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는 글자를 아는 아이만이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생후 몇 개월 된 아기에게도 ‘책’은 훌륭한 감각 자극 도구가 됩니다. 두꺼운 보드북, 부드러운 천 책, 촉감이 다른 페이지가 있는 플랩북 등은 만지고, 입에 넣고, 흔들어보며 탐색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부모는 페이지를 넘기며 소리를 들려주고, 그림을 짚으며 말을 걸고, 아기와 눈을 맞춥니다. 그 시간 동안 아기는 비로소 사람의 목소리와 감정, 상징과 대상, 말과 의미 사이의 연결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아기의 문해(literacy)'입니다.
이 시기의 문해란,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그림과 실제 경험을 연결짓는 기초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책 속 그림에서 강아지를 보고 실제 산책길에서 강아지를 떠올릴 수 있다면, 아기의 머릿속에서는 ‘상징을 통한 이해’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반복되는 부모의 말과 반응을 통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디지털 시대, 부모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스마트기기나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도 문해력이 충분히 발달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0~2세의 영아기는 '감각운동기'에 속하며, 이 시기의 아기들은 오감으로 직접 탐색한 경험을 통해서만 대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플래시카드에서 사과 그림을 보여준다고 해서 실제 사과의 냄새나 질감, 무게, 맛까지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스마트폰 화면 속 영상이나 그림 또한 현실의 대상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영상은 지나치게 빠르고 복잡한 자극을 제공하여, 아기가 주의집중이나 상징 이해 능력을 충분히 키우기도 전에 피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책보다는 플래시카드가 더 도움이 되지 않나요?”
“아직 아기가 집중을 못하는데 책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책은 교육용으로 보여줘야지, 놀이처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플래시카드는 정보를 빠르게 반복 제시하긴 하지만, 아기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과정입니다. 아기에게 언어는 외워서 익히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관계 속에서 익히는 것입니다. 플래시카드나 영상은 일방적 자극을 줄 수 있지만, 부모와의 책읽기는 아기의 반응을 기다리고, 존중하며, 감정을 함께 주고받는 시간입니다.
책은 문해의 발달 뿐만 아니라, 관계 형성에도 중요한 매체입니다. 책을 가지고 놀이를 하고, 대화를 하고, 정서 조절을 할 수 있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면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하며 잠에 들기 위한 루틴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책 속 장면을 따라 역할놀이를 하고,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골라 오게 하고, 읽은 후 책을 정리하며 분류를 익히는 활동까지… 책의 역할을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책읽기도 좋지만, 아이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목소리는 바로 부모의 목소리입니다. 부모의 말투, 웃음, 억양, 제스처, 눈빛이야말로 아기에게는 가장 살아 있는 언어 자극이 됩니다.
위와 같은 내용들을 기억한다면 발달이 지연되는 아기들에게도 책은 멀고 어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속도대로 세상과 연결되는 첫 통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기의 눈높이에서 책과 만나는 순간, 그 자체로 이미 좋은 시작입니다.
지금, 책을 한 권 꺼내서 아기와 마주 앉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