따로, 듣기 선생님 따로 하면 더 좋을까요? 핵심은 어떤 전문가를 얼마나 모셔서 배우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영어를 사용해 볼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제가 영어를 잘하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영어권 나라에 가서 살면 됩니다. 처음에는 말하기는 커녕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 듣겠지만 생존을 위해서 손짓발짓을 하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절한 누군가를 만나서 한두마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게 될 것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 이럴 때 이렇게 말하면 되는구나“ 곁눈질하고 다음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슬쩍 한번 써보면서 점차 표현이 다양해질 것입니다. 동시에 주1-2회 전문가를 만나 제 영어실력을 점검하고, 제 능력에 맞는 단어나 문장을 배우게 된다면 금방 실력이 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의 영어실력을 정확히 알고 제 수준에 꼭 맞춰주는 대화 파트너가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환경은 없을 것입니다.
배운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학습능력이 좋은 제가 영어를 배워도 일주일에 80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 우리 아이들이 주당 80분으로 말이 팍팍 늘 수 있을까요? 물론 기본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의사소통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동의 경우 전문가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당 80분은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시간 중 극히 일부에 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실에 가는 시간 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의사소통을 위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습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學)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배운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習) 시간을 통해 완성됩니다. 치료/교육시간에 배운 것을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복습하는 것이 학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유 주세요‘를 치료실에서 배웠으면 가정에서 식사시간, 간식시간에‘우유 주세요’를 말해보는 기회를 통해 아이의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 다음 간식시간에는‘주스 주세요’나 ‘과자 주세요‘도 할 수 있겠죠?
가족의 일과 중 익숙하게 만드는 시간을 놓치지 마세요.
조기에 발견 즉시 집중적인 개입이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입니다. 자폐 범주성 장애 아동의 경우 주당 25시간 이상 중재를 하는 것을 권장하며, 다른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25시간의 중재가 주당 25시간씩 치료실에 가서 전문가를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전문가의 중재는 아동의 삶과 분리된 채로 많은 시간을 차지해서는 안 되며, 아동의 일과에 녹아들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반복되어야 합니다. ‘우유 주세요‘는 아이가 우유를 먹고 싶을 때 냉장고 앞에서 해야 합니다. 계단 오르기는 아이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에서 해야 합니다. 전문가는 아이와 만나는 짧은 시간동안 아이의 발달을 잘 파악하고, 중재 방법을 제시하여 가족이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적용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가족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또 하나의 전문가로서 집중적인 개입의 실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의 치료/교육시간만큼 중요한 가족의 일과 중 중재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