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을 겪었지만 풀리지 않는 뇌전증

글 : 윤승아

아이의 뇌전증에 대한 애기를 써보려 하니 벌써 먹먹합니다. 뇌전증아이를 13년을 키우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지민이가 열심히 버티고 견디며 지내온 이야기가 어떤 아이와 부모에게 있는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하나의 예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 글은 참고만 하시고, 반드시 주치의와 의논하세요.

저는 제가 납득이 되고 잘 알아야만 실행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민이의 소화계 문제와 뇌전증만큼은 명확한 것이 없어 어려웠습니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위해 뭔가 결정을 해야 하니 그 과정이 너무나 힘겨웠습니다. 저희 아이보다 훨씬 더 조절 어려운 경련과 그로 인해 어려운 치료를 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민이의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 지민이 보다 어려운 상황이나 전혀 다른 상황을 굒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다 다르므로 쉽게 결론 내고 쉽게 적용해 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반드시 주치의와 의논해서 아이에게 맞게 결정해야 합니다.

지민이의 뇌전증은…

NICU를 퇴원한 직후에 아이는 뇌파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보이는 경련을 하지 않아서 먹는 약 없이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다 생후 8~9개월(교정 6개월)무렵 이상행동이 있어 검사를 받았고 바로 영아연축으로 진단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브릴로 비교적 빨리 조절되고 뇌파도 호전되어 8개월 정도 약물을 유지하다가 18개월 무렵 약을 완전 중단하고 1년 반정도 Seizure Free상태를 유지 했었습니다.
뇌전증이 완치되었다는 생각에 그동안 조심하느라 못했던 재활에 매진하며 피로해지고 만3세 무렵 각종 감염에 노출되며 고열이 동반된 열경련을 시작했습니다. 열경련이 두어번 반복되더니 열없는 경련으로 이어져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먹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응급실에서 아티반으로 쉽게 멈추기도 했지만 몇 번 반복 후엔 쉽게 멈추지 못하는 간질중첩증이 되어 약을 쏟아 부어도 쉽게 멈추질 못했습니다. 1시간 이상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중환자실을 한달이 멀다하고 들락거리고 치료를 받다가, 혹은 할아버지댁에서, 혹은 외갓댁에서의 경련으로 본의 아니게 여러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투어를 하게 되었어요. 보라매서울대병원에 계셨던 담당의를 얼마 안되어 분당서울대에서 만나는 웃픈일도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을 가게된 가장 큰 이유는 산소포화도는 유지되는데 내밷는 호흡이 잘 안되어 몸에 이산화탄소 축적이 높아 삽관하게 된 경우였습니다. 일단 삽관을 하면 중환자실에서 경과 관찰 해야 한답니다. 아이는 전조증상이 있었고 부분발작 그리고 대발작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초기엔 제가 전조증상이 경련인줄 몰랐던거에요. 그렇게 시간을 많이 끌었고 더 쉽게 멈추지 못했던거라고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서웠던 순간

첫번째는 열없는 경련 초기에 전조증상으로 경련이 시작된 걸 모르고 40여분 후 대발작을 시작해서야 응급실에 갔습니다. 서울대 본원이었는데 아이를 침대에 옮기고 경련약 투여 후 응급 피검사 결과가 나오자 마자 커텐을 치며 저와 남편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코드00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의료인들이 달려 오더라구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위기는 넘겼다고,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높았다고, 다행히 응급조치로 수치가 낮아져서 입원치료 후 퇴원했었습니다.
두번째는 응급실에서 약물 투약후 멈추었다 생각했는데 보이는 경련이 없어도 심박이 안정되고 깊은 잠이 들지 않으면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고 이 경우 2~30분 후 대발작으로 이어지고 그럼 약을 퍼부어도 쉽게 멈추지 못했어요.
당시 아이는 아티반 2회 투약 후 대발작은 멈추었지만 심박이 150으로 높았고 호흡소리도 짧았어요. 멈춘것 같다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40분 정도 후 대발작을 시작했고 응급 메뉴얼로 1~5단계의 경련약이 있는데 4단계까지 5분간격으로 약을 쏟아 부어도 멈추지 않았어요. 마지막 미다졸을 투여하면 자가 호흡이 어려워 반드시 삽관을 해야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면서 아이는 전신 대발작을 하고 있는데 가서 입원수속을 하고 오라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수속했는지도 모르게 경황 없이 수속하고 오니 다행히 아이는 대발작은 멈춘 상태였고 중환자실로 옮긴 후 의식을 찾으며 라인을 스스로 하나씩 뽑고 퇴원을 했습니다.

1년이 넘어서야 경련 양상을 파악함

이렇게 아이의 경련을 1년이 넘도록 격어 가며 아이의 경련 양상을 파악 할 수 있었습니다. 전조증상이 있고 전조증상의 시작은 경련이 시작된 것을 의미하고 초기에 조절하지 못하면 쉽게 멈추지 못하고, 심박과 호흡이 안정되고 완전히 잠이 들어야 '멈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엔 이 정보를 응급실에 가면 의사와 공유해 매뉴얼 대로 안하고 아티반을 적극 대응하고 보이는 경련이 없어도 심박이 안정화 될때까지 약물을 적극 투여하는 것으로 대응 했습니다. 그리고 초기 조절이 중요하다는 주치의의 처방으로 응급약을 교육받아 경련 5분이내로 항문으로 투약했고 심폐소생술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응급약 투약 후 응급실까지 가는 횟수도 좀 줄게되었습니다.

안해본 것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의 수많은 시도들

영아연축때 약물로 Seizure Free한 경험이 있었기에 약물로 빨리 찾으면 조절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물로 호전은 있었지만 약물로 완전히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모든약을 시도해본것은 아닙니다. 어떤약은 부작용으로 지속시킬 수 없었고 경련 할때마다 약이 붙어서 4~5개의 약을 먹여보기도 했습니다(응급실 투여로 시작된약도 퇴원했다고 금방 종결 할 수 없었어요.). 일단 약을 시작하면 안듣는것 같아도 외래로 정리하는데는 몇달이 걸렸습니다. 지민이는 매일 하는 경련은 아니고 컨디션이 안좋을때 하는거라 약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경련주기가 1달에서 2달이어서 약이 맞는지 확인이 어렵고 오래걸렸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계속 경련을 했고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중요한 발달 시기에 치료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일상은 무너져갔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약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것은 아니였어요. 분명 영향은 있는 것 같은데 딱 멈추진 않더라구요. 점점 짧아지던 간격이 조금 벌어졌고 응급투약과 대처도 조금은 익숙해져서인지 나아졌습니다. 조금 더 맞는 약을 추가하면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걸 찾는 것이 오래 걸리고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씩 추가되면서 아이는 별다르게 호전되지 않고 그러면서 아이는 여러 약들로 힘들어졌습니다.
약으로 조절이 잘 안되니 한약도 1년여 먹여보고, 대체의학인 생의학 요법도 1년정도 해봤습니다. 수술이나 미주신경요법 등의 치료도 가능했으면 시도해 봤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심각한 발달지연이 예상되는 상태여서 다양한 경험으로 뇌에 여러 자극을 주어야 하는 상태였고 뇌전증치료는 뇌가 자극에 둔감해지도록 눌러주는 것이므로 서로 상반된 입장입니다. 저는 맘이 급해졌습니다. 아이는 발달자극이 필요한 중요한 연령대였는데 뇌전증은 뇌전증대로 잡지도 못하고 치료에 변화도 없이 무심히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꺼내면서도 다시 마음이 아파오는 그 순간들

나는 이놈(뇌전증)과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겠구나 생각한 대발작이 있던 그 날.

응급실에서 발작 후 잠든 아이를 보며, “아이의 뇌전증은 의학적인 치료(약물, 수술, 기타 의학적 치료)로 완치(Seizer Free)는 어려운 게 아닐까? 뇌에 손상이 백질 뿐 아니라 회백질까지 있는데 경련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거 아닐까? 나와 이 아이는 뇌전증은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당뇨나 고혈압처럼.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뇨나 고혈압도 약물과 생활습관 개선 등으로 관리하면서 평생을 지내지 않습니까? 나와 아이에겐 뇌전증이 당뇨나 고혈압 같은 거라 생각하니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아이와 내 삶을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경련이 반복되면서 경련에 대한 대응에 자신감도 좀 생겨나고 있었고 주치의 말씀으론 아이가 대발작이라 심해보이지만 뇌기능이 퇴행되는 경련은 아니라고 했었기에 더이상 완치를 위한 약을 찾느라 삶을 허비하지 말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의 경련이 반복되면서 경련에 대한 대응에 자신감도 좀 생겨나고 있었고 주치의 말씀으론 아이가 대발작이라 심해보이지만 뇌기능이 퇴행되는 경련은 아니라고 했었기에 더이상 완치를 위한 약을 찾느라 삶을 허비하지 말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치의와 상의해서 어느 정도의 약의 갯수를 최소로 하고 최소용량을 유지하면서 다른 경련유발요인을 최소화하고 경련주기를 아이가 다시 회복하고 성장할 수있도록 최대한 늘려보는것을 목표로 치료방향을 정했습니다. 빠른 약조절을 위해 입원을 해서 약을 한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스케쥴을 조정하고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장소와 상황은 최소로 조정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도록 하고 방에도 숙면을 위해 아무것도 못하고 돌처럼 지켰습니다. 지민이와 비슷한 경우 좀더 많은 약을 많은 용량을 먹고 지민이보다는 좀 덜 자주 경련하지만 지민이는 약을 좀 덜 먹고 일상과 치료와 컨디션 관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경련 전 후의 상황을 기록하고 대비했지만 삶이란 게 잘 조절되지도 않았고 아이도 저도 피로감을 잘 알아차릴 수 없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2~3달에 한번씩 경련을 했고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약물이나 응급조치가 필요한 위험한 경련을 하고 있기에 긴장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경련이 발생하면 부모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저는 그걸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이는 뇌전증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 관리해서 길게 11개월정도 대발작이 없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경련 양상도 익숙해지고 있었고 대응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측이 되었기에 더이상 두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경련 양상도 변한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초경)가 되면서 또 양상이 바뀌었고 경련주기가 다시 짧아졌습니다. 전조도 없이 바로 대발작을 합니다. 최근에는 경련 주기가 2달이 안되어 회복할 겨를 없이 다시 경련을 해서 약물을 좀 적극적으로 써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가 경련 후 체력을 회복 할 정도의 주기는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전증만 바라보고 살 수 는 없었습니다. 장애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장애를 가졌어도 병이있어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아이들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뇌전증과 같이 지내기로 결심하고 관리하고 지낸 5~6년간은 가끔 행복하단 생각도 하며 살았습니다. 관리하는 기술이 늘어 주기도 조금 길어지고 전조 증상시 경련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 도 많았고 아이도 컨디션 조절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었지만 조금씩 시도하고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지금 막 아이가 아픈걸, 혹은 어려움을 갖게 된걸 알게 된 부모는 10명이면 10명이 낫게 해주고 싶은 맘일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낫지 않으면 삶도 없고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실것 같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뇌가 손상되어 퇴행이 생기거나 생명에 위험이 되는 경우는 적극적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번 쯤 생각해보세요. 아이와 아이의 삶을, 그리고 그아이와 같이 살아갈 나와 다른 가족을. . . 물론, 가끔 한번씩 생각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경련을 딱 멈추게 되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말입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을 즐기는 지민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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