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놀이를 함께 하기

남보람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박사과정)

교사 : 별이랑 평소처럼 10분 동안 자유롭게 놀아보세요.
양육자 : 별이야~ 우리 같이 놀아볼까?

장면 1.
“별이야, 이거 가지고 놀까? 이거봐라~ 슝!”
아이는 눈길을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장면 2.
“우리 같이 책 볼까? 곰돌이 어디있나?” 아이의 손길이 움직이고, 엄마는 다시 한 번 이야기 합니다. “이번엔 토끼 찾아볼까? 토끼 어디 있나? 토끼가 몇 마리 있을까요?”

장면 3. 블록통에 가지런히 담긴 블록을 쌓습니다.
“1층. 2층. 3층…… 빨강, 노랑, 파랑…”

양육자 : 선생님! 아직 10분 안되었나요? 아이고. 너무 힘드네요.

영아기 의사소통과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는 잘 놀아야 한다고 합니다. 치료/교육 기관에서 만나는 선생님들도 이 시기에는 놀이를 통해서 영아의 발달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책읽기 놀이도 해보고, 블록 쌓기 놀이, 그림 그리기 놀이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놀이도 별로 없고, 해줘도 잠깐 해보고 도망가기 일쑤입니다. 정말 이렇게 놀면 의사소통을 잘하게 되는 걸까요? 이상하게 선생님이랑 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고 하고, 말도 따라했다고 하는데 왜. 집에서는 안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걸까요?

아이와 놀이하는 것이 어려운가요?

놀이는 무엇일까요? 놀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렇다할 합의된 정의가 없습니다. 마치 행복이란 무엇인가, 처럼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에 하나로 정의내리지 못하고 학자마다 매우 다양한 의견을 냅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놀이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해보면서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랍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시험하고 탐색하며 학습함으로써 신체·언어·인지·사회 정서적 측면의 발달을 해나갑니다.
물론 영아에게 발달지체 또는 장애가 있는 경우 낮은 수준의 놀이에 계속 머물거나 한 가지 놀이에만 집중하는 등 어려움으로 인해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도움에 앞서, 가정에서 어떻게 지원해주면 우리 아이가 진짜 잘 놀 수 있을까요?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

먼저, 우리는 ‘놀이’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어린시절 나의 동반자였던 놀이는 부모가 된 후 아주 멀고도 낯선 존재가 되었습니다. 놀 생각만 하면 ‘오늘은 또 뭘하고 놀아줘야 하나’ 한숨부터 나옵니다. 왜냐하면 아이와 놀이하는 것은 재미없고 힘든 일이니까요. 게다가 놀이를 하면서 뭔가를 가르쳐야겠다! 는 생각까지 하고 나니 놀이를 시작할 엄두조차 안납니다. 하지만 놀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무엇’을 ‘어떻게’하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놀이는 그저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우리 아이도 놀이를 하나요? 네 그럼요, 물론입니다. 손목에 감아둔 딸랑이를 엉겁결에 한 번 휘두르다가 딸랑! 소리를 듣고 눈빛이 반짝!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어느순간 엄마가 딸랑이를 감아주려고 하기만해도 눈빛이 반짝입니다. 그 반짝이는 눈빛은 “엇 저거 전에 해봤던건데! 저거 엄청재밌어! 흔들면 막 소리나!”라는 뜻이겠죠? 이게 바로 놀이입니다. 모든 아이는 자신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세상을 탐구하고 알아갑니다. 아무것도 없이 기어가라, 하면 기어가나요? 저기 재미있는 딸랑이를 향해 기어가는 것, 그 또한 놀이입니다. 저 아이는 놀잇감을 줄세워놓기만 하고 놀지는 않네. 아니요, 놀잇감을 배열하는 놀이를 하는 중입니다. 하루종일 “이(거) 뭐야?”만 외치는 우리 아이, 놀이입니다. 얼마나 재밌어요. 이거 뭐야만 외치면 새로운 이름들이 쏟아지는데요. 누워서 눈앞에 대고 손장난만 하는 우리 아이, 놀이입니다. 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끼고,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들어오는 빛이 시시때때로 변하는것을 보면 짜릿하거든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우리 아이도 하루 종일 놀이를 하고 있는 것 맞죠? 아이들에게 놀이는 삶 그 자체이고. 숨쉬듯 하는게 놀이랍니다.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아, 네가 정말 잘 자라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대로 놀이 속에서 자라갑니다.

함께 즐겁게 놀기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말고 놀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더 있습니다. 바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소꿉놀이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면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이 떼굴떼굴 굴러가면 받아서 다시 돌려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블록으로 높이 성을 쌓았을 때 자랑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함께 놀이하는 양육자의 마음가짐은 ‘심심한데 정말 잘됐다! 나랑 놀아줘!” 하는 것입니다. ‘지겨워죽겠지만 내가 놀아주겠다’는 태도는 아이가 당연히 눈치챕니다. ‘같이 놀고싶다’는 진심이 통해야 함께 놀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심심해서 놀이친구를 찾은거라면 당연히 아이가 하는대로, 하자는대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놀이 방법을 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든 아이의 놀이를 따라하고, 우리 아이가 아주 말을 잘했다면 했을 법한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기차를 줄지어 세워두면 양육자도 그 옆에 똑같이 기차를 줄지어 세우면서 “칙칙폭폭 기차가 출발합니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이가 다른 놀이로 옮겨가면 또 따라 갑니다. 내가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지 말고 아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배워갈 때마다 옆에서 함께 즐거워하면 됩니다.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함께 하기

정리하자면, 우리가 해야 할 진짜 놀이는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말고 아이만 따라가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기쁨 속에서 성장하기 바란다면 하루에 최소 15분은 아이와 진짜 놀이를 함께해야 합니다. 아이는 진짜 놀이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고,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하루 15분 놀이는 아주 짧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 15분 놀이의 힘은 매우 강력합니다. 거창한 놀잇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정말정말 같이 놀고싶은’ 마음으로,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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