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걷느냐’보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하기 위해 걷느냐’입니다

글 : 김장곤(유원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이른둥이로 태어나서 백질연화증으로 인한 뇌병변장애를 지니고 있는 24개월 별님이는 현재 잡고 서기가 가능합니다. 다음은 별님이 부모님께 드렸던 자문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별님이 뿐만 아니라 현재 자녀의 운동발달에 대해 염려하고 계시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담아보았습니다.

많은 부모님들께서 “우리 아이도 언젠가 걷게 될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이 질문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담고 있어 충분히 공감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걷는다는 것이 아이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걷기를 통해 무엇을 하게 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치료실에서 혼자 몇 걸음을 떼는 것도 의미 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걷고 뛰는 모습이야말로 진짜 발달입니다. 그러니 걷느냐, 못 걷느냐보다는 ‘아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집 안에서 걷기 연습을 시키고 싶다면, 가구를 ‘섬’처럼 배치해 보세요

아이가 움직이도록 돕고 싶으시다면, 억지 연습보다 ‘움직이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식탁 의자, 피아노 의자처럼 잡고 설 수 있는 가구들을 집 안에 섬처럼 배치해 보세요. 아이가 이 섬들을 하나씩 건너가며 자연스럽게 이동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난감을 바닥에 두지 말고, 아이가 서서 잡고 놀 수 있는 위치에 올려 두면 훨씬 더 활동적인 환경이 됩니다. 작은 매트나 쿠션을 넘는 놀이, 가벼운 가구나 카트를 밀어보는 활동도 매우 좋습니다.

치료 시간이 길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한 번 치료실에 가면 2회기 치료를 연속으로 받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긴 치료 시간이 오히려 아이의 자율적인 탐색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회기만 치료를 받고 좀 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회기를 나누어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는 방식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병원 바깥에서도 움직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치료실보다 더 큰 배움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보조기보다 먼저 고려할 것은 ‘움직임’입니다

보조기 착용을 고민하시는 부모님도 많습니다. 보조기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다양한 자세를 시도하는 기회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의 질보다 양이 먼저입니다. 지금은 가능한 한 몸을 다양하게 써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필요하다면 깔창처럼 간단한 도구부터 시작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이가 궁금해할 때, 도와주세요

부모님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궁금해하고 시도해볼 때 옆에서 응원하고 필요한 만큼만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역할을 ‘문제 출제자’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를 푸는 사람은 아이입니다. 부모님은 상황을 설정해 주고, 아이가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탐색하도록 유도해 주세요. 그게 진짜 발달을 이끄는 개입입니다.

치료만큼 중요한 건 또래와의 상호작용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치료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와 일상 속 상호작용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힙니다. 가능하다면 오전에는 어린이집이나 놀이 모임 등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치료를 받는 방식도 고려해 보세요. 병원에서 배운 기술을 일상에서 직접 써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실전이 없는 연습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보다, 지금 필요한 환경을 찾아주세요

아이의 앉는 자세(W자세)가 걱정되실 수 있습니다. 무조건 막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른 자세를 유도해 보세요. 예를 들어 무릎 꿇기나 한쪽 다리 뻗기 등 다양한 자세로 앉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W자세를 하고 있을 때 엉덩이에 쿠션을 받쳐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감각 반응이 민감하거나 둔감하게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환경과 익숙해진 자극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아이에게 어떤 환경과 자극이 필요한지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치료 계획, 장비 선택, 어린이집 진학… 부모님이 매일같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얼마나 자주 갖는가입니다.
많이 걷고, 많이 실패해보고, 많이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것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별님이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유사한 발달 지연을 겪고 있는 많은 아이들의 양육자에게도 충분히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치료에만 의존하기보다, 아이가 일상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놀이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조기개입이고, 양육의 힘입니다.

“많이 걷고, 많이 실패해보고, 많이 놀게 하자.”
그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치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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