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자녀를 돌보면서 내 삶을 사는 방법

글 : 김지영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삶 다음으로 나를 두렵게 한 것은 내 삶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돌봄 외에도 매일 다니는 재활치료에 대학병원 외래가 많을 때는 한 달에 10개가 넘었다. 아이가 수술이나 컨디션 난조로 몇 달을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될 때면 닭장 같은 병실에 갇혀 막연한 불안함에 휩싸였다. 이대로 병원과 치료실에서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내 시간이 없는 이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까. 숨이 턱 막혔다. 답답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꿈은 소박해졌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할 여유라도 있었으면, 혼자 밖에 한 번 나가봤으면. 한편 걱정 속에서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원 횟수도 줄어들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고, 요령도 생겼다.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맡기기

친정과 시댁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콧줄에 배변 봉투까지 달고 있는 제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쌍둥이를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는 비장애 아동만 이용할 수 있어 우선 큰아이를 맡기고 나는 제하를 전담했다. 그러다 18개월 무렵 제하에게 장애인등록증(복지 카드)이 나왔다. 남들은 등록증을 받는 날 눈물이 난다는데 나는 기뻤다. 장애 등급이 있으면 보건복지부의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장애아동돌봄은 보통 돌봄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몇 년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고 어렵게 구한 돌보미가 성에 안 차거나 반대로 선생님이 힘들다며 금방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나도 신청 후 몇 달의 대기 끝에 제하가 만 2살이 지나서야 돌보미가 왔다. 우리 집에 온 선생님은 돌봄이 처음인 데다 연세도 많았는데 제하를 친손자처럼 사랑으로 돌봐줬고 다 클 때까지 보고 싶다며 활동보조사 자격증까지 땄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눈물로 이별했지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어린아이를, 그것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남에게 어떻게 맡기냐며 끝까지 직접 돌보는 대단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1년 만에 지쳤다. 물론 아이에게는 엄마가 24시간 붙어있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장거리 달리기이기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엄마의 시간이 많을수록 양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온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하를 맡기고 잠깐 장 보러 나왔을 뿐인데 평일 낮에, 혼자 걷는 그 길에서 감옥에서 출소한 듯 해방감을 느꼈다.
나도 제하를 맡기며 걱정을 전혀 하지않은 건 아니다. 내가 없을 때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선생님이 서툴러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그렇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돌봄서비스 이용 후 지금까지 이사도 하고 돌보미가 활동 가능한 요일, 시간에 맞추느라 4명의 선생님을 겪었는데 모두 좋은 분이어서 한 번도 교체한 적 없다. 돈보다는 봉사 정신으로 이 일을 하는 분이 대부분이었고 아이도 잘 봐주셨다. 피딩이나 석션 등 선생님 스스로도 잘할 수 있을지 염려했던 일들도 자꾸 경험하며 익숙해졌다.

배우자와 휴식 시간 나누기

남편은 6개월 정도 휴직했다가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 복직했다. 이후 남편의 귀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구르고 식은땀을 흘렸다.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왜 이렇게 안 나오나 싶어 화가 났다. 어쩌다 친구 만나러 잠깐 나가도 되냐고 물으면 그러라고 하면서도 눈치를 줬다. 임신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매년 상, 하반기에 친구들과 2박3일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도 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편은 예전과 변함없이 자기 인생을 사는 것 같고 나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맘이 이렇다 보니 남편 입장은 생각지도 않은 채 못난 말만 쏟아냈고 우리 사이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돌보미가 오고 아이가 어린이집도 다니고, 나도 내 나름의 시간을 틈틈이 가지면서 남편과 타협을 했다. 쉴 수 있는 사람이 쉴 수 있을 때 쉬자는 것이다. 주말처럼 남편이 쉬는 날에는 동네 산책을 하든,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든 온 가족이 다 같이 움직였고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끔은 엄마나 아빠가 번갈아 가며 혼자 쉬는 것도 좋다. 애들도 크고 우리도 요령이 생기면서 돌보미 없이도 어느 정도는 애 둘을 혼자 볼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을 놔줘야 나도 눈치 안보고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선심 쓰듯 보내준다.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친구들과의 여행에 큰아이를 데리고 간다. 나도 기회가 있을 때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도 하고 여행도 다녀온다. 아예 매주 일요일 점심은 나 혼자 외식하는 날로 정한 적도 있다.

우선순위 설정하고 일정 조정하기

돌보미가 아이를 돌봐주는 비교적 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아이가 낮잠 잘 때나 치료실에 들어갔을 때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다. 시간 관리는 개인 시간을 확보하는 핵심이다. 스케줄을 잘 조정해 유연하게 활용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고민 없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체력과 멘탈을 유지하고 나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장애인가족지원센터와 장애인복지관, 장애인부모회 등 많은 기관에서 자조 모임을 운영해 부모가 서로 지지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다면, 장애 자녀의 부모로서 삶이 막막하다면 자조 모임을 통해 선배와 동지를 만나보는 것도 좋다.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면서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시간을 내어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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